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나이트 호크, 1942년, 캔버스에 유채, 84×152㎝, 시카고 미술관, 미국. [그림 | 위키미디어] |
요즘 같은 겨울에 눈 쌓인 거리를 걷노라면 괜스레 옷깃을 세우게 된다. 마음의 온도가 그리 시키는 듯하다. 겨울 준비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더욱 쓸쓸한 계절을 맞을 것이다. 따뜻한 손길과 다정한 눈빛이 그리운 계절이다.
화가 가운데 이런 분위기에 딱 맞는 그림을 그린 이를 찾으라면 단연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er·1882~1967년)'가 꼽힌다. 그림 '나이트 호크(Nighthawks·1942년)'가 바로 외롭고 공허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거리 어느 모퉁이의 주점이다. 때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찬바람이 거리를 스산하게 맴돌고 있는 듯 추워 보인다. 거리엔 행인이 없어 늦은 밤처럼 썰렁하다.
주점 간판엔 '필리스 시가(PHILLIES Cigar) 5센트'란 광고 그림과 문구가 그려져 있다. 내부는 밖에서도 보이도록 꾸며져 한마디로 저렴한 선술집 풍경을 자아낸다. 등장인물은 모두 4명. 남녀 한쌍과 혼자 앉은 손님, 그리고 종업원이다.
그림은 첫 느낌부터 휑하니 썰렁한 분위기로 연출된다. 어두운 주변과 밝은 대비의 벽면이 시선을 모으는데 그 색상과 명도가 차갑고 쓸쓸하다. 커다란 두개의 금속성 구조물이 더욱 차갑게 다가온다. 물끄러미 쳐다보며 자기 일에 열중인 종업원, 그런 그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한쌍의 남녀를 조금 자세히 관찰해 보자.
예리한 매부리코의 날 선 콧날 때문인지 남자는 정장 양복에 중절모까지 썼는데도 차가운 분위기를 풍긴다. 여자는 붉은 드레스를 입었는데도 반팔이라 추워 보이고, 커피를 마시는 듯 테이블에 하얀 컵이 놓여 있다. 그들은 손을 잡은 듯 보이기도 하고 떨어진 듯 맞대어 있다. 관계를 궁금하게 만든다.
의문은 맞은편에 앉은 뒷모습의 남자에게서 최고조에 이른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인물은 불안감까지 더한다. 마치 영화 속 범죄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창밖 건물도 이상하게 외롭고 쓸쓸해 불편한 분위기를 한층 더하고 있다.
황량하리만큼 깨끗한 거리, 그리고 주점의 불빛에 반사되는 붉은 건물의 창가엔 인기척 없이 차가운 금속 소재의 계산기만 하얗게 빛을 발한다. 감정 없는 물체가 주는 냉기와 도시의 공허함이 가슴을 스친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외롭고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을 제3의 관찰자 시점에서 응시하는 나를 발견한다. 바로 나의 위치, 나의 주소, 나의 현실인 것을 알아차리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방황하던 거리에서 문득 만나는 외로운 주점 속 풍경에서 발견하는 나 또한 그림 속 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건조함, 그리고 이내 따라오는 외로움과 허전함. 같은 맥락의 주제로 표현된 그림 한점을 더 살펴보자.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그림 | 위키미디어]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푸른 저녁(Soir Blue·1914년)'이다. 저녁 무렵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푸른 배경은 산 또는 바다일 수도 있겠지만 푸른 외로움이다. 푸른색을 서양에선 우울한 색으로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의미한다. 타협 없고 권위 있는 제복의 군인, 그 옆의 화가, 그 앞에 서 있는 깐깐하고 도도한 도시 여자, 무대의 고독과 현실 속 고립 가운데 외로운 광대, 그리고 오른쪽의 관찰자들이 앉아 있다.
여기서 문제는 피에로다. 웃음과 갈채 속에 화려하고 행복할 것 같은 광대, 그가 바로 대중 속 고독자 우리의 모습이다. 이들 가운데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에겐 원초적 숙명이 있다. 외로운 존재라는 거다. 인간은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외롭다. 그런데도 모이고 함께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춥고 외로움 속에 서로를 찾고 따뜻한 온기를 나눈다. 올겨울도 춥다.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나누며 스스로 돌아보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야 할 텐데 참 어렵다. 이 또한 인간의 숙명일까.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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