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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계약형 지역의사’로 계약만 바꿨는데 연봉 5000만원 ‘껑충’…무늬만 지역의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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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계약형 지역의사’로 계약만 바꿨는데 연봉 5000만원 ‘껑충’…무늬만 지역의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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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가 지난해 월 400만원 수당을 지원하며 모집한 ‘계약형 지역의사’ 90명 중 59명(65.6%)이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던 의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타 지역에서 새로 유입된 의사는 31명(34.4%)이었다. 지역 내로 의사 신규 유입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어서, 정부 지원이 정책 취지 달성 보다는 의사 몸값을 올리는데 쓰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시범사업 중인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로 채용된 지난해 90명 중 지역 내 의사 인력을 ‘계약형’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또 90명 가운데 88명(97.8%)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에 근무했고, 지역 공공의료의 핵심 역할을 맡는 지방의료원 배치 인원은 2명(2.2%)에 불과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8대 필수과목 전문의가 지역의료기관에서 5년 이상 근무하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수당과 정주여건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강원·경남·전남·제주 4개 지역에서 시행됐다.


기존 인력 ‘명찰’ 바꿔 달기 된 ‘지역의사제’


기존 지역 내 의사의 계약형 ‘전환’ 비중이 높은 것은 정부 지원이 부족한 의료 인력 확충보다는 의사 처우 보전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를 만든다. 대형병원에서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할 전문의 수당을 정부가 분담하는 효과에 그친단 것이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지역 병원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계약형’이라며 월 400만원을 더 받고, 누구는 못 받으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의사 인건비 전체를 올리는 효과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 제공


인력 배치가 대형병원에 쏠려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전체 모집 인원 중 지방의료원에서 일하는 의사는 단 2명에 그쳤다. 나머지 88명은 전부 상급 종합병원·종합병원 등에서 근무 중이다. 의료 공백이 심각한 군 단위 취약지는 지방의료원이 핵심이지만 정작 예산 지원은 대형병원에만 집중된 셈이다.

복지부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지역에서 5년 이상 ‘장기’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전환 후 해당 지역 휴진·진료중단·당직 공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등에 대한 분석은 없다. 보건소에서 근무 중인 의사 A씨는 “하루 아침에 연봉 5000만원 가까이 오르는 걸 보면 위화감만 조성된다”고 말했다.


“돈이 전부가 아닌데”···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은?


정부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행 지역에 2개 시·도를 추가 선정하고, 총 40명의 전문의를 모집한다고 지난 19일 발표했다. 지난해와 같이 지역근무수당 월 400만원과 각 지자체의 정주 지원을 제공한다. 지역 주재 의사들은 “돈만 얹어주는 방식으로는 지난해와 똑같은 결론이 날 것”이라며 “의사들이 지역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의료계는 ‘지속 가능한 진료 환경’이 조성돼야 지역으로 향하는 의사들이 늘 것으로 본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협의회 회장은 “필수의료 전문의가 진료하려면 마취·간호·응급 등 팀 단위 인프라가 필수적인데 현재 정부 방침은 의사 한 명에게 수당 줄 테니 알아서 해보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행 지역 확대를 발표했다. 조건은 지난해와 같은 지역근무수당 월 400만원과 각 지자체가 제공하는 정주 지원이다. 사진은 2025년 지역별 정주여건 지원 내용. 보건복지부 제공

정부는 지난 19일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행 지역 확대를 발표했다. 조건은 지난해와 같은 지역근무수당 월 400만원과 각 지자체가 제공하는 정주 지원이다. 사진은 2025년 지역별 정주여건 지원 내용. 보건복지부 제공


지역 근무가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에 내려가면 수련·교육 기회가 줄고, 학회 및 교류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실력 있는 30~40대 전문의들은 지역 근무 경력이 ‘낙오’나 ‘귀양’처럼 인식되는 상황을 우려한다”며 “돈을 더 준다는 식의 접근은 정부가 지역으로 내려갈 의사를 ‘2등 의사’로 낙인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급종합병원과 연계한 순환근무·복귀 경로를 만들어 지역 근무가 경력에 불리하지 않다는 신호를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승연 영월의료원 외과 과장(전 인천의료원장)은 “지역으로 신규 부임한 뜻있는 의사가 31명이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며 “현재 방식의 계약형 지역의사제는 지역의료 강화라는 명분 아래 대형병원에 인건비를 주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지역, 공공의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써도 지역 의료 공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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