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남정훈 기자] 남자 프로배구 한국전력은 올 시즌 대한항공만 만나면 유독 작아졌다. 1~3라운드 맞대결에서 한 세트를 따내면서 아홉 세트를 내줘 전패를 당했다. 대한항공과 ‘양강’으로 평가받는 현대캐피탈과의 3라운드까지 맞대결에선 2승1패로 앞섰던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게다가 4라운드 들어 한국전력의 경기력은 롤러코스터 같은 기복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4라운드 초반, 순위 경쟁팀인 KB손해보험과 OK저축은행은 세트 스코어 3-1로 꺾고 승점 3을 온전히 챙긴 반면, 최하위 삼성화재와 6위 우리카드를 만나선 고전을 면치 못하며 풀 세트 접전 끝에 패했다.
20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의 2025~2026 V리그 4라운드 맞대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25일 오른쪽 발목을 다쳐 8주 진단을 받았던 대한항공의 토종 에이스 정지석이 괴물같은 회복력으로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아 이날 복귀전을 치르게 됐다. 지난 16일 KB손해보험전에서 엔트리에 복귀했던 정지석은 적어도 4라운드 종료 때까지는 코트를 밟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날 선발 출장했다.
대한항공이 시즌 초반 10연승을 달렸던 주전 멤버를 오랜만에 풀가동하게 됐지만, 한국전력의 승리를 향한 의지가 한 수 위였다. 경기 전 “우리는 기회엔 약하지만, 또 위기엔 강함 팀”이라고 말했던 권영민 감독의 말대로 한국전력이 ‘완전체’ 대한항공을 세트 스코어 3-0(25-20 25-21 25-18) 셧아웃으로 돌려세웠다. 2연패에서 탈출하며 승점 3을 챙긴 한국전력은 승점 38(13승10패)이 되며 KB손해보험(승점 37, 12승11패)을 4위로 밀어내고 3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반면 지난 16일 KB손해보험전에서 4연패의 사슬을 끊으며 한숨 돌렸던 대한항공은 정지석의 복귀 호재에도 불구하고 외인 주공격수 카일 러셀의 부진과 더불어 한국전력의 강서브에 휘둘리며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승점 45(15승8패)에 그대로 머문 선두 대한항공은 1경기 덜 치른 2위 현대캐피탈(승점 44, 14승8패)과의 격차를 벌리는 데 실패했다. 현대캐피탈이 23일 한국전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 두 팀의 순위는 바뀐채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하게 된다.
대한항공 공수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정지석은 한 달만에 돌아와 1세트에만 서브 득점 1개 포함 6점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러셀이 1세트에 14.29%의 저조한 공격 성공률에 단 2점에 그치면서 좌우날개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한국전력도 1세트엔 외인 에이스 베논이 3점에 그쳤지만, 왼쪽 측면의 김정호와 서재덕이 60% 이상의 공격성공률로 각각 5점,4점을 몰아치며 화력을 벌충해줬다. 세트 초반부터 3~4점 리드를 유지한 끝에 한국전력이 기선을 제압했다.
2세트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국전력의 날카로운 서브 앞에 대한항공의 리시브가 흔들리자 현역 최고의 세터 한선수의 토스워크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여전히 러셀의 공격은 무뎠다. 결국 러셀은 5-8에서 임동혁과 교체돼 웜업존으로 물러났다. 한선수가 흔들리자 헤난 달 조토(브라질) 감독은 8-13에서 한선수를 빼고 유광우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한항공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한선수가 흔들려도 그에 필적하는 기량을 보유한 유광우가 백업세터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 유광우의 투입 후 대한항공의 공격 리듬은 다소 나아지며 추격전을 시작했고 세트 막판 19-20까지 따라붙었다.
여기에서 필요한 건 역시 해결사의 한 방. 한국전력엔 베논(캐나다)이 있었다. 2세트 들어 쾌조의 공격력을 뽐내던 베논은 동점 위기 상황에서 재치있는 연타 오픈 공격으로 상대 블로킹 벽을 허물어 21-19를 만들었다. 이어 강서브로 대한항공의 료헤이의 리시브가 한국전력 코트로 바로 넘어오자 호쾌한 백어택을 성공시키며 리드폭을 늘렸다. 2세트에만 69.23%의 성공률로 9점을 몰아친 베논의 활약 속에 한국전력은 2세트까지 집어삼키며 올 시즌 대한항공전에서 처음으로 승점을 확보했다.
3세트에도 한국전력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세트 초반부터 리드를 잡은 한국전력은 멈추지 않고 상대를 몰아붙였고 셧아웃 승리를 완성했다. 베논이 양팀 통틀어 최다인 18점(성공률 58.62%)을 몰아쳐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고, 김정호(14점)와 서재덕(9점), 신영석(7점)도 제 몫을 다 했다. 팀 공격 성공률 56.94%-46.66%, 팀 블로킹 6-5, 서브득점 6-2, 범실 17-21까지. 한국전력은 질래야 질 수 없는 경기였고, 대한항공은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경기였다. 대한항공은 정한용이 11점, 공격 성공률 66.67%, 임동혁이 11점, 69.23%로 제 몫을 해줬지만, 러셀이 단 3점, 15.38%에 그치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8주 진단을 받았으나 4주도 채 되지 않아 돌아온 정지석은 이날 9점, 공격 성공률 36.36%에 그쳤지만, 리시브 효율 52.94%로 공수겸장의 면모는 뽐냈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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