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스스로 10년째 ‘등 긁는 소’…가슴은 매끈한 손잡이로, 허리는 슥슥 브러시로

한겨레
원문보기

스스로 10년째 ‘등 긁는 소’…가슴은 매끈한 손잡이로, 허리는 슥슥 브러시로

서울맑음 / -3.9 °
오스트리아 남부 카린시아에서 반려동물로 길러지는 소 ‘베로니카’가 브러시를 입에 물고 몸을 긁고 있다. 이는 소에게서 ‘도구 사용 능력’이 과학적으로 보고된 첫 사례다. 오수나-마스카로/비엔나대 제공

오스트리아 남부 카린시아에서 반려동물로 길러지는 소 ‘베로니카’가 브러시를 입에 물고 몸을 긁고 있다. 이는 소에게서 ‘도구 사용 능력’이 과학적으로 보고된 첫 사례다. 오수나-마스카로/비엔나대 제공


오스트리아의 암소가 스스로 브러시(빗)를 입에 물고 목적에 따라 몸 군데군데를 긁는 모습이 공개됐다. 소의 ‘도구 사용 능력’이 과학적으로 보고된 첫 사례로, 지금껏 도구를 사용한다고 알려진 영장류, 까마귀, 앵무새, 돌고래, 코끼리, 문어에 이어 소도 ‘똑똑한 동물’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알리스 아우어슈페르크 교수 등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수의과대학 연구진은 오스트리아 남부 카린시아에서 반려동물로 살고 있는 13살 암소 ‘베로니카’가 영장류가 아닌 포유류에서는 이전에 보고된 바 없는 ‘다목적 도구 사용’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다목적 도구 사용이란 한 물체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침팬지가 흰개미를 사냥할 때 나뭇가지를 낚싯대로 사용하면서 가지 끝 부분을 가공한 사례가 밝혀진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지난 19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영장류 손처럼 정교한 도구 사용 능력





논문을 보면, 베로니카는 혀로 브러시를 집어 올려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끼워 안정적으로 잡은 뒤 솔이 달린 끝쪽과 손잡이 부분을 몸의 여러 부위에 긁는 행동을 보였다. 소가 어떻게 도구를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은 베로니카에게 총 70번 브러시를 제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총 76번의 ‘자가 도구 사용’ 행동을 보였다. 목적에 따라 방향을 조절하거나 고쳐 무는 등 도구를 정교하게 조작한 것이다.



소 ‘베로니카’는 솔이 달린 브러시의 끝 부분을 몸의 위쪽에 사용하고 유방이나 배 등 아래쪽 좀 더 민감한 부분에는 손잡이 부분을 이용했다. 오수나-마스카로/비엔나대 제공

소 ‘베로니카’는 솔이 달린 브러시의 끝 부분을 몸의 위쪽에 사용하고 유방이나 배 등 아래쪽 좀 더 민감한 부분에는 손잡이 부분을 이용했다. 오수나-마스카로/비엔나대 제공


예상대로 베로니카가 브러시를 사용한 곳은 엉덩이, 허리, 앞다리, 배꼽, 유방 등 주로 몸의 뒷부분으로 스스로 긁기 어려운 곳이었다. 다만 베로니카의 행동이 예측을 뛰어넘은 부분도 있었는데,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이 신체 부위에 따라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신체의 위쪽을 긁을 때는 주로 솔이 달린 브러시 끝을 사용했지만, 유방이나 배 등 좀 더 민감한 부분을 긁을 때는 손잡이 부분을 이용해 정확하게 ‘목표 지점’을 노렸다.



브러시의 양쪽 끝을 사용하는 것은 다목적 도구 사용으로, 한 물건을 다양한 기능으로 수행하는 상황은 주로 침팬지에게서 관찰됐다. 침팬지가 흰개미를 사냥할 때 나뭇가지를 낚싯대처럼 사용하는데, 이때 줄기 한 쪽은 단단하게 유지하면서 반대쪽은 개미가 더 많이 들러붙도록 입으로 씹거나 손으로 훑어 가공한다. 도구를 사용 목적에 맞게 기술적으로 다루는 모습 또한 영장류와 까마귀에서만 관찰됐다.



베로니카의 도구 사용은 아우어슈베르크 교수가 동물의 인지·도구 사용에 관한 책을 출간한 것을 계기로 알려지게 됐다. 책을 펴낸 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동물이나 지역 야생동물에게서 관찰한 특정 행동을 찍은 영상을 교수에게 제보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의 영상도 그중 하나였다. 이번 연구의 배경을 취재한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카린시아에서 빵집을 운영 중인 베로니카의 주인 비타그르 비겔레는 소에게 도구 사용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스스로 막대를 집어 들고 긁기 시작했고 그 기술은 나날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똑똑한 소는 풍부한 감각 느끼며 살았네





소 ‘베로니카’는 솔이 달린 브러시의 끝 부분을 몸의 위쪽에 사용하고 유방이나 배 등 아래쪽 좀 더 민감한 부분에는 손잡이 부분을 이용했다. 오수나-마스카로/비엔나대 제공

소 ‘베로니카’는 솔이 달린 브러시의 끝 부분을 몸의 위쪽에 사용하고 유방이나 배 등 아래쪽 좀 더 민감한 부분에는 손잡이 부분을 이용했다. 오수나-마스카로/비엔나대 제공


아우어슈베르크 교수는 “우리는 소를 어리석음과 멍청함의 동의어처럼 써왔다”며 “베로니카의 사례는 농장동물을 다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그는 “베로니카가 소 세계의 아인슈타인이라서가 아니라 반려동물이란 점이 중요하다”면서 “공장식 축산에서 도살되는 수많은 소와 달리, 그는 자극이 풍부하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곳에서 13년 이상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장식 축산에서 소들은 통상 2~3살에 도살되기 때문에 우리가 소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비록 베로니카의 도구 사용이 이례적이긴 하지만, 비슷한 기술을 가진 다른 소에 대한 사례도 발견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유럽 집소인 베로니카와 달리 인도에서 기원한 소였는데 이들도 나뭇가지를 사용해 자신을 스스로 긁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논문의 주저자인 오수나-마스카로 박사는 “도구 사용 능력은 동물들의 본성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