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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비용절감 1순위 됐다…'대기업의 별' 파격예우 옛말

이데일리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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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비용절감 1순위 됐다…'대기업의 별' 파격예우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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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21일 한덕수 1심 선고 생중계 허가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 연말연초 재계
회사에 청춘 바친 임원들, 회사서 2모작 지원
현직 급여 절반 넘게 주고 각종 프로그램 운영
회사 비밀 유지, 인재 유출 방지 등의 목적도
누적 퇴임임원들 급증에, 예우도 조금씩 줄어
"현직 때부터 이직 준비? 득보다 실 더 크다"
[이데일리 김정남 이배운 김성진 기자] 국내 A 대기업집단의 한 계열사에서 부사장급 마케팅 임원으로 1년여 전 퇴임한 K씨. 그는 요즘 퇴임임원 2년 예우의 끝이 조금씩 보이면서 마음이 다소 복잡해졌다. 그는 50대 후반을 향하는 나이에도 현직 당시 관련 업계 혹은 아예 다른 분야라도 재취업할 생각을 갖고 있다.

K씨는 현직 당시 급여의 절반 이상을 받고 있다. 당장 다시 취업해도 이보다 더 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K씨는 “회사에 청춘을 바쳤다. 운이 좋게도 퇴임 후 그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제는 재취업을 적극 알아볼 것”이라고 했다. K씨는 요즘 경조사 자리를 부쩍 많이 챙긴다고 한다.

지난해 말 상무급 임원으로 퇴임한 B씨는 한동안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젊은 임원’으로 승승장구했다가 퇴임 통보를 받자, 처음에는 “아파트 3층에서 떨어진 기분이었다”고 한다. B씨는 “그래도 퇴임임원 프로그램들이 있어 차분하게 인생 2막을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인생 2모작’ 지원 받는 퇴임임원들

연말 연초 재계는 인생사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떠올리게 한다. ‘세대교체의 기수’ 젊은 임원들이 부상하는 자리를, 누군가는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만에 웃고 우는 게 ‘대기업의 별’ 임원들이다.

다만 회사는 이들을 그냥 내보내지는 않는다. 임원들은 통상 부장으로 퇴임하는 일반 직원들보다 현직 시절 훨씬 중요하고 민감한 일을 했다. 그런 만큼 기업들은 ‘회사 비밀 유지’ ‘인재 유출 방지’ 등의 목적으로 현직 급여의 절반 이상을 지급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삼성을 비롯한 국내 4대 그룹만 봐도 특히 엔지니어 출신들은 국내외 경쟁사들의 영입 사정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들이 품위를 유지하면서 인생 2막을 설계하도록 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득이 더 많다”고 전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미나 기자)




삼성그룹은 통상 1~2년의 예우를 통해 현직 대비 60~70% 수준의 급여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장급의 경우 상담역으로, 부사장급 이하의 경우 자문역으로 각각 활동한다. 공헌도와 상징성이 큰 소수 인사는 고문 지위를 준다. 일부는 회사에 적을 둔 상태에서 재능기부 성격의 외부 활동을 하기도 한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서 특임교원(객원교수)으로 일하고 있는 이정배 삼성전자 상담역(전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또 사장 모임 ‘성대회’와 임원 모임 ‘성우회’ 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퇴임 임원들이 모여 사회공헌 활동을 하거나 사업 관련 조언을 주고받는 조직이다.


SK그룹의 임원들은 퇴임 후 경영자문위원으로 사실상 고문 역할을 한다. 기간은 2년 정도다. 특히 2020년 출범한 사내교육 플랫폼 ‘마이써니’(mySUNI)에서 전문교수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SK그룹은 퇴임임원 전용 공간인 ‘아너스라운지’를 통해 전문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교육 기반이 부족한 중소기업 등에서 코치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6년간 양성한 코치는 6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사장급 이상은 퇴임 후 고문으로, 나머지 임원은 자문으로 1~2년간 활동한다. 특히 현직 급여의 80% 정도를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대기업들보다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다른 곳들처럼 ‘자우회’(현대차), ‘기우회’(기아) 등 모임도 있다.

LG그룹은 고문료, 자문료 등을 월별로 제공하고 있는데, 현직 급여의 50%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 퇴직임원 교류를 위한 조직으로 ‘LG크럽’을 운영한다. LG 관계자는 “LG크럽을 계기로 일부 퇴직 임원들은 벤처 투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엑셀러레이터 ‘엔젤식스플러스’가 대표적이다.


누적 임원 급증, 점차 줄어드는 예우

다만 대내외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워낙 커지면서 최근 몇 년간 퇴직임원 예우를 줄이는 기류도 있다. 퇴직임원들부터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부장을 역임한 사장급 인사들이라면 고문 위촉 사례가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바로 상담역을 맡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그나마 사정이 가장 나은 편”이라며 “누적 임원들이 많아지는 현실적인 문제 탓에 사업이 어려운 곳일수록 점차 퇴직임원 예우가 줄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과거 통상 2~3년이던 예우 기간을 1년으로 줄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통상 이용률이 저조한 퇴임임원 사무공간 축소를 검토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기술 유출 우려가 커진 와중에 이는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현직 IT 엔지니어 임원은 “중국 등에서 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내면 연봉 측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이라고 했다. 퇴임 이후의 예우가 약해지면 아예 현직 때부터 이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