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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뜬 톱배우들, 영화를 떠나다

노컷뉴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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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뜬 톱배우들, 영화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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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K무비②]
편집자 주
우리네 문화를 전 세계적인 황금기로 이끈 마중물 'K무비'가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옵니다.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살피고, 보다 나은 내일을 열 해법을 모색합니다.
지난해 9월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황진환 기자

지난해 9월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황진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박살난 '천만영화' 시대…숨통 움켜쥔 괴물들
② 영화로 뜬 톱배우들, 영화를 떠나다
(계속)

더 큰 돈과 명예를 좇는 삶이 마치 인류 보편의 가치인 양 추앙받는 오늘날, '돈보다 더 가치있는 것들도 있다'는 금언(金言)은 이제 한낱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로 뜬 배우들이 영화를 떠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영화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아름다운 시절)라는 든든한 우산 아래 성장해온 그들이, 고사 위기에 놓여 더는 몸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오늘날 영화판을 외면한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영화인 A는 "30억~40억원짜리 영화에 출연료가 8억~10억원으로 불어난 유명 배우를 쓰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자기 몸값을 낮추고 지분을 출자하는 방식 등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한국영화에서 그들을 만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영화인 B는 "현재 우리 산업 구조 역량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인건비 상승이라고 지적되는 부분도 있다"며 "배우 출연료나 스태프 인건비 문제 등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면서 서로 협의해 나간다면 더 나은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규모 상업영화 '몸값' 천정부지…"특정 스타 의존도↑"


한국영화에서 배우들 출연료 비중은 얼마나 될까.


영화진흥위원회 '2024년 한국 상업영화 순제작비 규모별 편당 평균 순제작비 세부 분석' 표에 따르면, 순제작비 가운데 인건비(스태프료+출연료)는 규모별 모든 구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순제작비 규모별 인건비 비중을 더 자세히 보면 △30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39.58% △50억원 이상 80억원 미만: 55.42% △8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46.02% △100억원 이상 150억원 미만: 45.94% △150억원 이상: 33.88% 등이다.

특히 지난 2024년 순제작비 150억원 이상 영화에서는 2022년과 2023년까지 통틀어 처음으로 출연료 비중(17.24%)이 스태프료(16.64%)를 뛰어넘었다.


이는 결국 많은 돈을 들인 규모 큰 상업영화에서 배우들 몸값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인 C는 "산업적 침체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투자 책임자들 입장에서는 특정 스타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수치를 보면 스타가 결코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유명 배우들 '소구력' 오래 갈 것이라 보기 어렵다"


유명 배우 출연료는 코로나19 사태를 전후한 이른바 '천만영화' 시대와 OTT 대명사 격인 '넷플릭스' 시대라는 호황기를 등에 업고 급등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시나브로 뚜렷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는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자본의 제작 환경 독점은 배우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감독 등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는 10년 전 CJ가 했던 일이기도 하다"며 "콘텐츠 소비의 다양성과 변화 추이를 봤을 때 현재 유명 배우들의 소구력(콘텐츠가 수요자의 사고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오래 갈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들 배우의 생물학적 연령 역시 문제"라며 "오히려 젊은 세대의 진입이 인구학적 분포와 맞물리면서 향후 새로운 배우들 성장을 더욱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문화평론가 정덕현 역시 "배우 출연료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는 만큼 수요와 공급 법칙 안에서 자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감당할 수 없는 배우 개런티를 수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가능성 있는 대체 배우들을 찾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봤다.

배우 고(故) 오현경. 자료사진

배우 고(故) 오현경. 자료사진



어느 대배우의 유훈…"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겠다"


배우 고(故) 오현경(1936-2024)은 광고를 찍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생전 마주한 인터뷰 자리에서 고인은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신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작지만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영화 관객들과 꾸준히 호흡하던 그때, 고인을 만난 곳은 '송백당(松栢堂)'이었다. 이곳은 그가 후배 배우들에게 무료로 연기 노하우를 전수해온 교육장이었다.

해당 인터뷰 시기는 송백당이 경영난 탓에 문을 닫은 뒤 다시 개관했을 즈음이었는데 "더 늦기 전에 보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당시 고인은 재개관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다음은 생전 고인과 나눈 인터뷰 가운데 한 대목이다.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한없이 긍정했던 한 어른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TV에서 한참 인기를 얻을 때였는데 당시 아파트 3채 값을 가져와서 광고를 찍자는 것도 고사한 적이 있다. 처음에 그쪽에서 80만원이라는 큰 돈을 가져왔는데 광고 출연 안 하기로 마음을 정한 지 두 달 밖에 안 됐을 때였다. 아파트 한 채 값이 45만원 할 때였으니 대단했지. 안 찍겠다고 핑계 대기도 뭐해서 '돈이 적으니 톱스타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정말 100만원을 가져오더라. 방송국에서도 따로 판공비로 20만원을 준다고 하더라. 그래도 150만원 아니면 안 한다고 말하니 포기하더라.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했는데 아버지가 전세 구할 돈만 주시더라. 그때 조금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었다. 처음 송백당 문을 닫을 때도 그 돈 생각이 참 많이 나더라. (웃음)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에도 광고가 들어왔는데 안 했다. 그 신조만큼은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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