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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광고]지금의 롯데를 만든 그 'CM송'

비즈워치 [비즈니스워치 김다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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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광고]지금의 롯데를 만든 그 'CM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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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8개국 "그린란드와 연대…관세위협, 대서양관계 약화"
1980년 대한민국 '껌의 전성기'
청춘 담은 멜로디로 온국민에 각인
껌 한 통에서 출발해 글로벌 그룹으로


그래픽=비즈워치

그래픽=비즈워치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껌=롯데껌

활기찬 멜로디와 함께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세 가지 껌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광고가 시작된다.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 통기타를 멘 청춘들, 서로 껌을 나누며 웃는 장면이 이어진다. "멕시코 치클처럼 부드럽게 말해요", "롯데껌처럼 향기롭게 웃어요"라는 가사는 껌을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청춘의 상징'으로 끌어올렸다. 광고 말미에는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오 롯데껌)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라는 CM송이 반복되고, '껌은 역시 롯데껌'이라는 문구와 함께 화면이 마무리된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 CM송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문구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채시라를 모델로 기용해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의 모습을 활기차고 명랑하게 담아냈습니다. 세시봉 열풍의 중심에 있던 그룹 윈폴리오의 윤형주가 참여한 이 광고는 1980년대 공개 이후 대중의 기억에 깊게 각인됐습니다.

광고는 윤형주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경쾌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껌을 씹는 행위를 '나눔'과 '만남'의 이미지로 확장하며 세대의 감성을 정확히 건드렸습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가 국내 껌 시장 1위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광고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광고가 공개됐던 1980년대는 말 그대로 '껌 전성기'였습니다. 당시에는 과자보다 껌 매출이 더 높았는데요. 4000만 국민이 하루 평균 3~4개의 껌을 소비할 정도로 껌은 일상 소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껌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껌은 씹는 것도 중요하지만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공익광고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롯데 대형껌 탄생 광고/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롯데 대형껌 탄생 광고/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장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사실 껌 시장의 선발주자는 해태제과였습니다. 국내 최초의 껌은 해태제과가 1956년 출시한 '해태 풍선껌'인데요. 1959년에는 '슈퍼민트'가 나왔고, 1966년 '셀렘민트껌'이 등장했습니다. 해태껌이 시장을 장악하던 상황에서 롯데가 쥬시후레쉬를 앞세워 도전장을 내민 것이죠. 윤형주가 만든 CM송이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며 롯데껌은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고, 시장 1위 자리를 넘겨받게 됩니다.

이후 해태는 '아카시아껌'을 출시하며 맞대응에 나섰습니다. 두 기업의 경쟁은 영남권 '롯데', 호남권 '해태'로 상징되는 지역 구도로까지 확산했습니다. 부산에서는 해태껌을 팔지 않고, 광주에서는 롯데껌을 팔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라이벌 구도는 뚜렷했습니다.

껌이 단순한 브랜드 경쟁을 넘어 지역 정서와 소비 습관까지 파고든 것인데요. 소비자들은 껌 브랜드를 통해 소속감과 정체성을 드러냈고 기업 간 경쟁은 자연스럽게 지역 기반 충성도로 이어졌습니다. 껌 한 통을 둘러싼 경쟁이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된 셈이죠.


껌 팔아 일군 롯데

롯데껌은 롯데그룹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故) 신격호 롯데 창업주는 일본 롯데 사장이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한국 진출을 본격화했습니다. 1967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롯데제과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대규모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중화학공업보다는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고 대중 소비가 가능한 식품 산업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꼽혔습니다. 껌은 원재료 수급과 설비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으면서도 반복 소비가 가능한 제품이었습니다.

롯데껌 광고/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롯데껌 광고/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롯데는 1969년 국내 최초로 껌 베이스를 직접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며 차별화에 나섰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수입산 껌 베이스에 의존하던 상황에서, 롯데는 껌 생산의 완전한 국산화를 실현했습니다. 이는 원가 절감뿐 아니라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외국 제품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고품질 껌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죠.


1970년대 초반은 소득 수준이 점차 높아지며 간식과 기호식품 소비가 빠르게 늘던 시기였습니다. 롯데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1970년 '왔다껌'을 출시했습니다. '왔다껌'은 껌 포장지 안에 만화 캐릭터 판박이를 넣어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물량 부족 사태를 겪을 만큼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1971년에는 '돈돈껌', '껌사탕', '제리캔디' 등 껌과 캔디를 결합한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 저변을 넓혔습니다.

껌 사업이 잘되자 롯데는 1972년 대단위 껌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가로 7.2cm, 세로 2cm 크기의 '대형껌'입니다. 당시 선보인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세 제품은 기존 껌보다 크기가 커 '대형껌'으로 불렸습니다.

롯데껌 삼총사는 출시와 동시에 시장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당시 껌 한 통에 들어가는 개수는 기존 5개에서 6개로 늘렸지만 가격은 동일하게 유지했습니다. 체감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었죠. 이후 작은 껌들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대형껌의 크기가 한국 껌의 표준이 됐습니다.


롯데껌의 부활

코로나19로 침체됐던 국내 껌 시장은 팬데믹 이후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2023년 '부활 레트로껌 프로젝트'를 통해 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1972년 첫 출시 당시 디자인을 그대로 복각한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쥬시후레쉬를 선보이며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소비자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전달하는 전략이었습니다. 디자인뿐 아니라 상쾌함과 단맛이 오래 지속되도록 배합을 개선해 품질도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광고 역시 레트로 감성을 정면으로 겨냥했습니다. 70~80년대 분위기로 리뉴얼한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쥬시후레쉬, 커피껌, 이브껌 등 대형껌 5종을 소개하며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라는 CM송을 다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한때 습관처럼 불리던 멜로디는 세대를 넘어 공감대를 형성했죠.

‘부활!롯데껌’ 캠페인을 소개하는 배우 김아영. /사진=롯데웰푸드

‘부활!롯데껌’ 캠페인을 소개하는 배우 김아영. /사진=롯데웰푸드


롯데껌 삼총사는 현재도 진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롯데웰푸드는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트렌드를 반영한 '럭키 롯데껌 에디션'을 출시했습니다.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에 네잎클로버 디자인을 적용해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콘셉트를 담았습니다. 패키지에는 나눠주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요. 껌을 나누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놀이이자 메시지로 확장한 셈이죠.

껌으로 시작한 롯데는 식품을 넘어 유통, 관광, 화학, 건설로 사업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백화점, 마트, 호텔, 면세점까지 아우르는 유통·서비스 그룹으로 성장했고, 석유화학과 소재 산업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혔습니다. 그 결과 롯데그룹은 2025년 기준 국내 재계 5위권 그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은 기호식품에서 출발한 기업이 국민 브랜드를 넘어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하기까지. 롯데의 역사에는 품질에 대한 집요함과 시대의 감성을 읽어낸 마케팅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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