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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초점] K팝의 금빛 역설: 잘나갈수록 한국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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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초점] K팝의 금빛 역설: 잘나갈수록 한국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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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이 탄생했다.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OST인 '골든(Golden)'이 애니메이션 주제가상을 거머쥔 것이다. K팝이 이제 명실상부한 주류 팝 시장의 한 축이 됐음을 알리는 축포였다.

하지만 이 성취 뒤에는 서늘한 위기감도 맴돈다. 주인공 이재의 수상 소감부터 노래 가사까지, 우리 음악에서 한국어가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AI를 통해 2025년 연말 차트 TOP 50 곡들을 분석한 결과, 한국어는 이제 주류가 아닌 분명한 '장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12%→46.8%…이제 영어는 추임새가 아니다
먼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0년대 초반(2003년 기준) 멜론 상위권 곡들의 영어 가사 비중은 평균 12% 내외였다. 이효리의 '10 Minutes', 휘성의 'With Me' 등 당시 곡들은 제목이 영어일지라도 가사의 90% 이상은 한국어 서사로 채워졌다.

국민적인 인기를 끈 원더걸스의 'Tell me'나 소녀시대의 'Gee', 빅뱅의 '거짓말'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영어는 곡의 제목 혹은 듣는 재미를 더하는 원 포인트 추임새에 머물렀다.

하지만 2026년 1월 현재, TOP 50의 평균 영어 비중은 46.8%까지 치솟았다. 20년 사이 약 4배가 증가한 셈이다. 특히 2025년 이후 발매된 아이돌 신곡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영어 가사 비율은 60%를 넘어선다. K팝 신곡 가사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채워지는 현상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3.6%의 한국어, 트러플 과자가 된 K팝


이번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수상한 '골든'은 이러한 흐름의 정점이자 묘한 타협점을 보여 준다. 분석 결과, 이 곡의 한국어 가사 비중은 단 3.6%였다. 곡 전체를 통틀어 한국어는 단 4문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함량 미달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전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주제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그 좁은 틈새에 한국어를 심어 넣은 제작진의 결단은 평가할 만하다.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단 4마디로 'K의 인장'을 찍은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골든'이 아닌 다른 K팝 곡들이다. 함량 0.0003%의 트러플 가루를 넣고 '트러플 과자'라고 이름을 붙인 질소 포장 과자처럼, 3% 남짓의 한국어만 섞인 노래가 'K팝'으로 판매되는 것이 정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어라는 정체성을 '시즈닝' 정도로 전락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 까닭이다.

차트의 이분법: 화력의 영어 vs. 공감의 한국어


다시 차트로 돌아가 보자.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로제의 'APT.'는 영어 비중이 92%에 달한다. 제니의 'like JENNIE' 역시 98%로, 사실상 한국어는 '기적'처럼 한두 마디 들릴 수준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빌보드와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를 정조준한 '글로벌 팝'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반면 차트 4위를 지킨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은 영어 비중이 0%인 순수 한국어 곡이며, 이무진의 '청춘만화'와 '에피소드' 역시 10% 미만의 저농도 영어 비중을 유지한다.

흥미로운 점은 생명력이다. 영어 가사 비중이 높은 아이돌 곡이 음원 차트에서 순간적인 폭발력을 보여 준다면, 한국어 비중이 높은 곡들은 한 번 차트에 진입하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저력을 보여 준다. 실제로 이번 TOP 50 리스트를 보면 2018년 발매된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40위), 2019년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41위) 등 발매된 지 5~7년이 지난 곡들이 여전히 차트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즈니스적 '최적화'를 위한 다이어트


그렇다면 왜 한국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는가. 결국 비즈니스적인 선택의 결과다. 첫째는 글로벌 스트리밍 최적화다. '골든'의 사례처럼 북미 시장에서 주류 팝과 경쟁하기 위해 언어적 이질감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둘째는 제작 시스템의 변화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크레디트에 해외 작곡가 비중이 크게 늘었다. 해외 작곡가들이 보내 주는 가이드 녹음 당시의 리듬감과 발음을 한국어로 억지로 바꾸면 특유의 '맛'이 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골든'이 거머쥔 트로피는 눈부시지만, 그 영광에만 취해 있기엔 우리 앞의 숙제가 무겁다. 2026년 가요계에서 한국어 가사는 명백한 '멸종 위기'에 놓였다. 역설적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한국어 가사로 승부하는 아티스트들이 오히려 "희귀하다",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됐다. 'K팝'이 단순한 제조국 표시로 남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한국어 서사가 가진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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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star 곽현수 (abroa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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