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대통령 비서실)에 장관급 및 1급 수석비서관직을 신설했다. 직전의 청와대 조직은 장관급인 비서실장 휘하에 1급 정무비서관이 정치·경제·행정·외교·농림 업무를 총괄하는 체제로 운영됐다. 개편 후에는 비서실장 아래 정무·경제·민원·공보·의전·총무의 국정 업무 분야별 수석들이 임명돼 개별 분야를 전담했다. 그중 ‘정무수석’은 국회와 소통하고 정계 동향, 국민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초대 정무수석에는 육사 출신이자 무임소장관(사실상 ‘정무장관’)을 지낸 조시형 전 민주공화당 의원이 발탁됐다. 이후로도 대통령의 복심을 잘 알고 정계에 두루 친분을 갖춘 중량감 있는 인사들에게 이 자리가 돌아갔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실 핵심 참모지만 가시밭길의 숙명을 안고 있다. 국회에 가서 야당의 국정 협조를 얻기 위해 읍소까지 감내해야 한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야당의 입장과 민심을 전하다가 ‘청와대 내 야당’으로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유신 체제 시절 정무수석으로서 소신 발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학렬 전 경제부총리, 국민의 정부 첫 정무수석으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이 대표 사례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맡아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나가느라 동분서주했다.
정무수석직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런 영향인지 노무현 정부는 집권 2년 차에 정무수석직을 폐지했다가 국회와의 소통에 애를 먹었다. 결국 제도나 직책의 옳고 그름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 자리를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4선 경력의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초대 정무수석으로 세워 여야와 조율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초강경 노선으로 치닫는 여당 지도부와 주요 정국 현안을 놓고 조율에 진통을 겪었다. 제1야당 국민의힘도 강성 보수의 늪에 빠져 협치에 미온적이다. 3선의 홍익표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새롭게 정무수석을 맡았다. 전임자 못지않게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아야 이재명 정부의 실용 정치에 활로를 열 수 있다.
민병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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