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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넘어 생존으로: 아르헨티나에서 목격한 실생활에 쓰이는 이더리움

헤럴드경제 유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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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넘어 생존으로: 아르헨티나에서 목격한 실생활에 쓰이는 이더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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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총리 "23일 정기 국회에서 중의원 해산"
‘데브커넥트 2025 아르헨티나’ 탐방기
김종광 DSRV 이사·한양사이버대 겸임교수
스테이블코인으로 안전한 자산 이전 화두
한국도 ‘이더리움 사용처’ 고민해야 할 때
김종광 DSRV 이사(공동창업자·한양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가 블록체인 최대 축제인 ‘데브커넥트(DevConnect) 2025 아르헨티나’ 탐방기를 두 차례 걸쳐 소개합니다. 디지털자산이 일상으로 스며든 아르헨티나 현지 분위기와 이더리움이 그리는 디지털 경제의 미래를 짚어봅니다.
[출처 : DevConnect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출처 : DevConnect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데브커넥트(DevConnect) 2025 아르헨티나: 이더리움, 기술을 넘어 현실로
2025년 11월 17일부터 22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데브커넥트(DevConnect) 2025’는 이더리움 재단에서 주관하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이자 블록체인 행사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Ethereum World‘s Fair(이더리움 만국박람회)’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이번 행사는 지난 10년간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축적해 온 기술적 인프라가 마침내 연구실과 ‘깃허브’(GitHub) 저장소를 벗어나 실생활에 접목되는 것을 보여주는 ‘만국 박람회’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이야기는 메인이 아니었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이더리움의 모습을 박람회 모습으로 구성해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제 기술은 됐다. 서비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였다.

엄마 찾아 삼만리, 그 후 10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진행한 건 단순한 장소 선택이 아니었다. 이곳은 경제적 불안정성이 어떻게 기술의 ‘실질적 사용(Real Adoption)’을 강제하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실이었다. 이더리움 생태계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남미의 끝자락에 모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라는 땅이 가진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경제적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오늘날의 경제적 어려움과 대조적으로,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는 세계적 부국이었다. 1913년 기준 아르헨티나의 1인당 GDP는 세계 10위권 내였고 당시 이탈리아, 일본, 심지어 프랑스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리며 유럽의 자본과 이민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우리에게 친숙한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 (3000 Leagues in Search of Mother)>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마르코의 엄마가 아르헨티나 가정부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자 엄마를 찾으러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가난한 유럽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노동 이민’을 하던 기회의 땅이었다.

그 후 100년, 아르헨티나는 풍부한 자원과 인적 자본을 갖추고도 선진국 대열에서 이탈한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1816년 독립 이후 아르헨티나는 총 9차례 국가 부도를 겪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만 ▷2001년 ▷2014년 ▷2020년 세 차례 디폴트를 선언하며 국제 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상실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현장…화폐보다는 스테이블코인

국제 금융 시장에서의 신뢰를 상실한 아르헨티나는 2023년 12월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 211.4%를 기록했다. 2024년 4월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율이 289.4%로 정점을 찍었다. 화폐 가치가 1년 만에 4분의1 수준으로 폭락했음을 뜻한다. 필자가 머물렀던 호텔 앞 카페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2022년 280페소에서 2025년 11월 3900페소로 14배 가까이 폭등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페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월급을 받는 즉시 달러로 바꾸거나,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것이 생존의 기술이 됐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페소로 US달러를 구매하는 방법은 막혀 있다. 심지어 관광객인 필자도 남은 페소를 달러로 바꾸고 싶었으나 불가능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크립토, 특히 스테이블코인(USDT·USDC)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페소를 달러로 바꿀 수 없으니 스테이블코인으로 교환 한다. 화폐를 들고 있으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코인은 스테이블코인을 뜻한다. 2025년 기준 아르헨티나 전체 디지털자산 거래량의 약 61.8%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졌고, 글로벌 평균(44%)을 크게 웃돈다. 한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나오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스테이블코인으로 자산을 옮길 것인가?”가 일상의 화두다. 이곳에서 디지털자산은 투기가 아니라, 망가진 국가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여 내 돈을 지키는 유일한 통로였다.


은행 보다는 디파이(DeFi‧탈중앙금융)
한국에서 은행은 안전한 곳이지만, 디파이는 위험한 곳으로 분류된다. 아르헨티나에선 디파이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막아주고 3~5% 이자 수익을 주는 안전한 곳으로 간주된다. 은행은 되레 위험한 곳이다. 이처럼 양국은 은행과 디파이에 대한 시각이 완전 다르다. 전 국민이 디파이를 하고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디파이 서비스 만들어 봤자 몇몇 전문가들이 사용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전국민이 찾아서 사용한다. 아르헨티나는 웹(Web)3 개발팀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르헨티나 인구는 약 4710만명이며, 디파이로 디지털자산을 실생활에 사용하는 인구는 하루에 500만명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기반으로 결제, 송금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디파이는 은행이자 결제수단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데브커넥트 2025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블록체인이 어디에 쓰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묵직한 대답을 제시한다. 화려한 메타버스나 복잡한 게임이 아니라 ‘무너진 신뢰를 대체하는 가장 단단한 안전장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목격한 건 디지털자산 투기가 아니었다. 국가가 국민의 자산을 지켜주지 못하고, 은행이 신뢰를 잃었을 때, 그 진공 상태를 메운 것은 이더리움과 스테이블코인이었다. 이곳에서 블록체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필수재였다. 비록 그것이 경제 위기라는 비극적 상황에 의한 ‘강요된 채택’이었을지라도, 그 결과 블록체인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한국은 여전히 규제와 진흥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처럼 극단적인 경제 위기가 없기에 블록체인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이 AI와 크립토 결제를 결합하고, 비자 카드가 크립토 지갑과 연결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미국에서는 ‘지니어스(GENIUS)’ 법안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 블록체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단순히 투기적 관점으로만 시장을 바라보거나 규제의 틀에 가두어 혁신을 지체한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금융의 인터넷’ 시대에 주도권을 잃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우리도 “이더리움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투기를 넘어선 실질적인 가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서 이더리움은 이미 마법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 한 잔을 결제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수적인 일상의 도구로 우리 곁에 와 있었다.

김종광 DSRV 이사(공동창업자·한양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김종광 DSRV 이사(공동창업자·한양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