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일요시사 언론사 이미지

<이윤호 교수의 대중 범죄학> 벌금 차등 부과, 어떻게 볼 것인가?

일요시사
원문보기

<이윤호 교수의 대중 범죄학> 벌금 차등 부과, 어떻게 볼 것인가?

서울맑음 / -3.9 °
이윤호 동국대 명예교수

이윤호 동국대 명예교수


사법 정의란 곧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법 정의를 논할 때면 언제나 사법 절차상에서나 그 결과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해야 하고, 그것이 곧 사법의 정당성이고 그래야 정의가 선다고 주장한다.

예전 한때 유행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부르짖으며 사법 부정의를 질타하곤 했었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이런 원칙에 이론이 있을 수 없지만, 이처럼 획일적 평등성이 과연 정의 실현을 위한 불가침의 영역인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벌금의 차등 부과” 또는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 얘기다.

자고로 형벌의 목적은 단지 응보만이 아니다. 형벌을 통한 교화·개선도 있고, 형벌의 고통에 의한 범죄의 억제도 있다.

최근에는 피해 회복을 사법 정의의 실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형벌관, 형벌 목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죄에 상응한 처벌‘이라는 형벌관과 형벌의 고통을 통한 범죄 억제라는 형벌관이 가장 대표적인, 아니면 적어도 가장 보편적이거나 기본적인 형벌의 목적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소위 ’차등적 벌금제‘ 논의의 저변에 깔린 형벌관은 아마도 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에 대해서는 논란도 없지 않다. 바로 형벌의 억제 효과는 개인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형이라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으로 작용하게 돼 그로 인한 범죄, 특히 재범의 억제에 효과적이라고 기대되지만, 일부에게는 오히려 형벌이 일종의 보상으로도 작용할 수 있으며, 되레 재범을 부추기는 새로운 자극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형벌, 특히 형벌의 범죄 억제 효과의 개인별 차이는 자유형이 아니라 벌금형이라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벌금형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인간은 합리적 계산에 능하며, 당연히 범죄자도 예외일 수 없어서 범행의 선택이 자유의지에 따른 범죄의 비용이나 이익에 대한 철저한,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라면 형벌의 범죄 억제 효과도 그만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는 이런 고려 없이 같은 피해에 대해서는 피의자에 무관하게 벌금이 획일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같은 벌금형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으로 작용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사법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법 정신에는 충실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어쩌면 가장 중요한 형벌의 목적일 수도 있는 억제 효과에 있어서도 평등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지만 실제 있었던 사례로 법원이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선고하자, 더 강력한 형벌인 집행유예를 선고해 달라고 간청했다. 벌금형은 당장 없는 돈을 내야 하는 고통이 발생하지만, 집행유예는 기다리면 없어지는 형벌이기 때문에 자영업자나 경제적 약자 계층에게는 벌금형이 더 치명적인 형벌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경제력이 충분한 사람에게는 벌금형이 아무런 형벌이나 그로 인한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형벌은 사람에 따라 유형에 따라 미치는 영향과 효과가 천차만별로 나타나며, 벌금형은 그 차이가 가장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형벌을 통한 억제도, 형벌에 의한 정의의 실현도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죄에 상응한 처벌이라는 형벌의 원래 목적은 물론, 범죄 억제라는 실질적인 목적까지 고려한다면 벌금형이 단순히 ’총액‘이 아닌, 사람에 따라 벌금이 주는 고통의 크기가 고려돼야 한다. 고통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벌금형은 누구에게는 막중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고통이 아닐 수 있다.

결국 형벌의 평등성, 정의, 예방과 억제 그 어느 경우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형벌은 고통을 전제하는 것이며, 그 고통은 사람에 따라 고통의 정도, 크기가 다르기 마련임에도 서로 다른 고통의 크기가 다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않으며,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