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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빚다…세상 속으로 떨어진 '흙방울'

이데일리 오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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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빚다…세상 속으로 떨어진 '흙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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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 대통령 피습 테러사건 TF 구성
[2026 주목할 작가] 조원재
물레 돌려 흙을 빚고 만지는 작업
주둥이 없이 고깔처럼 솟은 모양
공기 중에 흩어지기 직전 '물방울'
움직이는 '시간' 손으로 붙들어낸
10년 수련이 쌓아낸 '순간의 영원'
갤러리조은서 2인전으로 첫 전시
작가 조원재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에서 성연화와 열고 있는 2인전 ‘평온의 가장자리’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 곁에 앉았다. ‘푸른 물방울 #015-2’(2025, 18×18×25㎝·왼쪽) 옆으로 ‘순간의 가장자리’(2025) 연작이 옹기종기 모였다. 작가는 물레에 올린 점토로 물방울 모양의 ‘흙방울’을 빚는다. 은근한 색과 부드러운 외양에 감춘 속 깊은 단단함이 특별하다. 작가는 “물레의 원심력과 손에 맞물려 호흡하는 흙을 느끼며 순환하는 자연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순간의 형상을 탐색한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조원재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에서 성연화와 열고 있는 2인전 ‘평온의 가장자리’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 곁에 앉았다. ‘푸른 물방울 #015-2’(2025, 18×18×25㎝·왼쪽) 옆으로 ‘순간의 가장자리’(2025) 연작이 옹기종기 모였다. 작가는 물레에 올린 점토로 물방울 모양의 ‘흙방울’을 빚는다. 은근한 색과 부드러운 외양에 감춘 속 깊은 단단함이 특별하다. 작가는 “물레의 원심력과 손에 맞물려 호흡하는 흙을 느끼며 순환하는 자연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순간의 형상을 탐색한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세상에 ‘저절로’인 것은 없다. 태어나려면 마땅히 산고가 따른다. 절절한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거나 지독한 겹겹의 껍질을 벗겨내거나. 아니라면 셀 수 없는 날들로 쌓은 예열의 시간이라도 필요하지 않겠나. 한낱 ‘물방울’이라고 비켜 갈 순 없다. 비로, 이슬로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순식간에 산화해버린다 해도 말이다. 그 한순간을 위해 우주의 시간은 끊임없이 움직였을 테니까.

그 순간을 못내 잡아두고 싶었던 건가. 우주의 시간을 멈춰 세우고 대신 사람의 시간을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우주를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그보다 더 지난한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야 했을 텐데. 그럼에도 저 ‘사람의 물방울’은 어찌 저리 평온하기만 한지.

펑퍼짐하게 바닥에 내려앉은 모양. 항아리라면 좁고 큰 주둥이를 벌리고 있을 윗부분이 완전히 막힌 채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제 막 공중에서 똑 떨어져 공기 중으로 흩어져가기 직전인, 영락없이 물방울이다. 다만 저 물방울의 정체는 말이다. 물이 아닌 ‘흙’이다. 중력이 아닌 손과 흙으로 빚어낸 형체. 그래 ‘흙방울’이다.

조원재의 ‘물방울’ 작품 설치 전경. 연작 ‘푸른 물방울’(2025) 중 두 점이다. 물레에서 형체를 빚은 두 개의 몸체를 붙인 뒤 다시 물레에 올려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표면을 찍어 패턴을 새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조원재의 ‘물방울’ 작품 설치 전경. 연작 ‘푸른 물방울’(2025) 중 두 점이다. 물레에서 형체를 빚은 두 개의 몸체를 붙인 뒤 다시 물레에 올려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표면을 찍어 패턴을 새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은근한 색감, 잔잔한 패턴을 입고 고즈넉하게 놓여 있는 도자의 자태가 단순치 않다는 얘기다. 굳이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말이다. ‘어쩌다 보니 갑자기’가 아닌 ‘그토록 묵직하고 집요하게’ 세상에 떨어진 과정이 보인다고 할까. “오랜 시간 흙을 다뤄왔다. 세상은 규칙적인 숫자로 시간을 계산하지만 삶에서 느끼는 시간의 속도와 무게는 매번 다르더라.”

작가 조원재(37). 그간 그럴 듯한 전시로 이름을 제대로 내건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초짜 무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대만국제도자비엔날레’(2016), ‘경기국제도자비엔날레’(2017) 등에서 입선·금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니까. 하다못해 “슬쩍 기웃거려나 보자” 했던 ‘익산공예대전’에선 대상(2020)과 우수상(2024)까지 거머쥐었다. 이쯤 되면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또래 작가와 비교해보면 말이다. 신진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나이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작품에서 보이는 연륜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 작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건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조원재의 주요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했다. ‘순간의 가장자리’(2025), ‘푸른 물방울’(2025),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등 ‘물방울’ 연작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두고 왼쪽에는 ‘2025-결 달항아리-004’(2024, 37.5×37.5×34㎝)를, 오른쪽에는 ‘자연시점 #001’(2023, 42×12×37㎝)을 놓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조원재의 주요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했다. ‘순간의 가장자리’(2025), ‘푸른 물방울’(2025),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등 ‘물방울’ 연작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두고 왼쪽에는 ‘2025-결 달항아리-004’(2024, 37.5×37.5×34㎝)를, 오른쪽에는 ‘자연시점 #001’(2023, 42×12×37㎝)을 놓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조원재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에 섞여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조원재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에 섞여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스승도 없이 홀로 수련한 10년 세월

“음대 지망생이었다. 피아노를 쳤는데 어느 날 도저히 못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급작스럽게 전공을 바꿔서 진학한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전공이었단다. 그런데 그 선택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나 보다. “함께 뭔가를 도모하는 경영보다는 혼자 하고 혼자 결정하는 일이 내게 맞겠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니.


그렇게 졸업 후 찾아간 일이 “내 손으로 하는 도예”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반전이 있다. 서울대 평생교육원 도예취미반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거다. 평생교육원이라니. 느지막이 제2, 제3의 인생을 위해 모인 어르신 동급생들과 1년여를 함께 공부했다는 소리다. 그 시절이 새삼스러운지 작가는 “아주머니들과 1년쯤 공부하고 수료한 뒤 공동작업실을 빌려 혼자 작업했다”며 웃는다. 결국 그 세월이 “오랜 시간”의 서장이었고 장장 10년을 넘기며 이어졌단 얘기다.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조원재의 ‘물방울’ 연작 중 ‘순간의 가장자리’(2025)와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곁에 넉넉해 보이는 항아리 하나(‘2024-푸른호-007’ 2024, 28×28×22.5㎝·아래 왼쪽)가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조원재의 ‘물방울’ 연작 중 ‘순간의 가장자리’(2025)와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곁에 넉넉해 보이는 항아리 하나(‘2024-푸른호-007’ 2024, 28×28×22.5㎝·아래 왼쪽)가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말로만 듣던 ‘독학’으로 국내외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일도 그 시절에 속해 있다. 오죽하면 주최 측에서 변변한 이력도 없는 ‘비전공도예가’의 신분을 다시 확인하려 들었다지 않는가. 물론 그 일화가 계기가 된 건 아니지만 이후 작가는 그 ‘변변한 이력’을 만들게 됐다. 모교인 한예종 대학원 조형예술과에 진학해 제도권 예술교육을 받은 일이다. 흙을 만진 지 15년이 될 무렵인 2024년에야 ‘도자전공’이란 타이틀을 가진 거다. “그곳에서 비로소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이전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물레와 흙의 관계에 대해 본질적으로 묻고 답한 기간이다.”

이 말대로 작가 작업은 “물레로 흙을 빚고 만지는” 일이다. 즐겼던 견뎠던 그 오랜 세월을 수련기간으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물레작업이 마치 피아노 치는 것과 같더라. 페달을 밟고 손을 움직여 유형의 형체를 만들어내니까. 게다가 몇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훈련이 이미 돼 있던 상태였다. 익숙한 다른 일을 하는 듯했다고 할까.”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바닥에 설치한 조원재의 ‘물방울’ 연작과 항아리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순간의 가장자리’(2025), ‘푸른 물방울’(2025) 곁에 ‘2023-푸른호-017’(2023, 21×21×20㎝·오른쪽)가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바닥에 설치한 조원재의 ‘물방울’ 연작과 항아리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순간의 가장자리’(2025), ‘푸른 물방울’(2025) 곁에 ‘2023-푸른호-017’(2023, 21×21×20㎝·오른쪽)가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래도 사실 여기까지였다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물레가 돌아가는 데로 항아리를 빚고 그릇을 만들어냈다면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레로 꼭 항아리를 고집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동그랗고 대칭적인 것만 빚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방울’이라고 통칭하는 연작은 그 생각에서 비롯됐다. 주둥이가 없는, 고깔처럼 뾰족한 닫힌 결정체. “물레에 점토를 올리고 보통은 두 개의 몸체를 만든다. 둘을 붙여 형체가 생기면 다시 물레에 올리고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표면을 찍어 패턴을 새긴다.” 이후 1240도쯤 되는 전기가마에서 구워내는데, 여느 도자 작업처럼 사전에 유약을 바르진 않는단다. 대신 사포로 문질러 윤기를 낸다고 했다. 덕분에 작가의 작품은 물과 바람이 스친 풍화작용을 이겨낸 단단한 돌멩이처럼 보인다.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작가 성연화의 작품과 조우한 조원재의 작품들이 2인전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탁자 위에 설치한 조원재의 작품 ‘분홍빛 호’(2023, 30×30×33㎝·왼쪽)와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연작 위로 성연화의 한지회화 ‘평온’(Serenity 2025)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작가 성연화의 작품과 조우한 조원재의 작품들이 2인전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탁자 위에 설치한 조원재의 작품 ‘분홍빛 호’(2023, 30×30×33㎝·왼쪽)와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연작 위로 성연화의 한지회화 ‘평온’(Serenity 2025)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면 왜 하필 물방울이었을까. “새벽산책 길에 풀잎 끝 이슬이 유독 눈에 띄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라.” 바로 그때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봤단다. “자연의 시간, 생명의 성장, 에너지의 순환을 순간적으로 붙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때부터 물, 흙, 돌, 바람 등 자연 요소에서 감지되는 시간의 리듬을 관찰해 흙의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알맞은 습도의 흙을 준비하고 물레 앞에 앉으면 자연의 시간은 이내 나 자신의 시간으로 바뀐다.”


겸손한 작가의 겸손하지 않은 작품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 이제야 작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시가 한창이다. 남들은 다 하는 개인전도 ‘아직은 아니다’ 싶었는지 한지회화를 하는 작가 성연화(40)와 2인전 ‘평온의 가장자리’로 대신했다(24일까지).

작가 조원재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멀리 성연화의 한지회화 ‘흐름’(Flow 258-000-020 2025, 116.8×91.0㎝)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조원재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멀리 성연화의 한지회화 ‘흐름’(Flow 258-000-020 2025, 116.8×91.0㎝)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50여 점 출품작 중 무게중심은 역시 ‘물방울’에 실렸다.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시차를 포착한 듯 길쭉하게 곧추선 모양, 납작하게 퍼진 모양 등이 ‘순간의 가장자리’(2025)란 작품명을 달고 연작으로 나왔다. 그중 푸른 빛이 슬쩍 도는 작품들에는 ‘푸른 물방울’(2024·2025)이란 타이틀을 따로 달아줬다. 극적인 ‘연출’도 보인다. 작고 동그란 물방울이 공중에 매달린 그 아래로 커다랗고 뾰족한 물방울을 배치해 순간의 영원을 탐한 ‘이전과 이후 그 사이’(2025)다.

외형이야 어떻든 한결이다. 여리디여린 이슬을 입은 견고한 흙방울. 이제 농밀한 그 덩어리를 세상 속에 본격적으로 떨어뜨릴 준비가 끝난 듯하다.

조원재의 ‘이전과 이후 그 사이’(2025, 가변크기 4.5×4.5×4㎝ & 33×33×30㎝) 설치 전경. 작고 동그란 물방울이 공중에 매달린 아래로 커다랗고 뾰족한 물방울을 배치해 적게는 물방울의 움직임, 크게는 자연의 순환을 내보인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연출이 돋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조원재의 ‘이전과 이후 그 사이’(2025, 가변크기 4.5×4.5×4㎝ & 33×33×30㎝) 설치 전경. 작고 동그란 물방울이 공중에 매달린 아래로 커다랗고 뾰족한 물방울을 배치해 적게는 물방울의 움직임, 크게는 자연의 순환을 내보인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연출이 돋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