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혁신가 피터 디아만디스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은 이미 왔으며, 특이점 이후 인공지능은 기하급수적 발전을 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게티이미지뱅크 |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일론 머스크만큼 논쟁적인 인물이 현재 지구상에 있을까. 때로는 극단적 신자유주의자의 얼굴로, 때로는 호기심 가득한 개구쟁이의 얼굴로 우리를 혼란시킨다. 허세 섞인 그의 말은 놀랍게도 하나씩 현실로 다가오니 세계는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그가 ‘탈희소성’ 사회를 말하기 시작했다. 희소성은 우리가 가진 욕구에 비해 그것을 충족시켜줄 자원이나 수단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경제학의 핵심 원칙이기도 하다. 반면 탈희소성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가 부족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는 몇달 전 노동이 선택이 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더 싸게 농산물을 살 수 있지만, 다른 이유로 텃밭을 가꾸는 우리의 노동처럼. 이번에 그는 미국의 혁신가인 피터 디아만디스 팟캐스트에서 탈희소성 사회에 대한 그의 확신을 설파했다. 디아만디스와 머스크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은 이미 왔다. 특이점 이후 인공지능은 기하급수적 발전을 할 것이다. 그는 이를 ‘슈퍼소닉 쓰나미’(초음속 쓰나미)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예측하는 ‘쓰나미’는 생산성을 폭발시킬 것이다. 경제는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비용, 노동 비용, 인공지능 비용 등이 모두 낮아져서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 연금도 의료 걱정도 없다. 보편적 기본소득(UBI)이 아니라 보편적 고소득(UHI) 시대가 온다. 디아만디스는 보편적 재화와 서비스(UBSS) 시대가 아닐까 제안하기도 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본질은 탈희소성이다.
이들의 예측을 어느 정도 과장이 있다는 전제 아래 받아들인다 해도 이들이 만들어내는 담론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생산성의 폭발적 향상은 자동적으로 ‘보편적 분배’로 이어진다는 가정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조세에 의한 재분배가 아님을 암시한다. 재화와 서비스의 탈희소성을 통한 보편적 삶의 질 개선이다.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대중교통을 상상해보고, 인공지능이 의료와 돌봄을 상당 부분 담당하는 사회를 그려보자. 여러 아이티 활용 비용도 더욱 낮아지며, 교육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많아지는 동시에 더 높은 지위를 가려는 경쟁이 줄어든 사회를 생각해보자. 하지만, 문제는 그 시기에도 여전히 ‘소득’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시장소득의 관점에서 보면 소득은 더욱 양극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전통적 재분배 없이 탈희소성 사회가 모두가 여유로운 사회로 이어질까?
두번째 이슈는 물질의 탈희소성이 체감되는 탈희소성으로 이어지는가이다. 이미 우리는 일부 재화에 대해 탈희소성을 경험하고 있다. 필자 역시 지금 체형이 유지된다면 옷을 추가로 구매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의류가 옷장에 있다. 100여년 전과 비교하면 먹을거리 역시 탈희소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탈희소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불평등 때문이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불평등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채우지 못한다. 탈희소 수준의 재화나 서비스가 양극화 사회와 결합되면, 상층은 고품질 서비스를 독점하고 다수는 대량의 저가 서비스에 머무를 가능성도 있다. 물질적 풍요가 탈희소성 사회로 이어지려면 삶의 경로가 다양해지거나 불평등이 완화되어야 한다. 이도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고용의 이슈나 미국 외 국가들도 동등한 생산성 증가를 누릴 수 있는가 등 다른 쟁점도 많지만 지면 한계상 다루기 어렵다. 머스크 역시 구체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답을 피한다. 그는 비관적으로 맞히는 것보다 낙관적으로 틀리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존과 공멸이 갈릴 수 있는 시점에서 준비 없는 기술 낙관론이나 기술 도피주의로 미래를 맞이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창조하는 생산성 증가가 모두의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 넉넉함으로 연결되는 ‘여유’가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여전히 핵심이다. 공공의 공간에서 모두의 역할이 다시 논의되고, 변화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기대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오히려 정부의 기술과 행복의 선순환을 창출하는 정책 역량과 재분배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담론이 실종되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하에 지난 12월30일 탈희소성 여유사회라는 주제로 랩(LAB)2050과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시민들이 함께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그림과 담론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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