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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템플스테이 지난해 35만 명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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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템플스테이 지난해 3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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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힙’한 종교는 불교다. 전국의 유명 사찰을 돌며 진행하는 짝짓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에 참가하려면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극락도 락(Rock)’ 같은 재치 있는 슬로건 덕에 성황을 이룬다. 빵과 소스까지 식물성 식재료만 쓰는 ‘극락 버거’ ‘왕생 핫도그’는 채식주의자는 물론이고 육식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화제다. 절에서 하룻밤 지내며 수행 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에 지난해 역대 최대 인원이 몰려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국 158개 사찰에서 진행된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35만 명.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 때 외국인들의 숙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K팝 스타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체험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체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까지 누적 참가자가 418만 명이고, 이 중 세계 20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참가자가 59만3000명이 넘는다. 경북 경주 함월산 중턱의 골굴사와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금선사는 외국인 참가자가 훨씬 많다.

▷한국은 선불교 전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맑은 공기와 칠흑 같은 어둠, 새벽 예불을 알리는 청량한 목탁 소리까지 빛과 소음이 차단된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BTS 멤버 RM은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 절로 간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했고, 미국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에릭 리퍼트는 불교의 식사 의례인 발우공양을 경험한 뒤 “인내와 겸손,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겼다”고 썼다.

▷요즘 템플스테이 인기몰이의 일등 공신은 ‘나는 절로’다. 코로나를 겪으며 대면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청춘남녀를 위해 2023년 11월 시작했는데, ‘솔로’인 스님들이 솔로 탈출을 돕는다는 설정 자체가 화제를 불러 모았다. 회당 20∼30명의 남녀가 참가하고 이 중 절반이 커플이 돼 절을 떠난다. 지난해 9월엔 결혼 1호 커플이 탄생했다. 사찰이 주는 진중함과 신뢰감에 서로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에 만남의 질이 높고 커플 성사율도 높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누구는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하고, 누구는 평생의 인연을 찾으러 간다. 사찰음식을 통해 식재료에 대한 존중을 배우기 위해, 소고기 없이도 소고기 맛을 내는 화엄 버거를 먹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찰의 개방성과 유연함이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교도들까지 고요한 산사를 찾고 비움의 미학을 얻어 사찰 문을 나서는 비결일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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