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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챕터3’ 서현 “임윤찬 연주로 받은 충격에 감춰둔 꿈 다시 꺼내” [인터뷰]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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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챕터3’ 서현 “임윤찬 연주로 받은 충격에 감춰둔 꿈 다시 꺼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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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으로 ‘인간 서주현’의 챕터3 열어
“임윤찬, 나태함 일깨운 ‘신의 경지’ 충격”
굳은살 새기며 하루 10시간 ‘행복한 사투’
수만 명의 관객을 둔 전 세계 무대를 호령했으면서도 다가올 3월, 2000석가량의 첫 무대를 앞두고도 서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데없이 “프로필 사진이 너무 프로처럼 나온 것 같아 기대하시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며 웃었다. [꿈이엔티 제공]

수만 명의 관객을 둔 전 세계 무대를 호령했으면서도 다가올 3월, 2000석가량의 첫 무대를 앞두고도 서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데없이 “프로필 사진이 너무 프로처럼 나온 것 같아 기대하시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며 웃었다. [꿈이엔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억센 스틸 현의 자국이 손가락 끝마다 선명히 패여 굳은살이 됐다. 다시 바이올린을 잡은 지 5개월.

“이젠 손끝은 아프지 않아요.”

맑은 미소를 짓는 서현의 왼손 검지엔 손가락 고정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린 손끝이 단단해지기까지 수많은 날의 상처와 쓰라림을 견뎠으나, 지금은 관절염, 건초염과 즐거운 싸움에 한창이다. 요즘은 ‘비수기’라 특별한 촬영이 없어 온전히 악기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던 덕에 매일 바이올린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3월까진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마음 같아선 하루에 50시간씩 하면 연습하고 싶은데, 하루는 24시간뿐이라 야속해요.”

가수 겸 배우 서현이 오는 3월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아마추어 악단인 솔필하모닉과 몬티의 난곡 ‘차르다시’ 협연에 도전한다. 5개월 차 바린이(바이올린과 어린이의 합성어, 바이올린 초보)가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끄는 대표 공연장에 선다는 소식에 업계는 금세 들썩했다. 소녀시대 멤버인 서현의 이름 덕에 이 공연은 현재 클래식계의 뜨거운 화제가 됐다.

지난 주말 소속사 꿈이엔티 사무실에서 만난 서현은 “취미로 음악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들만의 파티를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데라토 콘 아니마’처럼 생기있게…‘임윤찬의 충격’
서현의 음성은 ‘모데라토 콘 아니마(Moderato con anima, 생기를 담아 보통 빠르기로)’를 닮았다. K-팝의 현란함도 재즈의 변칙도 아니었다. 잘 조율된 악기처럼 믿음직했고, 정박의 속도로 생기있게 걸음을 옮겨 쉼표와 마침표를 찍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처럼 맑고 투명하면서도 치열한 내면의 규율과 기본기가 균형을 이룬다. 서두르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서현은 바이올린을 다시 만난 그날을 떠올리며 눈 안에 음표를 가득 채웠다.

5개월째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지만, 서현의 시간 안엔 늘 음악이 있었다. 피아노와 플루트를 전공하고 피아노 학원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 4년간 바이올린을 배웠다. 피아노는 무려 10년이나 쳤다. 체르니 50번까지 진도가 나갔으니, 단순 취미 수준이 아니었다. 어릴 땐 콩쿠르도 여러 번 나갔다. 서현은 “어머니가 내게 잘 맞는 악기를 찾아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악기를 잡게 된 계기는 지난해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촬영 중 부상을 겪으면서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골반 부상으로 크게 다쳤는데 드라마 촬영을 놓을 수 없었다”며 “그 시기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했다. 재활을 하며 몸이 회복되고 정신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으로 늘 마음에 품었던 클래식 음악을 꺼내왔다”고 말했다.

배우 서현이 오는 3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솔필하모닉의 협연자로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꿈이엔티 제공]

배우 서현이 오는 3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솔필하모닉의 협연자로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꿈이엔티 제공]



그때, 클래식 음악계의 신드롬으로 자리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처음 만났다. 그는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영상을 작년에 보게 됐다”며 “내겐 미완의 꿈이었기에 신의 경지에서 연주하는 임윤찬 씨의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영상을 보고 또 봤다”며 당시의 전율을 생생히 전했다.

“무대 위에는 오직 피아노와 그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그 어떤 계산이나 불안없이 100% 음악에 몰입한 상태라고 느껴졌어요. 저 역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 매번 몰입해야 하지만, 매 순간 완벽하게 몰입한다는 건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거든요. 80대의 거장이 쳐야 할 연주를 10대 소년이 이토록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연주한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로웠어요.”


강렬했던 ‘몰입의 경험’은 촬영장에서 지친 서현을 일으키는 치유제이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됐다. 사실 서현은 소녀시대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성실과 자기반성’의 아이콘이다.

그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매번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내가 현실에 안주하고 나태해진 순간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됐다”며 “그 건강한 자극이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운 것 같다”며 웃었다.

“쉬우면 재미없죠”…하루 10시간 ‘열정 만렙’
피아노를 다시 배우다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의 열망으로 이어진 것이 5개월 전이었다. 서현은 “어릴 때 배웠다고 하지만, 20년을 쉬었으니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온전히 기초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그의 선생님은 피아니스트 박종화,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정이다.

너무도 다른 두 개의 악기지만, 서현은 그 안에서도 ‘음악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는 “피아노를 칠 때도, 바이올린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과 감정”이라고 말한다.

서현은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을 땐 너무 못해서 헛웃음만 나왔다”고 털어놨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처참한 현실에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고 한다. 활을 긋는 보잉부터 시작해 매일 하루에 10시간씩 바이올린과 씨름했다. ‘모 아니면 도’라는 화끈한 성격답게, 하나에 몰두하면 끝장을 보고 만다. 당연히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오랜 시간 바이올린을 잡고 있었더니 몸에 신호가 오더라고요. 7시간 정도는 괜찮은데, 10시간을 넘기면 확실히 힘들긴 해요. 목과 어깨 통증은 기본이고요. 어릴 때 바이올린을 그만둔 이유도 통증 때문이었어요. 그때 체형이 틀어져 20년간 목 통증에 시달렸는데, 이번엔 필라테스를 병행하며 재활하니 잘 이겨내게 되더라고요.”

20년 만에 바이올린을 잡아 ‘인생곡’ 중 하나인 몬티의 ‘차르다시’에 도전하는 서현 [꿈이엔티 제공]

20년 만에 바이올린을 잡아 ‘인생곡’ 중 하나인 몬티의 ‘차르다시’에 도전하는 서현 [꿈이엔티 제공]



고통스러운 사투의 연속이나, 서현은 “사실 낑낑대고 있는데 무슨 고뇌라도 하는 것 같이 말하는 내가 너무 웃긴다”면서도 “그래도 이 도전의 과정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너무도 예민한 악기라 아기처럼 달래가며 연습한다”는 그는 ‘쉬우면 재미없다’는 열정만렙의 ‘바린이’다. 끈질기고 성실하게 쌓아가는 이 시간들은 서현을 서서히 ‘차르다시’의 곁으로 이끌고 있다.

다가올 공연은 세계적인 예술가도, 프로들의 무대에 깜짝 등장하는 스타의 이벤트성 공연도 아니다.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들이 모여 만드는 ‘축제의 장’이다. 솔필하모닉은 취미로 연주하는 일반인들이 모인 악단이다. 이번 협연은 스승(김현정)의 권유로 성사됐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파티 같은 거예요. 전공자도 아니고 다들 본업이 있는데 음악이 좋아서 모인 분들이에요. 압박감도 크지만 ‘못하면 어때, 즐기는 게 중요하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니 그냥 부딪혀보자는 생각이에요. 이 도전을 해내면 다른 것도 쉬워질 것 같았어요. 제겐 ‘인생의 도전’이라 이렇게 낑낑대고 있어요. (웃음)”

사실 ‘차르다시’는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는 서현의 ‘최종 목표곡’이었다. 워낙에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난곡이다. 바이올린을 잡고 7개월 만에 연주하게 됐으니 목표 달성이 빨라 보이나, 그는 손사래를 친다. “연주는 하는데 원하는 퀄리티가 되진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서현은 “애수, 고독, 절망, 기쁨, 환희, 사랑을 압축한 이 곡의 다이내믹한 감정을 살린 연주”를 들려주고자 지금도 바이올린을 잡는다.

“기회는 지금 왔으니, 지금 아니면 못 하는 거잖아요.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날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차르다시’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아마도 10년 뒤에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아가 차르다시’라고 생각해 주세요. (웃음)”

서현의 인생 챕터3…인간 서주현으로의 확장
‘바린이’로 새해를 맞고 있는 서현은 지금 자신의 시간을 ‘인생 챕터3’이라고 말한다. 단정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단련해 온 그는 소녀시대로 온전히 쏟아낸 10대 시절과 K-팝 스타와 배우로의 길을 병행한 20대를 지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기 안의 보석을 찾아낸 30대의 오늘을 마주하고 있다.

바이올린 도전은 서현에게 인생의 세 번째 챕터를 여는 열쇠다. 그는 지금 눈부신 조명 아래 섰던 서현을 넘어, 다양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채우며 ‘인간 서주현’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꿈이엔티 제공]

바이올린 도전은 서현에게 인생의 세 번째 챕터를 여는 열쇠다. 그는 지금 눈부신 조명 아래 섰던 서현을 넘어, 다양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채우며 ‘인간 서주현’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꿈이엔티 제공]



“어린 나이에 (소녀시대로) 데뷔해 모든 것이 평가받는 자리에 있다 보니 나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엄격한 틀을 만들었죠. 20대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고요. 그런데 30대가 되니 조금 시야가 트이더라고요. 워커홀릭인 제가 일 이외에 뭘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를 고민하며 삶의 ‘온앤오프(On & Off)’ 균형을 맞춰가고 있어요.”

바이올린 도전은 세 번째 챕터를 여는 열쇠다. 눈부신 조명 아래 섰던 서현을 넘어, 다양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채우며 ‘인간 서주현’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건강한 생기로 가득 찬 30대가 된 서현은 자신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했다. “서현도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하는데, 나도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꺼내볼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도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현은 “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도전 자체가 내겐 설렘이고 치유”라고 했다. 바람이 있다면, 그가 임윤찬의 음악을 듣고 감동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클래식의 세계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실제로 서현은 다양한 클래식 공연을 찾아다니는 열혈 애호가다. 최근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리사이틀에 갔고, 임윤찬 공연의 예매를 위해 ‘피케팅’(피 튀기는 티켓팅)도 참전한다. 티켓팅에 실패할 때도 많아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임윤찬의 티켓을 제공하거나 우선 예매권을 주는 곳마다 유료 ‘회원가입’까지 했다.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양인모다. 지난해 ‘텔레만 무반주 바이올린 환상곡’ 전곡 연주를 듣고 “너무나 충격적인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제 삶이 달라졌어요. 같은 곡을 매번 다르게 연주하는 그를 보면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저의 부족한 연주를 통해서라도 누군가 ‘클래식이 즐겁다’고 느끼신다면 좋겠어요. 때론 나태해지기도 감당할 수 없는 일로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위로하고 치유해 행복으로 이끌어준 것이 클래식 음악이었어요.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