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직상담 안내판의 모습. 2025.12.15 뉴스1 |
서울 부모님 댁에 살고 있는 30대 여성 박진희 씨는 2015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2년가량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다가 포기했다. 이후 10년째 아르바이트나 6개월∼2년짜리 비정규직 업무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은퇴한 부모님은 자식이 독립하길 바라지만, 월세 보증금도 부족한 박 씨에게 독립은 언감생심이다. 그는 “결혼이나 출산, 노후 계획 설계는 내게 꿈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장백청(장기 백수 청년)’ 증가 현상이 세대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전체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해 소득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하는데, 주거비 등 생활비는 늘면서 향후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한국의 20~30대가 거품 경제 붕괴 후 취업 빙하기를 겪은 뒤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는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1970~1984년생)와 닮은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졸업하며 취업하는 청년 10명 중 1명꼴
19일 한국은행의 ‘청년세대(15~29세) 노동시장 진입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은 과거보다 일자리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4∼2013년 취업한 청년은 첫 취업을 위한 구직 기간이 평균 18.7개월이었다. 반면 2014∼2023년 청년 구직자의 구직 기간은 22.7개월로 늘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청년 구직자 비율도 같은 기간 17.9%에서 10.4%로 7.5%포인트 하락했다. 졸업하며 취업하는 청년은 10명 중 1명 수준이다.
취업이 늦어지는 이유는 일자리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성장이 정체된 데다 대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거나 수시 채용을 늘리고 있어 첫 취업 관문이 좁아진 셈이다.
취업이 늦어지니 임금도 감소했다. 취업 준비 기간이 1년 길어지면 다른 구직자보다 실질 임금이 6.7%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취업 공백기가 3년 이상인 청년 구직자는 정규직 등으로 안정적 소득을 벌 확률이 56.2%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호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청년층의 구직 기간 또는 취업 공백기가 길어지면 업무 숙련 기회를 상실해 고용 안정성이 약화하고 소득이 감소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 日 ‘잃어버린 세대’, 불안한 중년
소득 감소와 함께 늘어난 주거비도 청년층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년 상당수는 월세 형태로 사는데, 소형 비(非)아파트 주택 공급이 수익성 저하와 원가 상승 등으로 충분히 늘지 못하면서 월세가 가파르게 오르기 때문이다. 고시원 등 청년층의 취약 거주지 이용 비중은 2010년 5.6%에서 2023년 11.5%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한은이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15∼29세 이하 청년층 주거비가 1% 오르면 자산은 0.0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이 팍팍한 청년층은 결혼과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기 쉽다. 이런 현상은 이젠 일본에서 중년이 된 ‘잃어버린 세대’와 엇비슷하다. 취업 빙하기 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지금도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면서 일본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한은은 “한국 청년층의 취약한 고용과 주거 상황을 경제 성장 기반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는 경제 위험 요소로 인식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청년 지원을 포함한 생활물가 안정 대책을 마련해 설 연휴 전 발표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최근 물가와 환율 상황을 볼 때 생활물가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특히 청년과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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