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교사와 유착한 일타강사에 ‘보증’ 서준 서울시 [왜냐면]

한겨레
원문보기

교사와 유착한 일타강사에 ‘보증’ 서준 서울시 [왜냐면]

서울맑음 / -3.9 °
‘서울런’ 누리집 화면 갈무리.

‘서울런’ 누리집 화면 갈무리.




장승진 |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최근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난 일타 강사와 현직 교사 간 금품 수수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특정 수학 강사가 교사들에게 건넨 금액은 한 사람당 최대 1억8000만원에 달했고, 한 현직 교사는 단속을 피하려 배우자의 계좌까지 동원했다. 출판 전인 교육방송(EBS) 수능 특강 교재 파일이 강사에게 통째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부업’이 아니라, 공교육의 근간과 평가의 공정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교육 카르텔’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공교육의 핵심 주체인 교사가 사교육 시장의 ‘문항 공급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교사의 전문성은 국가 자원이며, 학생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르치는 데 쓰여야 할 공적 자산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일부 교사들은 그 전문성을 사적 이익을 위해 팔아치웠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면서 뒤로는 특정 강사의 수익을 위해 문항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다수 선량한 교사와 학생들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스승’을 ‘하청업자’로 전락시킨 타락한 전문성 앞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참담한 교육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기형적 거래가 가능했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이유 중 하나로 평가의 타당성은 사라진 채 변별력만 강조된 수능 중심 체제를 떠올릴 수 있다. 이른바 ‘킬러 문항’ 한두개로 인생이 결정되는 구조 아래, 대다수 수험생과 학부모는 일타 강사가 독점한 ‘고급 정보’에 목을 매지 않을 수 없고, 교육이 사고력과 창의성을 기르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더 비싼 돈을 들여 ‘비밀스러운 유형’을 미리 익히느냐는 정보전으로 변질되면서 지금과 같은 괴물들이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안을 냉정하게 살피면 이 구조를 지탱해 온 공공기관의 정책 방향 또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서울런’(취약계층 교육 플랫폼) 사업은 이번 비리 논란의 중심에 선 이들을 포함한 대형 사교육 강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적 플랫폼을 제공해 왔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기소만 최근에 이뤄졌을 뿐, 문항 거래 의혹은 이미 2023학년도 수능 당시부터 교육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 예산을 들여 이들의 강의를 앞장서 보급한 것은, 결과적으로 해당 강사들의 신뢰도에 대한 ‘공적 보증’을 서준 것과 다름 없다. 이는 공교육의 내실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에게 깊은 회의감을 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사교육 의존을 자인하는 모순된 신호를 보낸 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결과 지상주의가 팽배한 입시 환경 속에서, 공공기관마저 공적 윤리를 외면한 채 사교육 콘텐츠 유통에만 몰두한다면 우리 사회가 교육적 일탈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을 막을 명분은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가 자리잡게 된 교육 현장의 토양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때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교육 콘텐츠를 유통하는 단기적 처방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교육 복지’인지 냉정하게 자문해야 하고, 이제라도 공적 자원을 사교육 시장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쓰기보다 공교육의 자생력을 높이고 현장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변별력이라는 이름 아래 교육적 반칙이 묵인되지 않도록, 대입 제도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육은 승리를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체득하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거래된 것은 단순한 시험 문항이 아니라, 교육을 향한 우리 사회의 신뢰와 최소한의 양심이다. 무너진 그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