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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핵잠수함, 40년 비용 관리할 '전용 계정' 없이는 불가능

이데일리 김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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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핵잠수함, 40년 비용 관리할 '전용 계정' 없이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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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핵추진잠수함은 단순한 무기체계가 아니다. 원자력, 외교, 산업, 재정, 안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되는 ‘국가 플랫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제도는 이 거대한 플랫폼을 여전히 ‘단년도 방위력개선’이라는 좁은 틀에 끼워 넣고 있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K-SSN) 논의가 수년째 제자리 걸음을 반복해 온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구조의 한계 때문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열쇠가 바로 ‘핵추진잠수함 전용 계정’이다.

핵추진잠수함의 비용 구조는 기존 방위사업과 완전히 다르다. 전차나 전투기는 도입 시점에 비용이 집중된다. 반면 핵추진잠수함은 건조 이후부터 진짜 비용이 시작되는 자산이다. 원자로 연료의 제조·조달, 수십 년에 걸친 방사선·안전 관리, IAEA 보장조치 및 검증, 사용후 핵연료 저장·처리, 최종 해체까지 비용과 책임이 40~50년 동안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국방예산 체계는 1년 단위, 길어야 중기 5년 단위에 맞춰 설계돼 있다. 이 구조로는 핵추진잠수함 같은 ‘수명주기형 전략자산’을 책임 있게 운용할 수 없다.

그래서 핵추진잠수함 보유국은 예외 없이 별도의 장기 재정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은 해군 원자로 프로그램(Naval Reactors)을 에너지부(DOE)·국가핵안보국(NNSA) 체계에서 장기적으로 관리한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핵연료·폐연료·해체 비용을 국방예산과 분리된 국가 차원의 원자력 관리 체계로 운용한다. 이 장기 재정 프레임이 없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핵연료 공급, 비확산 협의, 기술 협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핵추진잠수함은 기술이 아니라 재정적·제도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용 계정 없이 핵추진잠수함을 추진하면 비용과 책임이 여러 부처로 흩어진다. 원자로는 과기정통부, 연료는 산업부, 보장조치는 외교부, 잠수함 건조는 방사청, 안전과 폐기물은 원안위 소관이 된다. 이렇게 되면 어느 부처도 전 주기 비용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이 반복되고, 장기 비용은 매번 뒤로 밀린다. 국제 파트너들은 이 구조를 즉시 간파한다. 그 순간 연료 공급도, 기술 협력도, IAEA 협의도 멈춘다.

따라서 전용 계정은 함정 건조 이후가 아니라 사업 착수 이전, 원자로·연료·외교 협의가 시작되는 시점에 먼저 설치돼야 한다. “건조부터 하고 나중에 계정을 만들자”는 접근은 국제 규범상 설득력이 없다. 전용 계정은 원자로 개발, 핵연료 조달, IAEA 검증, 안전 규제, 조선소 설비, 사용후 연료 관리, 해체까지 핵추진잠수함 관련 모든 비용을 하나의 법정 계정으로 묶어 수명주기 전체를 관리하는 장치다.

계정의 관리 주체도 개별 부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 직속의 K-SSN 핵추진잠수함사업단(PMO)이 단일 책임 구조를 갖고 총괄해야 한다. 예산 집행은 기획재정부와 연동하되, 외교·원자력·국방·산업 기능을 묶는 통합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고 국회 구성이 달라져도,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의 전 생애를 책임진다는 법적·재정적 보증이 유지된다.

전용 계정은 단순한 회계기술이 아니다. 미국, IAEA, 핵연료 공급국에 보내는 외교적 신호다. 그들이 묻는 것은 “몇 척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40년 뒤 폐연료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다. 전용 계정이 있어야 한미 원자력 협상도, IAEA 협의도, 연료 조달도 시작된다. 전용 계정 없는 핵잠은 모래 위에 지은 원자로와 같다. 한국이 책임 있는 핵추진잠수함 보유국이 되려면,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은 잠수함이 아니라 ‘전용 계정’이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 ‘그린빌함’이 지난 해 12월 23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 ‘그린빌함’이 지난 해 12월 23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