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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엔 ‘기회’이자 ‘자본 규제의 벽’ [생산적 금융의 조건]

쿠키뉴스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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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엔 ‘기회’이자 ‘자본 규제의 벽’ [생산적 금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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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중심’ 운용의 한계…“취지는 공감”
현금흐름 불확실성은 최대 부담…K-ICS가 높이는 자본 부담
해법은 ‘유인 설계’…위험계수 완화·정부 보증론·단계적 투자
정부는 올해를 ‘생산적 금융 원년’으로 선언하며 금융자금의 흐름을 비생산적 영역에서 생산적 영역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이 다시 질문받는 배경이다. 그동안 금융 공급은 담보와 신용을 기준으로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집중돼 왔고, 혁신기업과 성장 초기 산업으로의 자금 유입은 제한적이었다. 본지는 생산적 금융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살펴봤다. 돈을 굴려 돈을 버는 금융을 넘어, 기업과 산업을 키우는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정부가 ‘생산적 금융 전환’을 국정 핵심 과제로 추진하면서 보험업권도 수백조원의 장기자금을 실물경제로 공급할 수 있는 잠재적 투자자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현행 자본규제와 위험계수 체계, 수익성 둔화 등 구조적 제약이 여전해 실질적인 기여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려면 보험사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의 정교화와 규제 인센티브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국채 중심’ 운용의 한계…“취지는 공감”

정부가 금융업권의 ‘생산적 금융 전환’을 핵심 정책 과제로 내세우며 시중 자금을 첨단산업·인프라 등 실물경제로 유도하는 정책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약 130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는 보험사는 금융권에서 은행 다음으로 큰 규모의 대표적 장기 투자자다. 장기 부채를 기반으로 ‘오래 굴릴 돈’을 운용해야 하는 산업 구조상, 보험업권은 정부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꼽힌다.

보험업계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보생명은 1조원 규모의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으며, 삼성화재·한화생명 등 주요 보험사들도 신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 등 생산적 분야에 대한 투자 계획을 잇따라 공개했다.

생산적 금융은 국채에 편중된 운용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 투자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우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는 ALM(자산·부채관리)을 위해 장기 투자처가 필요한 보험사에 실물경제에 기여하면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험업계 역시 생산적 금융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금융 자금이 벤처·중소기업으로 흘러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국가 경제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사회보장 제도이자 안전망으로 기능해 온 보험 산업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할 때, 실물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현금흐름 불확실성은 최대 부담…투자할수록 지급여력 하락

그러나 업계가 실제 투자 규모를 크게 늘리기에는 구조적 장벽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핵심 변수는 ‘예측 가능성’이다.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보험·연금연구실장은 “채권과 달리 생산적 금융은 현금 흐름의 예측이 매우 어렵다”며 “벤처 투자는 성공하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실패 시 손실이 급격히 확대되는 양극단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보험사가 가장 중시하는 보험금 지급능력 관리 원칙과 충돌한다.

자본 규제도 부담 요인이다. K-ICS 체계에서 비상장주식을 포함한 기타주식에는 최대 49% 하락을 가정한 위험계수가 적용되는 등 위험자산에 대한 요구자본 부담이 크다. 생산적 금융 투자 비중이 확대될수록 지급여력(킥스) 지표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전성 규제 방향 역시 보험사의 운신 폭을 좁힌다. 과거에는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등 보완자본을 활용해 지급여력을 관리해 왔지만, 최근 당국은 ‘기본자본 중심의 질적 자본’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순이익과 납입자본 등으로만 구성되는 기본자본은 확충이 쉽지 않아 공격적인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성장성이 둔화된 산업 구조도 위험 회피 성향을 강화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신규 가입 기반이 약화되고 보험료 납입 여력도 줄어드는 가운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보험을 ‘선택적 소비’로 인식하는 경향까지 확산되고 있다. 보험영업 수익성이 약화된 상황에서 생산적 금융 투자 실패는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경영 안정성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해법은 ‘유인 설계’…위험계수 완화·정부 보증론·단계적 확장

이에 업계는 제도적 유인을 통한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혁신기업·인프라 투자에 대한 위험계수 완화가 거론된다. 최우석 연구위원은 “국민성장펀드 등 정부나 정책금융기관이 보증이나 위험분담을 제공하는 투자에 대해서는 위험계수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데이터센터 등 첨단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도 요구자본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위험계수 완화 등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보험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핵심은 보험사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투자 회수의 불확실성을 제도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정부 보증 제도 도입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한상용 실장은 “보험사들이 손실 위험에 보다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이 필요하다”며 “벤처·혁신기업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업 파산이나 주가 급락 등에 대해 정부가 일정 부분을 보증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박지원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계적 확장 전략을 강조했다. 소규모 공동펀드나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히고, 성과와 리스크를 점검하면서 규제 보완과 투자 인프라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영국의 ‘Solvency UK’를 참고해 매칭조정(MA) 제도를 인프라 등 장기·안정적 현금흐름 자산까지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를 생산적 금융과 명시적으로 연계하는 후속 설계가 중요하다”며 “매칭조정 제도 개편을 포함해 자본규제, ALM, 상품구조를 연계한 장기투자 규제 패키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민성장펀드가 개별 펀드 출자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WIN 이니셔티브처럼 성장 단계별 자금 공급, 재간접(펀드 오브 펀드), 최초 상용화(FOAK) 프로젝트, 성장·회수 시장 인프라를 묶은 패키지형 지원을 병행할 경우 보험사는 투자 대상 발굴과 회수 경로의 불확실성을 낮추면서 장기 모험자본 공급에 보다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