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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깨고 백화점에 창문 낸 ‘파격실험’… 공간의 연결성엔 한계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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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깨고 백화점에 창문 낸 ‘파격실험’… 공간의 연결성엔 한계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서울맑음 / -3.9 °
(76) 갤러리아 광교

다국적 회사가 설계 맡은 갤러리아 광교
폐쇄적 디자인 불문율 깨고 ‘공간 예술화’

1451장 삼각형 유리로 만든 입체 루프
전통적 격자형 매장 구조와 동선 겉돌아
체험 공간 진화 역부족… 차별화에 실패
“환이야. 엄마하고 김밥 먹고 갈래?”

어릴 적 집 근처에 있던 희망백화점을 지날 때면 어머니는 가끔 이런 제안을 하셨다. 어떤 날은 어머니가 먼저 그 말을 꺼내주기를 내심 기다리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딸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백화점에 들어서던 아이가 묻지도 않은 소감을 불쑥 꺼냈다.

“난 이런 곳이 너무 좋아요. 높고 밝고 좋은 향기도 나잖아요.”

순간, ‘백화점을 좋아하는 것도 유전이 되나’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동시에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갔던 백화점 공간을 떠올려봤다.

1451장의 삼각형 유리가 입체적으로 조합된 유리 루프는 지층을 연상시키는 입면을 헤집고 나가며, 전형적인 상업 공간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유리 루프를 비롯한 공간의 경험이 소비의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갤러리아 광교가 지향했던 경기 남부의 3040 프리미엄 고객층 선점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1451장의 삼각형 유리가 입체적으로 조합된 유리 루프는 지층을 연상시키는 입면을 헤집고 나가며, 전형적인 상업 공간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유리 루프를 비롯한 공간의 경험이 소비의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갤러리아 광교가 지향했던 경기 남부의 3040 프리미엄 고객층 선점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백화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근린상가에 가까운 그 건물은, 외부로 난 창이 없고 단조로운 입면을 한 전형적인 박스형 판매 시설이었다. 그래서 백화점에 있는 극장에서 ‘우뢰매’를 개봉했을 때 내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피난 계단 정도 외에는 공간적으로 기억나는 건 없다.

창문과 시계를 없애 고객이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계획에 없는 쇼핑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설계 공식, 이른바 ‘그루엔 효과’는 오랜 시간 백화점 건축의 불문율이었다. 1956년 미국 미네소타에 세계 최초의 교외형 실내 쇼핑몰로 지어진 ‘사우스데일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빅터 그루엔의 이름에서 따온 이 용어는 1970년대 초반부터 학술적으로 쓰이며 상업 공간의 심리학을 상징하게 되었다.


폐쇄적인 박스형 백화점이 변한 건 2000년대 초반으로, 그 시작은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 WEST였다. 기존 한양쇼핑센터를 리모델링하면서 외관에 4330개의 유리 디스크를 비늘처럼 붙였는데, 이는 백화점 외벽이 도시의 표정을 바꾸는 예술적 캔버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롯데와 신세계 본점의 입면은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로 바뀌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백화점은 온라인 쇼핑의 편의성에 맞서기 위해 ‘고객 체험’과 ‘체류’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삼분할하는 상황에서 한화갤러리아가 선택한 생존 전략은 상위 1% 고객을 겨냥한 ‘독보적인 프리미엄’과 세계적인 건축가를 활용한 ‘공간의 예술화’였다.

실제 한화갤러리아는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 WEST 이후 천안 센터시티(2010)의 설계를 네덜란드 건축가 벤 판베르컬(UNStudio)에게 맡겨 빛의 움직임을 담은 입면을 선보였다. 이어 2020년 개장한 갤러리아 광교는 네덜란드 기반의 다국적 설계회사 OMA와 손잡고 백화점의 금기를 깬 파격적인 설계를 실험했다.


한화갤러리아의 ‘공간의 예술화’ 전략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은 갤러리아 광교이다. 이전까지 백화점 건축이 대부분 창 없는 입면에 예술적 옷을 입히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광교점은 입면을 비롯해 판매 공간 자체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OMA는 건물 전체에 빛이 스며드는 전략을 택했는데, 구체적으로 길이 540m에 이르는 유리 루프가 입면을 관통하며 폐쇄적이었던 판매 공간에 빛을 들인다. 1451장의 삼각형 유리가 입체적으로 조합된 유리 루프를 두고 한화갤러리아는 “당신 삶의 빛(Lights in your life)”이라는 스토리까지 입혔다.

유리 루프는 백화점 주변에 있는 광교호수공원과 경기도청사를 잇는 공공 보행 흐름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심 속 산책로(Urban Promenade)’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래서 OMA는 갤러리아 광교를 “백화점이 될 뻔한 대중적인 공간”으로 정의했다.

14가지 종류의 화강석 약 12만5000장이 조합된 갤러리아 광교의 입면은 수만 년의 시간이 응축된 지층(地層)을 연상시킨다. 그 단단한 암석의 틈을 헤집는 유리 루프는 마치 땅속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뿌리줄기’, 즉 ‘리좀(Rhizome)’을 닮았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리좀 모델’은 위계적인 ‘수목(Tree) 모델’과 달리 연결성, 다양성, 비(非)위계성을 지향한다. 건축적으로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고, 내외부의 경계가 흐릿하며, 사용자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이동할 수 있는 유동적이고 열린 네트워크형 공간을 목표로 한다.


피난 복도 같은 느낌을 주는 매장 뒤편으로 난 유리 루프.

피난 복도 같은 느낌을 주는 매장 뒤편으로 난 유리 루프.


문제는 유리 루프가 상업 시설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다소 힘을 잃는다는 점이다. 건물 가운데 에스컬레이터를 두고 격자형으로 매장이 구획된 갤러리아 광교의 구성에 유리 루프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고 별개의 동선으로 쓰이고 있다. 몇몇 구간에서는 판매 공간의 뒤편을 슬며시 지나가는 피난 복도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구조적으로 힘들게 구현한 스카이 브리지나 계단형 이벤트 공간은 매장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갤러리아 광교의 핵심 앵커이자 강력한 모객력을 자랑하는 지하 식음 시설(고메494)과의 무관함이다.

당초 OMA는 층층이 쌓인 백화점의 전형적인 수직 구조를 깨기 위해 각 층에 고유한 공간 문법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식음 시설이 있는 지하 1층은 도시의 활기가 넘치는 교차로(Intersection), 부티크가 있는 1층은 화려한 샹들리에(Chandelier), 여성 패션이 있는 3∼4층은 진열용 유리 케이스(Vitrine), 문화센터와 라운지가 있는 12층은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Boulevard)의 공간 문법을 적용하고자 했다. 건축가는 이처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공간들이 유리 루프라는 통로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리좀 모델’을 의도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적극적으로 구현되지 않았고 각 층은 전형적인 매장 구성에 머물렀으며, 유리 루프는 독특하지만 낯선 부속물로 남아 있다.

한화갤러리아가 점유율 10% 미만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간의 예술화’를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삼으려면, 예술이 된 공간이 고객의 물리적 체류를 넘어 심리적 경험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늘어난 체류 시간이 판매라는 결실로 맺어지는 구조, 즉 ‘공간의 경험’이 ‘소비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 공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증명한 사례가 여의도 더 현대의 ‘사운즈 포레스트’다. 일 년 내내 색다른 공간으로 변하며 고객들을 머물게 만드는 사운즈 포레스트는 유리 루프가 추구해야 하는 모습이다.

경기 남부의 3040 프리미엄 고객층을 선점하려던 갤러리아 광교의 야심은 현재까지는 아쉽다. 이제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랜드마크’라는 타이틀만으로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기에는 상업 건축의 문법이 너무 고도화되었다. 건축물의 외형적 화려함은 더이상 그 자체로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백화점 김밥이 유독 특별한 맛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30년이 더 지난 그 시간을 기억하는 건 어머니와 함께했다는 정서 때문이다. 결국,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건 예술적으로 디자인된 공간과 함께 ‘기억으로 남는 경험’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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