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폭동 1년, 더욱 활개치는 극우
12·3 불법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을 반대하는 시민을 ‘적’으로 규정했다. 국정 실패와 권력의 위기를 외부의 음모와 내부의 적으로 전가하는 정치는 사회 전반에 혐오와 분열을 확산시켰다. 혐오의 정치는 적을 만들고, 적의 존재는 폭력을 호출한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치와 절차는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전락했다.
지난해 1월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결코 ‘우발적 폭력’이 아니었다. 극단으로 치달은 이념이 폭력을 정당화했고, 그 폭력은 마침내 사법부를 향했다. 법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에 난입하고 판사실을 뒤지는 행위는, 극단적 이념 앞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건이 발생하고 19일로 꼭 1년이 지났다. 지난달 1일 기준으로 폭동 가담자 141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미 1심을 거쳐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도 있다.
지난해 1월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결코 ‘우발적 폭력’이 아니었다. 극단으로 치달은 이념이 폭력을 정당화했고, 그 폭력은 마침내 사법부를 향했다. 법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에 난입하고 판사실을 뒤지는 행위는, 극단적 이념 앞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건이 발생하고 19일로 꼭 1년이 지났다. 지난달 1일 기준으로 폭동 가담자 141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미 1심을 거쳐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도 있다.
이제 사태는 끝났을까.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법원 침탈 등 극심한 폭동사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그렇지 않다. 폭동 가담자 일부는 반성을 하고 재판에서 감형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반성은커녕 폭동 가담 경력을 정치적·경제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피고인도 있다. 되려 서부지법 폭동사태 이후 극우 세력의 발호는 더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서부지법 사태의 ‘배후’는 아직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극우 청년들에게 ‘저항권 행사’라는 궤변을 주입하고, 이들의 폭력을 부추긴 이른바 ‘정치 인플루언서’들은 서부지법 사태를 ‘투쟁 서사’로 포장하며 후원금을 모으고, 콘텐츠와 출판, 행사, 제도권 정치 진입의 발판으로 삼는 중이다.
처벌 미진한 사이…‘장사’는 계속
서부지법 사태를 선동한 의혹을 받는 대표적 배후 세력은 이른바 ‘광화문파’로 불리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유튜브 ‘신의한수’ 신혜식 대표다. 전 목사는 지난 13일 구속됐고, 신 대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서부지법 사태의 배후세력으로 처벌을 받은 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이 불법계엄을 선포한 뒤 ‘탄핵 반대’ 등을 주도한 ‘여의도파’ 등 핵심 인물 다수는 사실상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이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지연되는 동안 한국 사회의 혐오와 분열은 갈 수록 커지고 있다.
서부지법 폭동 당시 법원 경내에 진입한 김진일 당시 MZ자유결사대 집행위원장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스레드 갈무리 |
서부지법 폭동사태 당시 법원 경내에 진입했던 김진일 전 MZ자유결사대 집행위원장(현 자유와혁신 최고위원)은 아직 기소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는 SNS 등에서 서부지법 사태를 ‘투쟁 서사’이자 ‘주요 이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에서 “서부지법 자유투사들이 일반 잡범과 다른 이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위법함을 알고도 행동했다는 것”이라고 썼다.
극우 유튜브 채널 ‘젊은시각’의 운영자 송규호씨는 지난달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다룬 책 <1월의 봄>을 출간했다. 송씨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그날을 기억하며 찬양하고 싶다…(중략)… 나는 거기서 희망을 봤다…(중략)…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며 “법적으로 잘못이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 세대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라고 적었다.
폭동 가담자들을 변호하는 서부자유변호사협회 변호사들은 창립총회 등을 열고 후원금 모금을 이어가고 있다. 내란 선동 선전 혐의로 시민단체 등에 고발당한 전직 학원강사 전한길씨는 지난 16일 이영돈 PD와 함께 제작한 영화 <조작된 내란, 감춰진 진실>을 개봉했다.
‘여의도파’로 세이브코리아를 이끈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는 지난해 9월8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현재 수감 중이다. 서부지법 사태와 관련이 없는 혐의다. 손 목사는 부산교육감 재선거 당시 교회 예배 자리에서 특정 후보(정승윤)와 대담을 진행하며 지지 발언을 했고, 대선 기간에는 김문수 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이재명 당시 후보의 낙선을 촉구한 혐의를 받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를 막기 위해 신혜식 대표와 이른바 ‘백골단’ 등에 지지자 동원을 요청했다는 의혹을 받은 성삼영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무혐의·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성 전 행정관은 “공수처가 올 수 있으니 관저 정문 또는 후문으로 사람을 보내 막아달라” “차량으로 관저 입구를 막아달라”는 등의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불기소 이유서에서 “지지자 동원을 요청한 사실만으로 내란, 즉 폭동에 이를 정도의 폭력적 행위를 선동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내란을 일으킬 실질적 위험성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성 전 행정관은 최근 전광훈 목사가 연 광화문 집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제도권 정치인은 이들과 선을 긋지 않고 이용하는데 혈안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에 대해 사과했지만,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통일교 게이트 특검과 민주당 공천 뇌물 특검 등 ‘쌍특검’을 요구하는 단식 현장에 방문한 백골단 출신 인사와 자유대학 소속 인물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장 대표뿐 아니라 김민전·임이자·최수진 국민의힘 의원 등도 있었다.
극우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의 고성국씨는 이달 초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극우 유튜브 채널 ‘그라운드C’, ‘젊은시각’ 역시 지지층 영향력을 바탕으로 국민의힘 등 제도권 정치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제2의 서부지법 사태’ 꿈꾸는 극우
온라인 마켓 ‘마플샵’에서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들을 캐릭터화 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마플샵 갈무리 |
극우 유튜버들은 서부지법 난입자들을 ‘투사’, ‘의인’으로 부르며 폭력 행위를 정당화·미화하고 있다.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청소년 극우 커뮤니티 ‘애국대학’에서는 “네팔만이 답이다”라는 구호도 나왔다. 네팔의 폭력 시위를 언급한 것인데, 조직적 폭력 시위가 해법이라는 취지다. 이들은 서부지법 폭동을 ‘세계 3대 혁명 중 하나’, ‘대한민국 서부혁명’ 등으로 부르며 “종북 반국가세력 민주당에 맞서기 위한 애국 청년들의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서부지법 사태 가담자들은 ‘전사’이자 ‘영웅’이 됐다.
디시인사이드의 미국정치 마이너갤러리(미정갤) 등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윤 전 대통령, 김건희 여사,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지지하는 글과 함께 서부지법 사태 가담자를 위한 영치금 모금이 진행 중이다. 수감자들을 캐릭터화한 각종 굿즈도 판매되고 있다. 이들은 서부지법 사태 1년을 맞는 19일 서울 서초구에서 ‘서부자유항쟁 1주년 기념 행사’를 열기로 했다.
서부자유변호사협회는 지난해 8월28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고성국씨는 “‘서부’라는 단어에서 피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좌파”라며 “이 피 냄새를 내걸고 더 많은 자유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부지법 사태 가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송모씨 역시 “사실상 죄가 없으니까 제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오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형이 확정된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가 받은 최고 형량은 징역 5년이다. 2021년 1월 미국 의사당 폭동 피고인에게 선고된 최고 형량은 22년이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