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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참사 국정조사…관제탑·소방 '총체적 부실'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민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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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참사 국정조사…관제탑·소방 '총체적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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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알래스카 천연가스 사업, 韓日덕에 전례없는 자금 확보"
국조특위 무안공항 현장조사
관제탑-소방 소통 부재 확인
유족 "은폐·왜곡 멈춰달라"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의 현장 조사가 열린 2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과 활주로 인근 사고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현장 조사는 이양수 위원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 18명, 국토교통부 관계자, 그리고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조사단은 관제탑, 종합상황실, 그리고 참사 현장인 활주로와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 등을 차례로 돌며 당시 상황을 점검했다.

"소방차 출동 지시 없었다"…초동 대응 부실 확인
2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회의실에서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조사 일정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 민현기 기자

2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회의실에서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조사 일정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 민현기 기자


가장 큰 쟁점은 참사 당시 관제탑의 대응과 소방 출동 지연 문제였다. 국조특위 위원들이 관제탑과 상황실, 소방 관계자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질의를 이어간 끝에, 관제탑이 공항 소방대에 구체적인 출동 지시나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공항 측 시간대별 조치사항 자료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9시 1분, 관제탑은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한 비상 착륙 가능성을 소방 상황실에 알리며 '대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명시적인 '출동' 지시는 없었다. 이후 오전 9시 2분 34초에야 소방대 출동 알림이 울렸고, 불과 23초 뒤인 9시 2분 57초 항공기가 둔덕에 충돌하며 폭발했다.

공항 종합상황실장은 "소방차는 출동 명령이 있어야 이동한다"며 "관제탑에서 대기 명령은 있었지만, 출동 여부는 소방에 문의해야 한다"고 책임을 미뤘다. 시설부장 역시 "대기 외에 별도의 지시·지령은 없었다"고 시인했다.

이양수 위원장이 "대기 상태였다면 왜 현장 도착까지 2분가량이 걸렸느냐"고 묻자, 소방대장은 "맞바람과 활주로 이탈 과정 등으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국조특위 위원들은 "비상 착륙 상황이 공유됐음에도 폭발 이후에야 소방이 움직인 것 아니냐", "메이데이 선언 후 4분간 선제 조치가 전무했다"며 초동 대응 체계의 구조적 공백을 강하게 질타했다.


관제탑 현장 조사에서도 책임 회피성 발언이 이어져 유족들의 공분을 샀다. 관제탑장은 참사 당일 공항 인근 조류 활동 감지 여부와 복항 시도에 대한 개입 여부를 묻는 말에 "복항 당시 기장에게 기체 운영 우선권이 있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또 관제사의 랜딩기어 육안 확인 여부에 대해서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조사 범위"라며 답변을 피했고, "기장이 관련 답변을 하지 않으면 관제사가 답할 이유가 없다"고 부연했다.

이를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관제탑이 적극적으로 조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기장은 숨졌는데 관제사까지 입을 다무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누구 마음대로 치웠나"…사라진 유류품에 격앙
20일 오후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사고 유족들이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을 살펴보고 있다. 민현기 기자

20일 오후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사고 유족들이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을 살펴보고 있다. 민현기 기자


이날 오후에 이어진 사고 현장 조사에서는 유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국토부 관계자가 사고와 직접 관련 없는 조류 퇴치 방법 등을 브리핑하자 유족들은 "사고와 무관한 설명은 멈추라"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특히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둔덕 주변에 있던 희생자 유류품과 기체 잔해가 유가족 동의 없이 치워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유족들은 "누구 허락을 받고 유류품을 치웠느냐", "우리가 모를 줄 알았느냐"며 따져 물었다. 이에 사조위 측이 "잔해 보관 장소에서 해명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자, 격분한 한 유가족이 브리핑 중이던 이승열 사조위 조사단장을 밀쳐 넘어뜨리면서 브리핑이 중단되기도 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잔해 보관 장소를 찾은 유족들은 1년 넘게 노상에 방치돼 비바람을 맞고 있는 기체 잔해들을 보며 허망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둔덕 근처에는 가족들의 유류품이 분명히 있었는데, 사조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날 현장을 말끔히 치웠다"며 "오늘 이 자리는 지난 1년간의 왜곡과 은폐를 멈추는 진상 규명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조특위는 이날 확인된 관제탑과 소방, 종합상황실 간의 통신 기록과 출동 로그, 지휘 체계 매뉴얼 등을 토대로 관제탑의 지시 여부와 소방대의 출동 판단 경위를 집중적으로 규명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3분께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해 폭발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호남취재본부 민현기 기자 hyunk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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