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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말해야 할 때…정점 이후의 한국, 선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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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말해야 할 때…정점 이후의 한국, 선택의 시간”

백우열 연세대 교수 “‘피크 코리아’는 전환점, 축소 관리하는 새 규칙 필요”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피크코리아>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피크코리아>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전쟁도, 대규모 전염병도 없이 이런 출산율은 처음 본다. 이건 국가비상사태다.”

한 TV 프로그램의 인구기획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설명을 들은 미국 학자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피크 코리아’를 상징하는 이미지처럼 회자됐다.

지난 1월8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도 이 장면은 오래 남았다. 그는 “과장된 연출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인의 시선이기에 가능했던 가장 솔직한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그 반응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정작 그 숫자를 만들어낸 우리는 위기를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습니다. 서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요.”


백 교수가 느낀 위기감은 출생률이라는 숫자 그 자체보다, 그 숫자를 마주한 한국 사회의 태도였다. 인구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닌 정치학자인 그가 출생률을 국가 위기의 신호로 읽는 이유를 묻자, 그의 답은 ‘국가의 조건’으로 이어졌다.

“숫자는 결과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가리키는 국가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피크 코리아>와 관련해 인터뷰하면서 “피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피크 코리아>와 관련해 인터뷰하면서 “피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추격이 끝난 뒤, 국가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그는 오랫동안 한국을 ‘추격하는 국가’로 분석해왔다. 성장과 확장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전략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늘 그다음에 있었다. 추격이 끝난 뒤 국가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더 이상 따라잡을 대상이 없을 때, 국가는 어떤 언어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최근 출간한 <피크 코리아>는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백 교수가 말하는 ‘피크(Peak)’는 몰락이나 붕괴가 아니다.

“피크는 전환점입니다. 이전까지는 ‘확장’이 정의였지만, 이제는 ‘축소’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성장과 팽창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온 겁니다. 이전의 방식으로는 국가를 설명할 수 없게 됐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팽창기의 언어를 씁니다.”

백 교수는 “문제는 정점에 도달했느냐가 아니라, 정점 이후의 국면을 인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소멸이 국가 의제가 되었음에도 모두가 강남의 아파트값만 바라보는 현상은, 우리가 정점 이후의 국면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기괴한 풍경”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21~2023년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꼽았다.

“그 무렵 세계 각국의 정책결정자들이 한국을 보러 몰려왔습니다. 폴란드부터 동남아까지요. 바깥에서는 ‘글로벌 톱텐’ 국가라고 치켜세웠죠.”

하지만 내부의 풍경은 달랐다. 청년들은 연금 탈퇴를 말했고, 사람들은 삶이 점점 버거워진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 외부의 찬사와 내부의 불안이 동시에 커지는 괴리를 ‘피크 코리아’의 중요한 징후로 봤다.

인구 감소는 선택지 자체를 줄인다

백 교수가 진단하는 한국의 위기는 단일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현대 국가를 떠받치는 네 축으로 정치체제, 국가사회 구조, 경제·산업, 국방·군사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하게 되는 영역은 ‘국가사회 구조’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복지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자체를 줄여놓습니다.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사회 전체가 판단해야 하는 국면으로 들어선 겁니다.”

이 진단은 정치의 책임으로 이어진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를 “무능이 아니라 회피, 더 나아가 기만”이라고 했다.

“정치권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연금은 고갈될 것이고, 인구 구조상 과거와 같은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걸요.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더 키우겠다’ ‘다시 도약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을 반복합니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처럼 말하며 시간을 버는 정치”라고 표현했다. 그 비용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와 개인,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전가된다는 설명이다. 연금 탈퇴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그는 ‘사회 계약의 균열’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며 “피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며 “버틸 것인지, 바꿀 것인지를 말하는 순간부터 정치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며 “피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며 “버틸 것인지, 바꿀 것인지를 말하는 순간부터 정치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불편한 진실을 말할 용기

그렇다면 정점 이후의 국가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그의 답은 분명했다. 정치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점 이후의 정치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파이를 키우는 법이 아니라, 작아진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줄일지를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크 코리아’가 비관의 선언이 아니라 선택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피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위험합니다. 인정하는 순간부터 선택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 선택은 정치만의 몫이 아닙니다. 무엇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을 고를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번 ‘괜찮다’는 말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김윤숙 기자 y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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