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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세력권 부활과 한국의 ‘신생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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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세력권 부활과 한국의 ‘신생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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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미국발 뉴스를 보면 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나 싶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인 불법 이민자 대량 추방을 위해 특정 지역을 군사작전 하듯 휩쓸며, 열성적 지지층만을 향한 극단의 정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쓴 스티븐 레비츠키와 루칸 웨이는 현재 미국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단계를 넘어 이미 붕괴하는 과정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칼 슈미트의 비상 상태를 빙자해 법치의 예외를 주장하는 ‘권력행사이론’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걸렸던 ‘까불면 죽는다(FAFO)’ 포스터는 최소한의 위선마저 던져버린 오늘날 미국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미국 우선주의도 국가를 사유재산처럼 다루는 트럼프 우선주의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탈냉전 이후 단극 체제가 붕괴하면서 미국이 고립주의를 선택하는 것까지는 그렇겠다 싶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더는 국제법이 필요하지 않고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나의 도덕성”이라고 말한 대목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야음을 틈타 주권 국가인 베네수엘라를 공습하고 그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미국 국민 다수와 유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합병도 노골화하고 있고, 여기에 협력하지 않은 국가에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겁박하고 있다. 시민에게 무차별 총부리를 겨눈 이란 정권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전진 배치하면서 타국의 내정에도 여과 없이 개입하고 있다.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행태를 무슨 논리로 비판할 것인가.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과 팔로십 모두를 잃어가는 중이다.

한편 미국은 과거 아틀라스(Atlas)처럼 전 세계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발표된 ‘국가안보전략보고’에는 서반구 보호를 최우선적 과제로 제시하면서 국제적 리더십이라는 표현은 아예 삭제했다. 반면 동반구의 동맹국에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며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고 압박했다.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서도 지정학적 경쟁이 아니라 단순한 무역상대로 보고 경제와 산업 중심의 장기 전략경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로 맞서면서 미국이 독점해 온 ‘무기화된 상호 의존’ 체계가 깨진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을 중국이 분리주의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건 시진핑 주석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중국은 현대 제국주의의 첫 희생양이 된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서도 ‘제멋대로’ 침공했다고 날을 세우고, 그린란드 합병과 이란 사태 개입에 대해서도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지키라고 강조했을 뿐, 대응할 수단과 의지가 없다. 오히려 중국은 이른바 ‘천하삼분지계’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즉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서부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동부를 각각 하나의 축으로 삼고, 글로벌 남부를 향한 각축이 전개될 것으로 보며 주변 지역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놓았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텀라인을 긋기 시작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대해 ‘이중용도 물자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 것도 ‘닭을 잡아 원숭이를 놀라게 하는’ 살계경후식 효과를 노린 측면도 있다. 더구나 2027년 21차 당대회를 앞두고 ‘정체성의 정치’가 강화되면서, 중국은 주변국에 대해 ‘역사의 바른 편에 서라’고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세력권 질서가 귀환하면서 일본은 중국에, 유럽은 러시아에 미국이 자신을 팔 수 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 전략동맹의 좌표도 수시로 바꾸고 있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역할론을 유인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생존방식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각자도생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신앙화된 동맹을 극복하고 무역, 공급망, 시장 모든 영역에서 다각화를 서두르고, 글로벌 사우스까지 경제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동시에 경제안보와 기술주권 그리고 최소한의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 버틸 여력도 축적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보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킨 외교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협치를 통해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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