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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묶인 돈, 기업으로 돌린다…저성장 시험대 [생산적 금융의 조건]

쿠키뉴스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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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묶인 돈, 기업으로 돌린다…저성장 시험대 [생산적 금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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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인사청문 국회 재경위 정회
부동산 동원 자금 4127조 시대, ‘부채의 덫’에 갇힌 한국
150조 ‘국민성장펀드’ 가동…부동산 돈줄은 ‘옥죄기’
전문가들 “심사 병목 해소·규제 시그널 명확해야”
정부는 올해를 ‘생산적 금융 원년’으로 선언하며 금융자금의 흐름을 비생산적 영역에서 생산적 영역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이 다시 질문받는 배경이다. 그동안 금융 공급은 담보와 신용을 기준으로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집중돼 왔고, 혁신기업과 성장 초기 산업으로의 자금 유입은 제한적이었다. 본지는 생산적 금융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살펴봤다. 돈을 굴려 돈을 버는 금융을 넘어, 기업과 산업을 키우는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생산적 금융은 말 그대로 돈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금융을 의미한다. 부동산 담보 위주의 안전한 대출에서 벗어나, 기술혁신·신성장 산업·중소·벤처기업 등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영역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전략으로 끌어올린 배경에는 부동산·가계대출에 기댄 한국의 신용구조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20여년간 신용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리면서, 금융이 실물경제의 성장보다는 자산가격을 떠받치는 수단에 가까워졌다는 판단이다.

금융당국·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자산 64%는 부동산에 몰려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2.9%)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부동산 부문에 공급된 금융권 자금은 약 4137조원에 달한다. 경제성장률(GDP) 대비 비중은 지난 2015년 111%에서 지난 2024년 말 162%로 급증했다.

부동산 신용 규모 역시 막대하다. 가계의 부동산 담보대출과 부동산업·건설업 기업 대출을 합친 부동산 신용 규모는 2024년 말 기준 1932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민간신용의 절반(49.7%)에 육박한다. 일반기업의 부동산 담보대출까지 합하면 2681조6000억원에 이른다. 2013년 이후 연평균 100조원씩 빚이 늘어나면서, 경기 국면에 따라 신용이 요동치는 ‘프로사이클’ 취약성이 체질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자금 배분의 불균형이다. 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부동산업에 대한 국내 예금취급기관의 신용집중도는 7.61로, 전 산업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업이 실제 GDP 기여도보다 무려 8배나 많은 금융권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부동산업의 경영자산 투자 효율은 3.73에 불과해 전 산업 평균(18.80)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생산성은 극히 낮은데 돈만 몰리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정작 국가 경제의 허리인 제조업의 신용집중도는 0.67에 그쳤다. 전자, 자동차, 기계 등 핵심 수출 산업들이 오히려 ‘신용 기근’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국가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편중 원인으로는 △가계의 부동산 선호와 전세·주담대 확대 △경기 둔화기에 반복된 대출 규제 완화 △바젤Ⅲ 위험가중치 체계에서 주담대에 비해 기업대출 자본비용이 상대적으로 높게 매겨진 점 등 수요·공급·정책 요인이 겹친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상업금융의 영업 관행까지 더해졌다. 은행들이 기업의 성장성·생산성보다 채권 보전에 유리한 담보를 추구하면서, 부동산업에 신용이 몰렸다는 분석이다.

비교역 부문의 신용 확대가 성장률 둔화와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금융은 가계대출, 부동산 중심으로 자금이 쏠려 실물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있으며,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주요국 최고 수준인 90%를 초과해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부동산 중심의 구조가 지속되면 실물 경제의 공동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며 “가계부채 누증은 결국 소비 위축과 금융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경제는 외부 충격에 무너지는 ‘부채의 덫’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150조 국민성장펀드 가동…부동산 돈줄은 ‘옥죄기’

돈의 물길을 되돌리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택한 해법이 ‘생산적 금융’이다. 새 정부는 출범 전 국정기획위 단계부터 생산적 금융을 성장정책의 기둥으로 삼았다. 부동산, 가계대출에 과도하게 몰린 자금을 혁신·벤처기업, 첨단산업, K-문화, 에너지·딥테크 등 미래 먹거리로 돌리겠다는 청사진이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올해부터 생산적 금융 전환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민관이 함께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다. 매년 5년간 총 150조원의 자금을 첨단산업 육성에 쏟아 붓는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 운용 첫해인 올해 최소 30조원 이상을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직접투자 3조원 △간접투자(펀드) 7조원 △인프라투융자 10조원 △초저리대출 10조원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펀드 형태의 간접투자 자금 중 6000억원은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형’으로 조성된다. 손실 발생 시 정부가 1200억원(20%)를 보전해 안정성을 높였다.

국책은행들도 대규모 자금 공급으로 힘을 보탠다. 한국산업은행은 향후 5년간 총 250조원을 첨단산업과 인프라 부문에 투입하며, IBK기업은행은 2030년까지 중소·벤처기업 및 소상공인에게 300조원 이상을 공급하기로 했다. 두 국책은행에서만 550조원의 자금이 생산적 금융에 투입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산하 공공기관 업무보고에서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에 ‘생산적 금융’ 논의를 위한 정례 협의체 구성을 지시하며 속도감 있는 추진을 주문했다.

생산적 금융 전환의 일환으로 지방 금융공급 역시 확대한다. 금융위는 비수도권 금융 공급 비중을 지난해 40%에서 올해 41.7%로 높인다. 금융사가 벤처나 정책펀드에 자금을 대면 대손충당금 손금인정 한도를 높여주는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해 금융사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반면 부동산으로 향하는 돈줄은 옥죈다. 올해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선이 현행 15%에서 20%로 상향된다. 위험가중치가 높아지면 은행이 동일한 대출을 취급하더라도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한다. 은행이 주담대를 취급할 때 쌓아야 할 자본 부담을 늘려, 손쉬운 이자 장사를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한 고액 주택담보대출 관리를 강화한다.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출연요율은 기존처럼 대출 종류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식에서, 고액 대출일수록 더 많은 출연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차등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금융권 역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한다. 국내 금융권을 대표하는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농협)은 2030년까지 총 441조원을 생산적 금융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주별로는 △신한금융 98조원 △KB금융 93조원 △하나금융 84조원 △우리금융 73조원 △NH농협금융 93조원 규모다. 각 지주들은 국민성장펀드에 10조원씩 출자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체 투자와 융자를 병행하며, 금융 패러다임을 ‘성장성’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KB금융은 투자금융 25조원과 전략산업융자 68조원을 공급하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역 성장 프로젝트 발굴에 나선다. 신한금융은 금융투자 분야에 20조~25조원,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일반 대출에 72조~75조원을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하나금융은 ‘하나 모두 성장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기업·수출 중소기업 대상 대출(50조원), 공급망 강화 금융(14조원)을 배정했다. 우리금융은 K-Tech(19조원)와 지역 첨단산업(16조원) 육성에 주력한다. NH농협금융은 이석준 회장 직속의 ‘생산적 금융 특별위원회’를 통해 추진 상황을 직접 챙길 예정이다.

5대 금융지주는 이를 위해 전사적 조직 개편에 나섰다. KB금융은 ‘기업투자금융(CIB) 마켓부문’을 신설해 그룹 차원의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했다. 신한금융은 진옥동 회장이 위원장을 맡는 ‘그룹 생산적 금융 추진단’을 발족했다. 우리금융은 투자은행(IB) 그룹과 기업그룹에 각각 투·융자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하나금융은 기존 CIB본부를 ‘투자·생산적금융부문’으로 재편하고, 산하에 ‘생산적금융지원팀’을 새로 만들었다. NH농협금융 역시 중소기업고객부를 기업성장지원부로 재편하고 생산적금융국을 설치하기로 했다.

전문가들 “심사 병목 해소·규제 시그널 명확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대전환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리를 끊을 기회라고 평가하면서도, 현장의 관행을 깰 유인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전 일자리위 부위원장)는 금융 현장의 ‘병목 현상’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기술·성장 가치가 기존 담보 중심 심사 기준에선 ‘불확실성’으로 처리되는 것이 첫 번째 병목이고, 자본규제·충당금·검사에 대비한 보수적 논리가 결합되면서 이 위험을 실제보다 확대 해석하는 것이 두 번째 병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구조 탓에 혁신·지역 여신은 ‘위험은 크고 보상은 적은 자산’으로 치부된다”며 “결국 은행은 안전한 담보대출이나 익숙한 업종으로만 자원을 돌리게 된다”고 했다.

개별 은행의 자율적 전환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수강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대표(경제학 박사)는 “경쟁 관계인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손쉬운 부동산 대출을 포기하고 생산적 금융으로 이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금융당국이 비생산적 금융에는 페널티를, 생산적 금융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확실한 규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혁신 산업의 초기 손실을 정책금융이 보증 등을 통해 일부 흡수하는 ‘위험 조정자’로서의 선도적 역할도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협회 차원의 ‘교통정리’ 필요성도 제기했다. 임 박사는 “5대 지주가 방안을 발표했지만 엄밀히 말해 어디까지를 생산적 금융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합의된 정의조차 없는 실정”이라며 “과거 포용금융 사례처럼 협회가 주도해 개념과 기준을 정립하고 업권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