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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선 우리가 주인"…러시아 동진의 300년사

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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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선 우리가 주인"…러시아 동진의 3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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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신간]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신간]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유럽에서 우리는 들러리이자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서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말이다. 이처럼 크리스 밀러의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는 러시아가 왜 자꾸 동쪽으로 가려 했는지, 그때 무엇이 잘 되고 무엇이 막혔는지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책은 알래스카·하와이·캘리포니아 도전부터 아무르 강·시베리아 철도, 스탈린과 푸틴의 계획까지 300년 동안의 흐름을 사건과 사람 중심으로 정리한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유럽 쪽만 보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 이후 동쪽 바다와 땅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넓은 시장과 항구, 더 빠른 길을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의 돈·사람·물류 능력이 충분하지 않거나, 다른 나라의 견제가 세지면 계획은 자주 약해졌다. 이 책은 "동쪽으로 가자"는 구호가 얼마나 자주 멈췄는지,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먼저 '러시아령 아메리카' 이야기다. 러시아는 알류샨 열도를 지나 알래스카까지 도착했고, 샌프란시스코 근처 포트 로스에 거점도 만들었다. 하와이의 한 군주는 러시아에 충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본국의 지원이 약했고 영국·미국의 견제도 강했다. 결국 캘리포니아에서 물러났고, 알래스카도 팔게 된다. 꿈은 컸지만, 유지할 힘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아무르·우수리 지역과 시베리아 철도가 등장한다. 세르게이 비테가 만든 시베리아 철도는 동쪽을 빠르게 잇는 큰 길이었다. 만주를 가로지르는 노선도 깔았다. 계획만 보면 멋지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 긴 거리, 비싼 유지비, 불안한 치안이 발목을 잡았다. 일본과의 긴장도 커졌다. 결국 러일전쟁이 터졌고, 철도는 성장 엔진이 아니라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길을 깔아도 그 길을 지킬 힘과 비용이 따라야 한다는 교훈이 남는다.

[신간]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신간]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혁명 이후에는 동쪽이 '이념의 무대'가 된다. 볼셰비키는 중국 등 아시아에 자신의 생각을 퍼뜨리려 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중국 공산당을 완전히 믿지 못해 초기에 고사포 6문과 기관총 120정 같은 제한된 지원만 했다. 서로 불신이 쌓였고, 나중에는 다투기까지 했다.

흐루쇼프는 총과 탱크 대신 영화·공연·교류 같은 부드러운 방법으로 영향을 넓히려 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목표는 비슷했다. 동쪽에서 러시아의 자리를 키우는 일이다. 고르바초프는 개방 정책을 하며 태평양 쪽 국가들과 손잡으려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이 겹치면서 힘을 잃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나자 푸틴이 다시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북극을 지나는 바닷길을 열고, 극동을 개발하고, 중국과도 가깝게 지내자고 한다. 말만 보면 크고 근사하다. 그러나 이 책은 지난 300년 동안 반복된 그림을 상기시킨다. 처음엔 기대가 크지만, 인구·자본·기후·물류 같은 현실 문제가 쌓이면 속도가 줄고, 비용이 커지면 한발 물러서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다.

책의 장점은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알래스카의 사냥과 교역, 팔라다호의 항해, 철도 공사 현장, 외교 문서의 문장까지 이런 다양한 장면들이 긴 역사를 손에 잡히게 만든다.

"조종사는 있나요? 선원은 있습니까?" 같은 간단한 물음은 큰 배가 움직이려면 결국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거대한 전략도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제때 물자를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동쪽으로 가자'는 말은 쉽다. 그러나 그 말을 현실로 만들려면 항만·철도·도로 같은 기반, 추위를 견디는 장비, 오랫동안 투자할 돈, 그곳에서 살 사람과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주변 나라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알래스카·만주·철도·전쟁·개방 등의 모든 장면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조건이 갖춰졌는가. 아직 부족하다면 무엇을 채워야 하는가.

△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크리스 밀러 지음/ 김남섭 옮김/ 너머북스/ 3만 4000원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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