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금융부 기자
“이제 국내 가상화폐업계는 거래소 빼고는 모두 전멸입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준비 중이지만 수익성은 알 수 없죠.”
국내에서도 가상화폐 제도화가 뒤늦게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가상화폐업계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가상화폐산업 육성을 목표로 추진되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기회의 문을 닫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올 1분기 입법을 목표로 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은행 지분 50%+1주 이상 보유한 컨소시엄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은행 중심 구도로 초기 판이 짜이면서 블록체인과 같은 비은행 기업들은 경쟁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출발선 밖으로 밀려났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 등 규제 선진국에서도 비은행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전통 금융권에 유리하게 짜인 가상화폐 제도 아래에서 소규모 혁신 기업들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기회도 없이 밀려나고 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가상화폐 결제사업으로 이미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던 페이코인은 당국으로부터 은행 실명계좌 확보를 요구받고 은행을 전전하다 결국 사업을 접었다. 7년간 토큰증권 시장을 개척해온 루센트블록 역시 제도화 과정에서 오히려 존폐 위기에 놓인 상태다. 불확실한 규제 환경 속에서도 수년간 투자를 이어가며 시장을 키웠지만 막상 수확기에 접어들자 그 과실은 전통 금융권의 몫이 되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 제도화에 앞서 명심해야 할 것은 가상화폐가 디지털 금융의 미래로 주목받는 이유가 혁신성에 있다는 점이다. 실험의 장에 올려야 할 다양한 참여자들을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링 밖으로 밀어내면서 인재와 자본까지 함께 빠져나가는 ‘갈라파고스’를 자초하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디지털 자산시장의 혁신 성장을 통해 ‘디지털 G2’를 꿈꾸는 가상화폐 제도화의 장밋빛 미래도 공허한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김정우 기자 wo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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