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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450년 전 율곡의 '1% 예언'과 현대판 '10만 AI 양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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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450년 전 율곡의 '1% 예언'과 현대판 '10만 AI 양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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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소장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소장

세상은 다양한 방향성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영토와 자원이 국력을 결정하던 지정학(Geopolitics)과 경제적 실리가 우선시되던 지경학(Geoeconomics)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기술이 국가의 주권을 규정하는 기정학(Technopolitics)의 시대가 도래했다.

나아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모든 기술과 자원, 인력이 인공지능(AI)이라는 단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AI정학(AI-Politics)'의 시대라고 명명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거대한 전환의 길목에서 필자는 450년 전 한 선구자의 외침을 떠올린다. 1583년, 율곡 이이는 다가올 국난을 대비해 10년 안에 10만명의 정예병을 길러야 한다는 '10만 양병설'을 주창했다. 당시 조정은 “태평성대에 어찌 군사를 일으켜 백성을 괴롭히느냐”며 그를 비웃었으나, 불과 9년 뒤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결과 앞에 율곡의 혜안은 비극적인 증명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율곡이 제시한 '10만'이라는 숫자에 담긴 통계적 함의다. 당시 조선의 추정 인구는 약 1000만명이었다. 즉, 율곡이 요구한 10만 정예병은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한다. 농사를 짓는 백성이 아닌, 국가의 생존을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된 '핵심 인재 1%'가 안보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1%의 법칙'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놀라운 평행이론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2024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과학기술 연구 인력(R&D 활동 인력, 과학기술인재정책플랫폼)은 약 63만명으로 전체 인구 5181만명 대비 약 1.21% 수준이다.

과거의 1%가 칼과 창을 든 군인이었다면, 현대의 1.21%는 과학기술과 데이터를 다루는 연구자들이다. 율곡의 1%가 외침으로부터 영토를 지켰다면, 현대의 1% 인력은 국가적 역량이 집약된 과학기술과 데이터를 통해 기술 패권 전쟁으로부터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을 수호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1.21% 연구 인력 중 다시 핵심이 되는 '10만명을 최정예 AI 전문 인력'으로 특화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주장하는 '현대판 10만 AI 양병설'이다.

다만 이 양병의 방향은 반드시 투트랙으로 진행돼야 한다. AI 모델 자체를 확보하고 코딩을 주도하는 'AI 코딩 전문가' 양성이 한 축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대한민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제조업의 기술과 자산을 적극 활용해 AI를 산업 현장에서 창의적으로 구현해 내는 'AI 활용 전문가' 양성이다. AI라는 도구를 직접 만드는 자와, 그 도구를 우리만의 제조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자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AI 경쟁력은 완성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엄중한 현실과 마주한다. AI라는 거대한 두뇌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GPU 26만장을 구동하는 데 약 1GW 에너지가 소모된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AI와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전력은 52.5GW에 달했다. 이는 전 세계 연간 평균 전력 수요(3522GW)의 1.49%를 차지하는 규모이며, 현재 전 세계 신재생 에너지 생산량의 3.4%를 오직 AI가 흡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류의 약속인 '1.5도 마지노선'이 2024년 이미 무너졌다는 경고가 들려오는 지금, AI의 갈증을 화석 연료로 채울 수는 없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투 트랙의, 10만 AI 정예 인재'라는 강력한 창과, 이를 뒷받침할 '원자력 기반의 청정에너지'라는 든든한 방패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을 전 세계가 경외하는 소버린 AI 강국으로 세우고, 지혜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줄 유일한 길이다.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yisanghyup@nig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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