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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공백에 놓인 중도장애인, ‘모래주머니’ 찬 채 달린다 [일하고 싶을 뿐인데③]

쿠키뉴스 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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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공백에 놓인 중도장애인, ‘모래주머니’ 찬 채 달린다 [일하고 싶을 뿐인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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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아닌 우연으로 가능했던 중도장애인 복귀
동일 기준의 기계적 평등, 복귀를 가로막는 구조
취업 이전의 심리 회복·정보 단절부터 메워야
우리 사회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이들의 성공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그 영웅담 뒤에는 시스템의 공백을 온몸으로 버텨낸 개인의 사투가 숨어 있습니다. 쿠키뉴스는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은 중도장애 청년을 조명했습니다. 이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힌 현실의 벽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봤습니다.

중도장애인의 복귀를 개인의 의지나 운에 맡기지 않으려면, 사회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이들의 노력이 외로운 영웅담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제는 국가와 시스템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다시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중도장애 청년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편집자주]

김동구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지난달 23일 서울 중랑구 서울특별시북부병원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전문의는 2005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척수 장애를 입었다. 노유지 기자

김동구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지난달 23일 서울 중랑구 서울특별시북부병원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전문의는 2005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척수 장애를 입었다. 노유지 기자



척수손상으로 두 다리와 손가락 감각을 잃고도 병원으로 돌아온 재활의학과 전문의.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법조인의 길을 이어간 변호사. 이들의 복귀 서사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다수의 중도장애 청년은 원래 일하던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의 성공 사례는 제도가 거둔 결실이라기보다, 개인의 노력과 조직의 수용이 맞물린 결과에 가깝다. 중도장애인의 복귀는 여전히 제도화된 경로가 아니라,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시스템이 비운 자리, 운과 선의에 기댄 예외적 성공

정형외과 레지던트였던 김동구 전문의는 지난 2005년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었다. 1년4개월간의 재활 이후 재활의학과 전공의 시험에 도전했지만 두 차례 낙방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국립재활원 전공의로 합격했다. 김 전문의는 자신의 복귀를 “특혜가 아닌 동등한 경쟁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전형으로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했으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봐주거나 배려받았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복귀에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병원의 유연한 조정이 뒤따랐다. 응급 상황 대응이나 야간 당직은 신체적 제약상 혼자 수행하기 어려웠다. 병원은 당직 체계를 재편하고 인력을 추가 배치했다. 김 전문의는 “장애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되 해결 가능한 부분은 조직이 함께 풀어야 한다”며 “내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제도보다 조직이 실제로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조정이 가능한 조직은 일부에 불과하다. 다수의 중도장애 청년은 복귀 과정에서 별도의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개인의 인내와 주변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다. 김 전문의는 “장애인 채용 관련 법의 존재보다 중요한 건, 그 법을 실제로 작동시키려는 조직의 태도”라고 말했다.

이성준 법무법인 다움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1999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척수 장애를 입었다. 유병민 기자

이성준 법무법인 다움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1999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척수 장애를 입었다. 유병민 기자



이성준 변호사 또한 시스템이 비운 자리를 홀로 채워야 했다. 그는 지난 1999년 대학 4학년 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장기간의 재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공공기관과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며 법조인의 길을 이어갔다. 이 변호사는 “중도장애 청년의 경쟁은 5kg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것과 같다”며 “출발선이 같다고 해서 공정한 경쟁이 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장애를 변수로 두지 않고 비장애인과 같은 기준만 적용하는 방식은 기계적 평등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제도가 격차를 좁히는 완충지가 되지 못하면, 결국 장애라는 제약은 개인이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는 “직무 전환과 배치에 드는 비용 지원, 실효성 있는 편의 제공 같은 장치가 있어야 장애를 보완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개인 역량에 기대어 버티는 사람만 살아남게 된다”고 말했다.

취업보다 앞선 마음의 재건…장애 수용 돕는 사회 경로 필요

제도의 공백 속에서 중도장애 청년은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부터 이후 삶의 경로를 정하는 일까지 홀로 감당해야 한다. 복귀의 출발점은 취업이 아니라 장애 수용이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는 경험은 정체성의 균열로 이어진다. 무너진 자아를 추스르지 못하면 일터로 돌아갈 준비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과정조차 지금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일자리 지원에 앞서 마음의 회복을 돕는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승희 서울시립대 교수의 ‘장애 발생 시기가 장애인의 취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가 발생한 시점이 늦을수록 취업 확률은 유의미하게 낮아진다. 특히 중장년기에 장애를 얻은 경우, 그 이전부터 장애를 경험한 이들보다 노동시장 진입이 훨씬 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장애 수용과 심리적 재정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수록, 복귀의 문턱은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김용성 경기도의회 의원은 중도장애인의 회복과 사회 복귀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조례안을 구상하고 있다. 김 의원은 “중도장애인을 만나보면 퇴원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도움받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정보 공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선천적 장애인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조건이 바뀐 사람들”이라며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더라도, 교육과 정보 제공, 회복 이후의 경로를 안내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