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압박 본격화… 반도체·가전까지 확대 가능성
집권 2년 차 트럼프 행정부, ‘보편 관세’ 카드 만지작
삼성·SK, 실적 발표 앞두고 공급망·투자 전략 재점검
집권 2년 차 트럼프 행정부, ‘보편 관세’ 카드 만지작
삼성·SK, 실적 발표 앞두고 공급망·투자 전략 재점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20일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역대급 ‘슈퍼 사이클’에 진입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조 원대 설비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국내 반도체·전자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를 앞세워 자국 내 생산 확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추진 중인 중장기 투자 전략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발동된 AI 칩 25% 관세… “다음은 메모리?”
19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뉴욕주 시러큐스에서 열린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같은 압박은 이미 발동된 관세 조치와 맞물리며 업계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엔비디아의 H200, AMD의 MI325X 등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가 미국으로 들어왔다가 제3국으로 재수출되는 물량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대만 TSMC 등 해외에서 생산된 칩이 대상이며, 미국 내 데이터센터용으로 수입되는 물량은 예외로 뒀다.
업계에서는 이를 ‘1단계 조치’로 보고 있다. 러트닉 장관의 ‘메모리 100% 관세’ 발언이 협상용 압박에 그칠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AI 칩 관세가 이미 행정명령으로 발동된 만큼 다음 단계가 메모리 반도체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해 온 ‘모든 수입품 10% 보편 관세’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산업 전반이 이중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수십조 쏟아붓고 있는데”…韓 기업들 ‘투자 딜레마’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이미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CAPEX)는 약 35조원, SK하이닉스는 약 34조원으로 추산된다. JP모건은 SK하이닉스의 내년 투자 규모가 최대 48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미 투자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370억 달러(한화 약 54조원)를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 규모의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양사는 국내에서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평택 캠퍼스 등에 수백조 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추가 투자를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미 집행되는 투자 규모만으로도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테일러 공장은 파운드리로 설계돼 있어 당장 메모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산지 규정’ 강화 땐 가전·디스플레이도 사정권
관세 리스크는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에서 칩을 생산한 뒤 중국 우시·다롄 등에서 후공정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LG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베트남과 멕시코 공장에서 TV와 패널을 조립해 북미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미국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할 경우 이 같은 글로벌 공급망 구조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산 중간재를 제3국에서 조립한 제품이라도 ‘우회 수출’로 판단해 보편 관세나 섹터별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해 온 ‘보편 관세 10%’ 정책이 백악관에서 본격 검토에 들어가면서, 업계에서는 “한국산 가전과 디스플레이의 현지 가격 경쟁력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월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열린 제53차 통상추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
다보스서 긴급 외교전… 정부, 美 측과 접촉 확대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9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미국 측 주요 인사들과 접촉하며 관세 리스크 해소에 주력할 방침이다.
최근 대만 TSMC가 2500억달러(약 37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 협상에 나선 사례가 알려지면서, 국내 기업에도 유사한 ‘패키지 딜’이 적용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 본부장은 지난해 합의한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반도체 관세’ 원칙을 내세워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관세 포고문에 서명하자, 김정관 장관 주재로 긴급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으며, 업계와 별도의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의견을 청취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