[장지현 기자]
정부가 난방·급탕 부문의 탈탄소화를 이끌 차세대 친환경 기술로 '공기열 히트펌프'를 주목하는 가운데 제도화에 앞서 실효성부터 따져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히트펌프가 친환경 설비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성능계수(COP)와 전력 소비, 계통 영향까지 포함한 종합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국회에서는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한국지열·수열에너지학회가 후원한 정책 세미나 '공기열 히트펌프, 과연 재생에너지인가?'가 개최됐다.
정부가 난방·급탕 부문의 탈탄소화를 이끌 차세대 친환경 기술로 '공기열 히트펌프'를 주목하는 가운데 제도화에 앞서 실효성부터 따져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히트펌프가 친환경 설비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성능계수(COP)와 전력 소비, 계통 영향까지 포함한 종합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국회에서는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한국지열·수열에너지학회가 후원한 정책 세미나 '공기열 히트펌프, 과연 재생에너지인가?'가 개최됐다.
학계·연구계·산업계·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공기열 히트펌프를 신재생에너지 설비로 인정하려는 최근 정책 흐름이 탄소 감축의 실효성, 전력망 안정성, 기계설비 산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집중 점검했다.
김소희 의원은 개회사에서 정부의 '속도 중심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열 에너지는 산업과 건물 부문 탄소중립의 핵심이지만 공기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먼저 인정하고 나중에 보완하자는 방식은 지난 15년간 반복된 실패의 경로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탄소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제도권에 먼저 편입시키면 나중에 발생하는 역효과는 산업과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그래서 입법을 통해 최소한의 제동 장치를 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근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인정 기준을 문제 삼는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이날 토론회는 해당 입법 논의를 앞두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COP 2.5의 함정…"韓 기후·전력믹스 고려해야"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공기열 히트펌프의 기술적 본질부터 짚었다. 그는 "공기열 히트펌프는 구조적으로 에어컨·시스템에어컨과 동일한 장치"라며 "냉난방 겸용 설비를 이름만 바꿔 재생에너지 생산 설비로 인식하는 것은 기술적 오해"라고 지적했다.
히트펌프 성능의 핵심 지표인 COP(성능계수)에 집중해 논리를 전개했다. COP는 투입 전력 대비 이동·공급되는 열의 비율을 뜻하는데, 전력 생산 효율을 감안하면 COP가 최소 2.5 이상이어야 기존 가스보일러 대비 탄소 저감 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국내 기후 조건이다. 홍 교수는 "국내 동절기 외기 온도는 대부분 0℃ 이하로 떨어지고 이 구간에서는 공기열 히트펌프의 COP가 2.5 미만으로 급락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며 "이 경우 오히려 가스보일러보다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히트펌프의 선례로 언급되는 유럽의 공기열 히트펌프 재생에너지 인정 기준을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무탄소 전원(재생에너지+원전) 비중이 70% 안팎에 이르지만 한국은 약 40% 수준에 불과해 같은 COP라도 전력의 탄소 집약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전력 믹스를 무시한 채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분류하면 통계상 재생에너지는 늘어도 실제 탄소 감축은 이뤄지지 않는 왜곡이 발생한다"고 경고하며 이론치가 아닌 동절기 실측 COP 데이터 기반의 보정계수 산정 하절기 냉방 시 대기 방출 열의 재생에너지 산정 제외 태양광·열(PVT), 지열 등 타 열원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도입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공기열 히트펌프 확산이 국가 전력망에 미칠 충격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홍 교수는 정부 목표대로 히트펌프가 대규모로 보급될 경우 동절기 난방 수요가 전력 피크와 정면 충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가정·상업용 난방이 동시에 전기화되면 현재의 송배전 인프라로는 피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임용훈 숙명여대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다. 가정용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전환할 경우 동절기 오전 9시 기준 전력 피크가 기존 대비 14.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교수는 "기존 전력부하 피크는 11시경 9만 2859MW(메가와트) 수준이나, 히트펌프가 적용되면 9시에 10만 6082MW까지 치솟아 최저 전력예비율이 -3.0%까지 떨어지는 '블랙아웃'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부의 2035년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 목표와 전기차 420만대 보급 목표가 맞물릴 경우 전력망에 가해지는 부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임 교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35년 히트펌프 동시 가동률이 60%만 돼도 6.71GW(기가와트)의 추가 전력이 소요되며 전기차 동시 충전까지 겹칠 경우 감당하기 힘든 전력난이 우려된다.
임 교수는 "COP 수치만으로 재생에너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전력 소비량과 계통 부담까지 포함한 실질 기여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공기열 히트펌프가 친환경으로 포장된 '그린워싱'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히트펌프는 열을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전기를 이용해 열을 이동시키는 설비"라며 "전기를 생산하는 1차 에너지(LNG, 석탄 등)의 투입량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석에 따르면 보일러와 히트펌프의 1차 에너지 효율성을 비교했을 때 COP가 2.0인 공기열 히트펌프는 보일러 대비 1차 에너지를 약 6%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떨어져 히트펌프의 효율이 낮아지는 겨울철에는 히트펌프를 가동하는 것이 가스보일러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게 됨을 의미한다.
'유령 설비' 우려…운영평가·법적 정비 시급
기술적 문제를 넘어 행정 현장의 우려와 법적 하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패널토론 좌장을 맡은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기저 온도에서 출발해 어떤 최종 온도를 만들 것인지, 그 조건에서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부터 따지지 않으면 논의가 '사기'가 된다"며 "청정 전기로 모든 부문을 대체하겠다면 비용과 부담을 감당해야 하고, 재생전기만으로 간다면 밤에 태양광이 없고 바람이 마음대로 불지 않으며 송전망·저장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실무를 대표해 나온 김승환 서울시 건축기획과 팀장은 "과거 연료전지도 친환경 의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건물에 설치는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동하지 않는 '유령 설비'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며 "공기열 히트펌프 역시 성능 검증 없이 보급될 경우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슬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실제 기여도로 좁혔다. 이 연구위원은 정책 도구로 작동하는 제로에너지빌딩(ZEB) 인증과 공공기관 재생에너지 설치 의무화를 짚으며 "현 제도가 설치 시점의 성능을 곧바로 효율로 간주하는 구조여서 실제 운전 환경에서의 성능 저하·운전 패턴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제도는 설치 시점의 스펙(정격 성능)만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실제 운영 단계에서 효율을 측정하는 운영 평가 방식이 도입돼야 실질적인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이창현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정부의 입법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이 변호사는 "신재생에너지법 모법(母法)에 열거되지 않은 공기열을 하위 '시행령' 개정만으로 재생에너지에 포함시키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며 국회 차원의 법률 개정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국회안보다 높은 기준 적용…남부부터 단계적 보급 계획"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권병철 기후에너지환경부 열산업혁신과장은 조직 신설 배경부터 설명하며 정부의 탈탄소화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권 과장은 "전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에너지 소비의 50%를 차지하는 열 에너지를 중점적으로 탈탄소화하기 위해 열산업혁신과가 신설됐다"고 밝혔다.
그는 "(토론회에서 언급된)우려하는 바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매우 보수적이고 단계적인 기준을 마련 중"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권 과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열 히트펌프는 시스템 에어컨(공기-공기 방식)이 아니라 급탕과 온수를 생산하는 '공기-물' 방식에 한정된다"고 선을 그었다.
논제에 올랐던 효율 기준에 대해선 "김소희 의원 발의안이나 기존 법안에서 거론된 SPF(계절성능계수) 2.875보다 더 높은 수치를 적용할 예정"이라며 "단순히 수치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외기 온도를 고려한 가중치를 둬서 추운 지역에서는 사실상 인정받기 어렵게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권 과장은 "지열·수열은 장소적 한계가 있고 공기열은 효율이 낮더라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최대한 끌어들여 열 탈탄소화를 추진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올해 관련 예산 145억원을 투입해 제주도와 전남·경남 등 온난한 지역을 중심으로 약 2500대 규모의 시범 보급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권 과장은 "공동주택의 경우 축열조 설치 공간 문제로 당장 보급이 어렵다"며 "시장의 우려처럼 급격한 생태계 교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치보다 운영 평가"…국회 차원 감시·입법 예고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열역학적 사실 비용 분석 민주적 수용성을 세 축으로 제시했다. 그는 "결국 핵심은 과학적 사실과 비용"이라며 "전기요금 인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효율이 낮은 전열 기구 보급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정리했다.
김소희 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과거 15년간 설치에만 급급하고 실제 가동은 안 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며 이슬기 연구위원이 제안한 '운영 평가 방식' 도입에 강한 공감을 표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약속한 높은 기준과 운영 평가 방식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도록 국회 차원에서 철저히 감시하고 입법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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