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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 창원시 주민자치협의회 회장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풀뿌리 민주주의는 분명히 뿌리를 내렸고, 주민자치회라는 제도적 장치도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진정한 주민자치의 단계에 들어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행정이 정한 틀 안에서, 정형화된 사업을 집행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30년은 제도가 아니라 ‘역량’을 채우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주민자치는 결국 주민의 참여 역량에서 시작됩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소수의 열성적 사람만으로는 동네를 바꿀 수 없습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 골목 상인, 청년과 어르신, 돌봄과 장애 당사자까지 일상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민자치회는 이들을 회의장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넘어, 생활 속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기획해야 합니다. 온라인 설문, 소규모 원탁토론, 찾아가는 간담회 등 일상적인 참여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곧 역량 강화입니다.
둘째, 다양한 분야의 주민 목소리를 정책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과 바람은 때로는 막연한 감정으로 표현됩니다. “동네가 예전 같지 않다”, “아이 키우기 불편하다”는 말들을 모아 구체적 의제로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해 사업으로 설계하는 과정이 전문성입니다. 주민자치회는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봉사단체가 아니라, 주민의 감각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가교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회의 운영 능력, 의제 발굴 능력, 예산과 행정 절차에 대한 이해도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지금 지방소멸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고, 학교가 문을 닫고, 동네 상권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지방의 생존 전략은 더 이상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공모사업에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마을의 자원을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존의 길이 열립니다. 문화, 교육, 돌봄, 환경, 경제를 아우르는 지역 살림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이 이제 주민자치회의 역할로 부각되어야 합니다. “우리 동네를 10년 뒤에도 아이들이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 곧 지방소멸을 막는 주민자치의 전략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행정과 주민자치회의 관계 재정립도 필요합니다. 행정이 기획하고 주민이 동원되는 구조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행정은 주민자치회를 현장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정보와 예산, 권한을 과감히 나누어야 합니다. 주민자치회 역시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고 책임 있게 집행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협력이 쌓일 때, ‘주민이 만든 지방자치’라는 말이 빈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될 것입니다.
지방자치 30년, 이제 우리는 제도 논의를 넘어 ‘자치 역량 중심의 주민자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고, 더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고, 그 의견이 실제 정책과 예산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진정한 주민자치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 주민자치회가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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