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사진=뉴시스 |
한국 사회에서 '수수료' 만큼 반감을 사는 비용도 드물다. 미국에선 당연한 은행의 계좌유지수수료는 2017년 한국씨티은행이 도입했다가 거센 반발에 유명무실해졌다. 배달앱의 중개 수수료와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는 매번 정치권의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된다. 낮추거나 없앤다는 말만 나와도 환호가 쏟아진다. 비용을 누가, 왜 부담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고 '낮추거나 없앨수록 좋다'는 단순한 인식만 남았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2012년 이후 3년마다 개편이 이뤄지는데 매번 인하됐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연매출 2억원 이하 가맹점 기준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1.5%에서 2024년 개편 시 0.4%로 '반의반 토막'이 났다. 2억원 초과 매출 가맹점의 경우 2.12%에서 매출액에 따라 1.0~1.45%로 낮췄다. 체크카드 수수료율은 신용카드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카드사가 감당한 수수료 절감액은 약 3조4000억원이다.
카드업계 1위를 오랜 기간 지켜온 신한카드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6750억원을 기록한 뒤 매년 역성장해 2024년 5721억원까지 내려왔다. 물론 삼성카드나 현대카드처럼 프리미엄 고객을 유치하거나 플랫폼 수출 등을 통해 이와중에 성장한 회사도 있다. 하지만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산업 전반이 이미 체력 소진 단계라는 뜻이다.
실제로 수익성 악화에 은행으로부터 분사를 추진해오던 NH농협카드는 분사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그만큼 수수료율 인하는 여신업계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여신업계는 2027년에도 수수료율이 현재 수준보다 더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듬해가 총선이기 때문이다.
지속된 수수료율 인하로 가맹점은 혜택을 봤지만 누군가는 역풍을 맞았다. 카드사들은 무이자할부 같은 일반 회원들의 혜택을 줄이고 연회비를 올려 대응한다. 카드론 등 대출 상품을 확대해 이자마진으로 떨어진 수익성을 만회한다. 이제는 연말 성과급을 없애거나 희망퇴직자를 늘리는 등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다 꺼내고 있다. 수수료율 인하의 부담이 결국 소비자와 산업 종사자에게 되돌아온 셈이다.
수수료는 기업의 수익이기도 하지만 서비스 제공과 유지 및 운영, 리스크 관리 등의 비용이기도 하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개발의 종잣돈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은 모든 산업이 피할 수 없는 인공지능(AI) 대전환과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같은 인식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결제시장의 서비스 저하,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장기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수료는 '기업의 폭리'라는 프레임에 갇혀 시장 논리는 실종돼 가고 있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 때마다 '카드사의 조달 비용 하락'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조달 비용이 올랐다고 수수료율을 다시 올린 적은 없다. 시장논리로 포장하지만 본질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정치논리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측면이다.
스테이블코인 도입까지 임박하면서 카드업계는 미래가 가장 불확실한 금융업 중 하나로 평가된다. 산업 자체가 침체국면에 접어든 지금 '수수료 제로'를 향해가는 사회가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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