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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 결탁한 새로운 군사경제 시대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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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 결탁한 새로운 군사경제 시대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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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오른쪽)가 지난해 4월30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투자’ 행사에서 발표하는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오른쪽)가 지난해 4월30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투자’ 행사에서 발표하는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과 1년 사이에 그 이전 100년 동안 형성된 국제 경제·정치 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는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선포하며 임기를 시작하더니, 자국 군대를 보내 독립국의 대통령을 납치하는 엽기 행각을 벌였다. 이 와중에 세계는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발달에 환호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AI 경쟁에 사활을 걸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는 중이며, 빅테크 기업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분명 오늘의 세계를 특징 짓는 사태들이지만 서로 연관성이 희미해 보이기도 한다.



관세 전쟁에서 시작해 보자. 트럼프의 방식이 독특하긴 했지만, 그에 따라 무너진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가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본래 자본주의는 하나의 ‘세계경제’로 등장했지만, 동시에 개별 국민국가 단위로 조직되어 작동한다. 이런 이중성에 대한 통찰은 러시아혁명에 투신했던 부하린이 발전시켰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자본주의의 ‘세계성’이 극대화되는 시기와 ‘국민성’이 강조되는 시기는 교차해 왔다. 1870년대~1910년대 초반, 1980년대~2010년께를 ‘세계화’의 시대였다고 한다면, 그 사이의 공백기 특히 1940년대 중반~1970년대까지는 국가 주도의 내실 다지기와 ‘국민성’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이러한 교차의 의미는 자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명확해진다. 19~20세기 전환기에 강대국들은 식민지 확보를 둘러싼 경제적 각축(제국주의)을 통해 제 살을 찌워 나갔고, 그런 성장전략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이후 두 차례의 전쟁과 대불황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고 경제의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 뒤를 이었는데, 이 모형도 1970년대 불황에 막혀 종말을 고했다. 자본은 다시 금융을 무기로 장착하고 세계 개척에 나섰는데, 여기서는 앞선 시기에 각국이 내적으로 축적한 공적 자산, 그리고 종전엔 자본주의 바깥에 있다가 새로이 편입된 구 사회주의권 등이 주된 ‘먹잇감’이 되었다. 최근 세계화로부터의 두 번째 ‘후퇴’는 이 모형의 효력 만료를 시사한다. 실제로, 세계 자본주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십수년째 장기 정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그간의 통화 정책 등 다양한 시장 중심의 해법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근본적 차원의 돌파구가 필요한 거다.



이런 배경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경제가 얼마든 침체 해도 좋을 핑곗거리가 되었고, 그리하여 외려 세계 각국에 내부 정비의 기회를, 자본에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는 듯했다. 파괴된 사회·경제 인프라를 재건하되, 이를 새로운 기술(AI)과 가치체계(친환경)의 기반 위에 올려놓자는 것이다. 이건 국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미국 바이든 정부의 ‘더 나은 재건(BBB)’이나 한국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 그런 사례다. 이런 내적 조정은 과거 미국의 ‘뉴딜’이나 서구 각국의 복지국가 발달과 비슷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회는 팬데믹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트럼프의 무역전쟁과 그에 따른 보호주의 회귀는 그 기회를 기괴한 방식으로 복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각국이 세계화보다는 자국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80년 전만큼 쉽지는 않다. 첫째, 각국이 글로벌 공급과 금융의 촘촘한 망 안에 얽혀 들어와서다. 최강대국 미국조차도 이제는 자국 중심의 발전전략을 자력으로 구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둘째, 국내적으로 변화의 지지 세력을 동원하기가 어려워서다. 지금은 전후 복구나 반공 등 지난 세기 중반에 사회를 응집했던 대의가 부재하고, 노조 등 사회세력을 대표하는 힘이 지리멸렬해졌으며, 국민의 이해관계도 복잡다기해졌다.



그래도 국가 주도성은 포기될 수 없다. 자본이 침체에서 빠져나가려면 새로운 기술과 친환경 패러다임의 잠재력이 폭발해야 하는데,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오늘의 새로운 국가-자본 동맹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최근 경제와 군사의 결탁을 눈여겨봐야 한다. 과거 이는 ‘군산복합체’라고 불렸다. 군산복합체란 국가의 군사 조직과 거대 방위 산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합하여 형성된 거대한 권력 블록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한 무기 생산을 넘어, 국가의 자원 배분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기술 혁신의 방향을 통제하는 ‘제도화된 전쟁 경제’의 성격을 띤다. 과거 냉전기 군산복합체가 상시적인 전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고 비약적인 기술 도약을 이뤄냈다. 지금 우리는 그 메커니즘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이미 세계 곳곳의 분쟁은 강대국들이 직접 개입하는 형태로 격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지정학적 질서가 어떤 결정적 ‘문턱’을 넘었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세계 경찰’의 지위를 내려놓으니, 모든 국가가 자구책 마련을 위해 국방비를 쏟아붓는다. 독일 같은 전범국조차 재무장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자연스레 용인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군사비 지출은 10년째 증가를 이어가며 사상 최고치인 연간 2조7180억 달러를 돌파했다. 마두로 대통령 납치 직후인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도 국방예산을 현재의 1.5배 수준인 1조5000억 달러(약 2170조원)로 증액할 것을 요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군사 개념을 확장하면 ‘안보(Security)’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안보는 나라 안팎은 물론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며 무한 확장 중이며, 미·중 갈등에서 드러나듯 AI와 반도체 같은 신기술과 밀접해지고 있다. 군사와 경제, 테크놀로지가 하나로 용해된 이 시대를 ‘2차 군산복합체’의 시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영국 퀸메리대의 엘케 슈워츠 교수는 미국에서 2019~2022년에 군사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자본 투자가 곱절이 되었고, 2021년 이후 1300억 달러의 벤처자본이 국방기술 분야에 투입되었음을 꼽으며, 이를 ‘벤처자본-군-실리콘밸리 연계’라고 불렀다. 그 경제적 의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체된 경제에 강력한 유효수요를 창출한다. 안보라는 상품의 필요성은 객관적으로 정의되기 어렵다. 적의 실체가 불분명해도 대중이 위협을 확신하면 그 적은 실체를 갖게 된다. AI와 데이터 패권으로 안보 개념의 확장―군의 ‘테크 워싱’―또한 안보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인다. 필요성이 높은 일이므로, 정부와 기업이 매년 수백조원을 안보에 투입해도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지금의 안보 경쟁이 훗날 비생산적인 ‘헛된 일’로 판명되더라도 말이다.



둘째, 국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기업이 공적 자원을 합법적으로 사유화할 기회가 된다. 기술을 실제 생산에 적용해 이윤을 창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안보는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시장이 된다. 안보의 위계가 높아질수록 국가가 시민의 혈세로 기업의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기술 개발을 보조하는 행위는 강력한 정당성을 얻는다. 동시에 실패의 비용은 사회 전체가 나누어지고 이익은 자본이 독점하는 구조가 상례화된다.



셋째,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며 유용한 부산물을 남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국가의 성공사례’로 상찬한 아이폰의 핵심 기술이나 아폴로 계획의 성과들을 보라. 사실 이들은 그 자체로 국가가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개발을 주도한 ‘성공사례’라기보단 국방과 안보라는, 다분히 유감스러운 ‘미션’을 수행하던 전쟁경제가 남긴 부산물이었다. 당장은 전쟁과 통제를 위해 개발되는 AI 기술들이, 역설적으로 먼 미래에 인류를 위한 무해한 도구로 변모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것은 기우일까? 현재 신기술의 전개 양상은 이러한 우려에 실증적인 근거를 더한다. 종국엔 AI가 산업 현장을 혁명적으로 바꿀 테지만, 그 실현에는 고용 감소와 노동 해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로 인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경제학자들 역시 AI의 ‘생산성 역설’에 주목하며 기술 투자가 실제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AI가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다. 또한 자국 바깥의 적을 상대하거나 국가적 생존을 담보한다는 명분 아래서는 과감한 기술적 실험들이 안보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자행될 것이다. 이미 막대한 수준인 미국 국방비는, 록히드 마틴 같은 전통적 방산기업보단 팔란티어 같은 실리콘밸리 테크기업과의 계약에 점차 더 쓰일 것이다.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상에서는 멀어지는 대신 국가 단위에서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내부 역량을 결집하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양상은 국내 사회세력들 사이의 협약에 기반을 둔 ‘뉴딜’보다는 국가-자본 결탁을 통한 새로운 군사경제의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이 국가, 특히 미국 등 강대국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점이 경계심을 키운다.



김공회 경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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