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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플러스]〈칼럼〉흑백 요리사가 보여준 인재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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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플러스]〈칼럼〉흑백 요리사가 보여준 인재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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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요즘 요리 예능 '흑백 요리사2'의 인기가 선풍적이다.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번 시즌도 연일 화제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화려한 요리 기술 자체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재를 가려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함께 성과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른다.

시즌1이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의 판단과 결단을 서사의 중심에 두었다면, 시즌2는 한층 '현장에 가까운' 풍경을 보여준다. 승부는 한 사람의 결정이 아니라 역할 분담과 권한 위임에서 갈린다. 육류, 채소, 소스처럼 파트를 세분화하고, 각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에게 권한을 맡긴다. 리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팀은 굴러가고, 오히려 그럴 때 결과가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프로그램은 거듭 확인시킨다. 때로는 미쉐린 스타 셰프도 자신의 이름값을 앞세우기보다 팀의 완성도를 위해 작은 역할을 기꺼이 선택한다. 결국 핵심은 단 하나, '누가 이 역할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가'라는 기준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은 무대 밖에 있던 인재가 다시 불려 나오는 과정이다. 실력은 있었지만 환경과 기회가 따라주지 않았던 사람들, 한때 흐름에서 비켜났던 이들이 다시 조명받는다. 그리고 말이 아니라 결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이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연구 현장을 떠났거나 잠시 멈춰 선 경력 보유 여성과학기술인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3년 남녀 과학기술인력 현황 보고서(WISET)'에 따르면 전문성을 갖추고도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여성 과학기술인은 16만8000명에 달한다. 경제활동 참가율의 성별 격차는 특히 30대에서 크게 벌어진다. 연구 경력이 본격적으로 축적되는 시기와 출산·육아 부담이 집중되는 시점이 겹치기 때문이다. 이를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이탈'의 비용이다. 이공계에서 학부를 거쳐 박사 학위에 이르기까지는 통상 10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는 적지 않은 공적 자원이 투입된다. 그럼에도 숙련된 인력이 연구 현장을 떠난다면, 이는 개인의 경력 단절을 넘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경력 보유 여성 과학기술인을 다시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복지의 영역을 넘어 국가 R&D 성과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인재 전략이기도 하다.

물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는 많은 기관에 마련돼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비정규직 연구원은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올해 육아기 연구자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방향 면에서 의미가 있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대학원생과 비정규직 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긴급돌봄 바우처 확대, 출산·육아로 중단된 연구 활동 재개를 위한 과제비 지원, 연구전문직(Staff Scientist) 트랙 신설은 제도적 빈틈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다만 아직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력 중 여성 비율은 2023년 기준 23.1%로 세계 평균(31.1%)에 미치지 못한다. 흑백 요리사가 숨은 인재를 발굴해 무대 위로 끌어올리듯, 역량 있는 여성 과학기술인이 다시 연구 현장에 설 수 있도록 제도와 예산의 뒷받침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wiset@wiset.or.kr

◆문애리 이사장은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생화학·생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으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민간위원장과 UN 과학기술전문가그룹 위원 등을 맡아 과학기술 정책과 국제 협력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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