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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린 광활한 저음…“약 때려 넣고” 노래한 임재범의 마지막 콘서트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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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린 광활한 저음…“약 때려 넣고” 노래한 임재범의 마지막 콘서트 [고승희의 리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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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은퇴 콘서트 ‘나는 임재범이다’
17~18일 KSPO돔, 마지막 육성 기록
이틀간 1만 6000명과 나눈 작별 인사
임재범의 마지막 콘서트 [블루씨드 제공]

임재범의 마지막 콘서트 [블루씨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첫 공연에서 술에 취한 미군 세 명 앞에서 노래를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전부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태원 ‘락월드’에서 3명뿐이던 관객을 앞에 두고 노래하던 청년은 40년 노래 인생의 문을 닫고 영혼의 쉼터를 찾기로 했다. 지난 17~18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을 휘감은 ‘작별의 공기’는 겨울바람처럼 시렸지만, 뜨거운 애틋함이 피어났다. 임재범의 ‘마지막 콘서트’가 된 데뷔 40주년 전국투어 ‘나는 임재범이다’의 서울 공연이다.

오래도록 견딘 시간이었다. ‘상실의 비명’을 부정하다, ‘후회로 자책한 눈물’을 흘렸고, ‘온 세상 소리를 보두 잠그고 적막에’(이상 ‘내가 견뎌온 날들’ 가사 중) 자신을 가뒀던 날들. 그 시간을 꺼내는 임재범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객석으로 날아든 담담한 작별 편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9000여명의 관객 앞에서 그는 무겁게 입을 뗐다. 임재범은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투어를 끝으로 저는 무대에서 물러난다”며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많이 고민하고 결정했다. 우리 마음속에 여러 추억을 쌓았으니 편히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구한 백 마디 말 대신 그는 팬들에게 배려를 당부하며 ‘마지막 콘서트’를 시작했다. 40여년의 긴 노래 인생을 마무리하며 임재범이 가장 깊은 마음을 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팬들이었다.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무대에선 ‘항상 네가 있었어’라는 가사를 “항상 여러분이 있었어”라는 고백으로 바꾸며 깊이 간직해온 말들을 전했다.

임재범의 은퇴 전국 투어 [블루씨드 제공]

임재범의 은퇴 전국 투어 [블루씨드 제공]



임재범은 “은퇴에 얽힌 자초지종을 말하면 저도 가슴이 아프고, 저를 사랑한 여러분의 마음도 아플 것”이라며 “오늘은 제가 가수로 생활하며 맞이한 40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시면 좋겠다. 섭섭한 마음은 접어두고 즐겨주셨으면 한다”며 노래를 이어갔다. 특히나 이날 공연은 KSPR 돔 최초로 서라운드 음향으로 소리의 풍성함도 살렸다.


임재범은 1986년 록밴드 시나위로 데뷔하기 전, 무명의 로커로 수많은 클럽 무대에 섰다. “세상에 제 팔자에 참…. 어떻게 이런 걸 경험할 수 있었을까”라며 새삼 벅찬 심경을 전한 그가 세상에 나온 것은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히트하면서다.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리던 그는 허스키한 음색으로 정통 록 보컬의 강렬한 존재감을 알렸다. 이후 그룹 아시아나를 거쳐 솔로 가수로 전향한 그는 1991년 ‘이 밤이 지나면’을 통해 60만장의 앨범 판매량을 냈다. 록은 물론 팝과 솔까지 아우르는 전천후 보컬리스트로 자리한 그는 1997년 2집 ‘그대는 어디에’ ‘사랑보다 깊은 상처’, 98년 3집 ‘고해’, 2000년 4집 ‘너를 위해’ 등 매 앨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이 ‘꽃길’만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대중 곁을 떠나 잠적기를 가졌다. 방송 활동보다는 앨범과 공연 위주의 활동을 고집하다 보니 ‘기인’, ‘야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뇌리에서 잊혀 갈 때쯤이었던 2011년, 그는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너를 위해’, ‘비상’, ‘고해’, ‘여러분’ 등의 무대를 통해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 임재범의 보컬은 또 한 번 진화, 광활한 대지 같은 저음이 전해오는 공명으로 청중의 심장을 강타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2025-26 임재범 40주년 콘서트 나는 임재범이다’ 현장을 찾아 40년간의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가수 임재범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2025-26 임재범 40주년 콘서트 나는 임재범이다’ 현장을 찾아 40년간의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가수 임재범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임재범의 목소리는 화려한 수사로도 담지 못할 ‘한(恨)’과 ‘고독’이 서려 있다. 성대 전체를 긁어서 만들어내는 사포처럼 거친 음색은 폭발적인 성량 뒤에 가려진 쓸쓸함을 꺼내온다. 거친 탁성 속에 묻어나는 섬세한 감정선은 임재범이 가진 독보적인 영역이었다.

아주 많은 날이 그에겐 ‘생존의 포효’였다. 그는 공연 중 자기 목 상태에 대해서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임재범다운’ 거친 화법의 고백이 이어졌다. 그는 “은퇴가 가까워서인지 목 컨디션이 오늘도 좋지 않다”며 “(무대를 위해) 있는 약, 없는 약을 때려 넣었다. 끝까지 사력을 다해서 하겠다”는 말에선 안타까움과 경외가 동시에 일었다. 실제로 고음역대에선 음정이 흔들리기도, 일부 곡에선 객석에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이날의 마지막 노래는 40년간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살아온 임재범의 사투이자, 삶의 고통을 토해내는 절규였다.


지난해 발표한 신곡이지만, 임재범 노래 인생의 마지막이 될 ‘인사’는 이틀간의 은퇴 콘서트에서 앙코르 전 마침표를 찍는 곡이었다.

그는 “저는 이전에도 임재범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임재범이고, 앞으로 기억 속에 남을 저 또한 임재범”이라고 했다. 노래는 멈추지만, 임재범은 여전히 존재하는 ‘진행형’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 전해왔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그의 은퇴 소식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눈물로 배웅했다. 대전에서 올라온 권진우(49) 씨는 “은퇴 소식을 듣고 나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싶으면서도 아쉬웠다”며 “그간 마음고생도 심하고 영혼도 외로웠을 텐데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마지막 전국투어 중인 가수 임재범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은퇴 투어는 오는 5월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