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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그린란드 더 독해진 ‘관세왕’

헤럴드경제 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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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그린란드 더 독해진 ‘관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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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의회, 트럼프 ‘그린란드 관세’ 위협에 대미 무역협정 승인 연기
‘기본·상호·품목별 관세’ 동시다발 타격
대규모 대미투자로 ‘거래’…美국익 극대화
동맹도 무시…자유무역·다자주의 대격변

올해는 무역합의 뒤집고 반도체 정조준
그린란드·베네수 이권에도 ‘전가의 보도’
中과 무역전쟁은 휴전…“中 판정승” 평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1년간 ‘MAGA’와 ‘돈로주의’로 무장해 상대 불문 무소불위 힘을 휘둘렀다. 왼쪽부터 미 군사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트럼프와 1년간 무역 휴전에 합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노골적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1년간 ‘MAGA’와 ‘돈로주의’로 무장해 상대 불문 무소불위 힘을 휘둘렀다. 왼쪽부터 미 군사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트럼프와 1년간 무역 휴전에 합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노골적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



더 이상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는 없다. 동맹도, 이미 맺은 협상도, 국제사회의 질서도 의미가 없다. 미국이 원한다면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얻어낸다. 독해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 직후 우방국인 캐나다를 시작으로 관세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을 고질적인 무역적자의 늪에 빠뜨린 불량 무역 국가, 일명 ‘더티 15(dirty 15)’라며 동맹국들을 줄 세우고, 나라별 관세를 매겼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그 기준과 협상 과정, 결과에 이르기까지 무역 적자 등 경제 논리 외에 국가안보와 산업안보를 ‘패키지’로 엮어 해결한다는데 특징이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도 크게 작용한다.

일례로 나라별 관세, 일명 상호관세는 그 규모가 크게 차이나는데, 미국과의 교역 규모에 따른 기준만은 아니다. 브라질은 현 정권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동맹인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핍박한다는 이유를 들어 50%의 고율 관세를 받았다. 인도는 미국이 제재하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한다는 이유로 50%의 관세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휴전협정을 중재한 공으로 자신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달라 요청했지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고율관세가 붙었다는 후문이 나온다. ‘괘씸죄’가 추가되면 없던 관세도 생기는 셈이다.

관세폭탄에 직면한 국가들은 줄지어 미국과 협상을 체결하며 관세를 낮추는데 골몰했다. 미국은 그 과정에서 유럽에는 국방비 증액 압박을, 일본과 한국 등에는 대미 직접 투자 압박을 가했다.

협상 도중 트럼프의 심기에 따라 협상이 틀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캐나다는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TV 광고를 냈다는 이유로 협상 중단을 통보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세계의 자유무역 질서는 하루 아침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휘두르는 관세에 흔들려야 했다. 관세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이 나더라도 대체 관세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발표했던 당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중국이었다. 중국에는 상호관세에다 미국으로 펜타닐 유입을 방치한다며 보복 성격으로 부과한 펜타닐 관세까지 더해져, 평균 50%의 관세가 붙었다.

중국은 미국이 관세를 발표하자,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붙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에서 1년간의 무역 휴전에 합의했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중국의 승리라는 평이 나왔다. 중국은 트럼프 1기 이후 몇 년 사이에 기술혁신, 희토류에서의 우위 확보 등으로 체급을 불리며 무역 휴전 과정에서 미국에 대적할 유일한 상대임을 입증했다.


이런 중국을 두고 싱가포르의 싱크탱크 싱크차이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트럼프에게 굴복하는 동안, 중국은 적대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휴전에 동의할 때까지 독자적인 조치를 취하며 저항했다”고 평가했다. 미 매체 CNN은 “미·중 합의는 트럼프 2.0에 대처하는 중국의 전략이 성공적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전했다.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급변했다. 관세는 오히려 지난해 사각지대에 있던 분야까지 수면위로 올라와 세계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다른 나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어 하워드 러트닉 미상무 장관은 미국에 투자하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는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관세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시행을 예고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후속조처가 없었던 분야다. 이를 두고 반도체는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보니 쉽사리 손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으나, 트럼프는 이 역시 미국 직접 투자를 유도하는 ‘거래’로 해결했다.


안보와 동맹, 무역수지 등을 모두 거래로 치환하는 트럼프의 논법에 따라 관세는 상대국과 본격적인 전쟁의 포문을 여는 ‘무기’로 작용한다.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 8개 국가에 다음달부터 10%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엄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지난해 동맹들이 수개월간의 밀고 당기는 과정 끝에 체결한 무역 협정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8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합의는 최종 완료된 것이 아니며, 비상 조처(관세)는 다른 무역 합의와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휴전 협정을 맺었더라도, 전략무기는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MAGA는 파시즘을 찬양하는 극우주의자부터 백인민족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미국 우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등 여러 정파가 느슨하게 얽혀있는 집단이다. 지난해에는 MAGA 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중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비판을 하기도 했고, 제동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동맹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아르헨에 400억달러 규모의 통화 지원을 하는데 대한 비판이나, 중국의 미국산 대두수입 금지가 장기화되자 농업이 주력 산업이 미 중부지역에서 서둘러 중국과 무역휴전을 하라 압박했던 일 등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1년을 지나면서 MAGA에서 트럼프가 제시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중심주의’로 압축됐다. 여기에 100%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은 ‘탈(脫) MAGA’ 모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의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적극 지지하며 그의 스피커 역할을 했던 극우파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은 트럼프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성범죄자 엡스타인 수사파일 공개에 찬성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선거와 입법 모두에서 당의 요구를 대체로 무시했다”며 “그는 정당이 아니라 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중심주의로 ‘대동단결’된 MAGA를 등에 업고 독주하는 그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올해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의 표심 뿐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제 동향이 심판의 가장 큰 기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지난 18일 보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최근 심술(tantrum)이 초래할 가장 중대한 위험 중 하나는 미국 내 물가 재반등 가능성”이라며 주목했다. 지난해 이미 부과된 관세는 물자 비축분이 있어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올해는 미국 기업들이 추가 비용을 흡수할 여력이 줄어들면서 물가가 한 단계 더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미국 중앙은행 수장(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수사하면서까지 압박하려 했던 금리인하는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