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우상호 정무수석 사퇴
탁월한 정무감각···당청 조율자
새 정무수석에 홍익표 전 의원
지방선거 진입 알리는 신호탄
‘조율자’ '촌놈' 우상호 강원 귀환
중앙-지역 조율로···‘5극 3특'실현
탁월한 정무감각···당청 조율자
새 정무수석에 홍익표 전 의원
지방선거 진입 알리는 신호탄
‘조율자’ '촌놈' 우상호 강원 귀환
중앙-지역 조율로···‘5극 3특'실현
6·3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두고 우상호 정무수석이 18일 사퇴했습니다. 우 수석의 사퇴는 이재명 정부 1기 청와대 참모진 개편의 출발점이자 지방선거 국면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후임에는 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대대표가 발탁됐습니다. 신임 정무수석의 임기는 20일부터입니다. 19일까지 근무를 하는 우 수석은 인수인계를 끝으로 강원도를 향할 전망입니다. 2월 초 정식 강원지사 출마 선언이 예상됩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의 후임 정무수석 인선 발표 직후 마이크를 잡은 우 수석은 “처음 임명됐을 때는 정무수석실 직원도 너댓명 밖에 없었으며 업무에도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많은 분의 도움으로 원만하게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각 정당의 지도자와 관계자들이 잘 협조해주셨다”며 “앞으로 후임 정무수석과도 잘 소통해 청와대와 정당의 끈이 끊어지지 않길 기대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어 “많은 관심을 갖고 도와준 국민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정무수석으로서 짧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무수석…짧지만 보람 있는 시간
정무수석을 사퇴한 만큼 청와대와 여야간 ‘조율자 우상호’에게 ‘귀환’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국가균형성장 전략인 ‘5극 3특(5개 메가시티와 3개 특별자치도) 체제’의 한 곳인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지역소멸을 막고 강원의 특장점인 관광과 청정에너지, 바이오 산업 등을 일으킬지 주목됩니다. 중앙정치에서 축적한 경험과 혜안이 차별화된 강원의 발전 전략으로 이어질지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이재명 정부 1기 청와대 첫 공직 사퇴자가 우 수석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 수석은 이재명 정부의 첫 강원 출신 인사 발탁이기도 했습니다. 당정청 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 간 조율자에서 중앙과 지역의 조율자로 전환의 시간이 동시에 시작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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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자 우상호 귀환’의 시간
사실 운명적인 전환의 시간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우 수석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참여하면서 22대 총선(2024년)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젊은 인재들이 도전하기를 바라며 적극적으로 돕겠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낮은 곳에서 정치 혁신과 민생개혁에 매진하겠다”며 실제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진정성을 이재명 대통령은 일찌감치 간파했습니다. 20대 대선이 한창이던 2022년 1월 이 대통령은 우 수석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브리핑을 연 박광온 선대위 공보단장은 “우 본부장은 지난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이재명과 함께 선두에서 정치 교체와 정치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고 선거 승리에 크게 기여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우 본부장은) 정확한 정세 분석과 합리적이고 유연한 상황 판단을 보여왔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2022년 대선에 이어 같은 해 지선까지 내리 패배한 민주당의 무너진 리더십을 재건 한 것도 우 수석이었습니다. 민주당은 2022년 6월 의원총회에서 우 수석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합니다. 격랑에 휩싸인 당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그는 매주 기자 간담회를 열어 대여 전선의 전면에서 언론과의 소통에 적극 나섰고, 당시 윤석열 정부의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과 북송 어민 사건 등 문재인 정부 당시 발생한 대북 사건의 여권 공세를 막아내는 한편 국민의힘에 뒤쳐진 ‘지지율 역전’ 공약을 지키고 비대위원장을 마쳤습니다.
‘강한 야당’, ‘유능한 민생 야당’을 표방하며 당시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에 직장인과 서민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민생우선실천단’을 발족해 현장기반의 야당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2년 뒤 2024년 총선 대승의 기반을 닦았던 셈입니다. 자연스레 22대 총선 출마로 5선 고지에 오르겠다는 욕심이 생길 만도 했지만 2023년 11월 중앙당에 불출마 확인서를 제출하면서 불출마를 공식화했습니다. 당시 우 수석은 “마음만 먹으면 ‘선수’를 더 늘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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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과 지지율 역전 비대위원장
총선 불출마 약속도 지킨 우상호
총선 불출마 약속도 지킨 우상호
이 대통령이 우 수석을 호명한 것은 이런 진정성과 선당후사의 실천이 증명됐던 까닭도 있습니다. 우 수석은 지난해 6월 8일 정무수석 인설 발표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국가가 굉장히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따질 것 없이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여권에서는 우 수석이 청와대와 국회 관계를 총괄하는 ‘조율자’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습니다. 이 대통령에게 수시로 조언하는 ‘왕수석’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습니다. 실제 우 수석은 야당과도 가장 소통이 잘 되는 여권 인사 중에 한 명으로 꼽힙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여당 의원 수십 명의 마음을 돌려 가결시킨 것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우 수석이 직접 당시 상황을 서술한 내용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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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쓴소리 마다하지 않는 왕수석·조율자
박근혜 탄핵소추
“총 투표수 299표 중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써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을 걸어 나오며 2층 방청객 좌석에 안자 있던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지나왔다. 역사의 매듭을 풀었다는 생각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만약 부결되었다면, 나는 영원히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나는 늘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대 중반에는 6월 항쟁을 이끌었던 광장의 중심에 있었고, 30년 후인 50대 중반에는 제도권 정치에서 원내대표를 맡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으니,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큰 정치적 사건 두 가지를 중심부에서 이끈 영광스러운 경험을 했다. <우상호, 민주당 1999-2024>. p7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을 걸어 나오며 2층 방청객 좌석에 안자 있던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지나왔다. 역사의 매듭을 풀었다는 생각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만약 부결되었다면, 나는 영원히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나는 늘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대 중반에는 6월 항쟁을 이끌었던 광장의 중심에 있었고, 30년 후인 50대 중반에는 제도권 정치에서 원내대표를 맡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으니,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큰 정치적 사건 두 가지를 중심부에서 이끈 영광스러운 경험을 했다. <우상호, 민주당 1999-2024>. p7
조율자로 당 안팎의 소통에 있어서 남 부럽지 않은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왕수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이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쓴소리를 했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의 호명이 있었던 것인데 이를 우 수석은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이재명 정부 강원출신 첫 인사
진행자 : 소위 친명도 아니었고 우 수석께서는 제가 알기로는 이재명 당대표 시절 이른바 1극 체제에 대해서 쓴소리도 많이 하셨잖아요.
우상호 정무수석: 네. 저는 뭐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저 같은 중진이 한쪽으로 치우칠 때 조금 쓴소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 후로 뭐 '왕수박'으로 분류돼서 고생 좀 했죠. 항의하는 문자도 많이 받고.
그런데 그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는 저하고 통화하면서 그걸 불편해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내가 느낀 게 이분은 꼭 자기편이라고만 해서 아끼는 게 아니라 널리 얘기를 좀 듣는다 이런 느낌이 좀 들었고요.
이번에도 제가 이제 정무수석 된 다음에도 그랬거든요. '내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텐데 불편할 텐데' 그랬더니 '옆에 그런 사람이 좀 필요하지 않냐' 그래서 제가 약간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아 이게 외부에는 굉장히 무슨 권력 욕구나 자기 가까운 사람만 챙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굉장히 폭넓게 사람을 쓰고. 또 지금 야당 쪽하고 대화를 하는 걸 봐도 굉장히 폭넓게 대화하고 계속 만나고.
이렇게 뭔가 뭐랄까요. 통합의 정치를 하려고 하는 노력 이런 것들이 이분의 진면목이 아닌가. 그래서 요즘도 제가 보면 사람들의 편견이라는 게 무서운데. 사실은 보니까 통합의 지도자였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상호 정무수석: 네. 저는 뭐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저 같은 중진이 한쪽으로 치우칠 때 조금 쓴소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 후로 뭐 '왕수박'으로 분류돼서 고생 좀 했죠. 항의하는 문자도 많이 받고.
그런데 그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는 저하고 통화하면서 그걸 불편해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내가 느낀 게 이분은 꼭 자기편이라고만 해서 아끼는 게 아니라 널리 얘기를 좀 듣는다 이런 느낌이 좀 들었고요.
이번에도 제가 이제 정무수석 된 다음에도 그랬거든요. '내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텐데 불편할 텐데' 그랬더니 '옆에 그런 사람이 좀 필요하지 않냐' 그래서 제가 약간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아 이게 외부에는 굉장히 무슨 권력 욕구나 자기 가까운 사람만 챙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굉장히 폭넓게 사람을 쓰고. 또 지금 야당 쪽하고 대화를 하는 걸 봐도 굉장히 폭넓게 대화하고 계속 만나고.
이렇게 뭔가 뭐랄까요. 통합의 정치를 하려고 하는 노력 이런 것들이 이분의 진면목이 아닌가. 그래서 요즘도 제가 보면 사람들의 편견이라는 게 무서운데. 사실은 보니까 통합의 지도자였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kbc방송 2025년 8월31일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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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정청래-장동혁 회동 성사도 우 수석 작품
우 수석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많았고 동시에 그 위기를 국민들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저력을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정무수석으로서 무너진 국정 시스템을 빠르게 정상화하는 데 힘을 보탰고, 상당한 회복에서 안도하지만 그 이상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그의 정치 이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상호는 1962년 강원 철원에서 태어나 서울 용문고와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해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6월 항쟁을 보냈습니다. 이후 정치권에서 4선 국회의원으로 정무수석을 거쳐 굵직한 현대사의 현장에 늘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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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시작된다’
그러면서 늘 초심을 돌이켜 보고 있습니다. 철원 출신 ‘촌놈 우상호’가 귀환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입니다. 우 수석은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면, 2016년>에세이 집에서 “자신이 변했는지 변하지 않았는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순수의 시절로 돌아가 보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순수의 시절을 보낸 강원에서 우 수석은 다시 정치의 본연의 역할을 고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민주당 1999-2024>마지막 장에서는 “4선 국회의원을 하고 나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꿈이 아직 나에겐 남아있다. 시를 불태우고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섰던 그 초심으로, 낙선을 각오하면서 정치개혁의 대의에 동참했던 그 결기로, 뚜벅뚜벅 걸어 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시작된다>라며 새 아침을 기대하는 각오를 일찌감치 내비쳤습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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