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작곡가 김광진, 데뷔 35년 차 ‘제2 전성기’
가수 김광진. 예음C&C 제공 |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아직도 어찌 된 일인가 싶어요.”
번개 머리를 한 가수 김광진이 웃으며 말했다. 마치 시간이 30년쯤 거꾸로 간 듯, 그의 노래들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데뷔 35년 차,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겸 작곡가 김광진을 지난 9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광진은 ‘마법의 성’ ‘여우야’ ‘동경소녀’ 등 세대를 아우르는 발라드 명곡과 수많은 가수들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 유명한 뮤지션이다. 한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요즘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직접 부른 라이브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공연은 매진행렬을 이어가는 중이다.
“2023년 가을쯤인가 친분이 있던 방송국 PD의 제안으로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을 하게 됐어요. 제가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쉬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팬들이 많이 찾아오셨더라고요. 그날 새로운 에너지를 받았어요. 이상하게 그 뒤로 계속 무대에 서게 됐어요.”
가수 김광진. 예음C&C 제공 |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힘을 얻어 크고 작은 콘서트를 시작하게 됐고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메들리 메들리 페스티벌’ 등 데뷔 후 처음으로 야외 축제 무대에도 섰다. 여기에 공연에서 불렀던 라이브 영상들이 SNS에서 퍼져 나가며 유튜브 콘텐츠, 방송 출연으로도 이어졌다.
그간 많은 후배 가수들이 끊임없이 김광진의 노래를 리메이크 했지만 ‘원작자’의 목소리로 듣는 원곡의 감동은 파급력이 컸다. “운 좋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겸손한 표현과 달리, 부산공연에서 불렀던 ‘처음 느낌 그대로’ 라이브 영상은 유튜브에서 400만 조회수를 넘기며 김광진을 단숨에 대중 앞에 다시 세웠다. 새로운 노래를 발표한 것도 아닌데 컴백 아닌 컴백을 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김광진을 놀라게 한 건 그의 노래와 무대에 반응하는 관객층이다.
“얼마 전 공연에서 ‘20~30대 손 들어보세요’ 했더니 반 넘게 손을 들더라고요. ‘처음 느낌 그대로’ 유튜브 통계를 보니 70%가 2030 남성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젊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게 고맙고 신기해요.”
서정적인 멜로디와 절제된 감성,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그의 노래가 요즘 ‘젊은 발라드’ 트렌드와 맞닿은 것이다. 그의 재등장을 단순히 ‘추억 소환’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광진이 페스티벌에서 ‘편지’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숏츠 영상. 유튜브 갈무리 |
스타일 변신 또한 화제다. 언제나 단정한 차림으로 무대에 섰던 그는 요즘 과감한 헤어스타일과 파격적인 의상으로 등장한다. 번개 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낀 채 야외 무대에서 ‘편지’를 부르는 유튜브 영상에는 ‘안본 사이에 팀 버튼이 되셨다’ ‘이런 모습으로 이런 발라드라니, 세상 힙하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패션 본능이 봉인 해제된 거냐고 물으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재작년에 제 공연을 보러 온 스타일리스트가 ‘김광진씨,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하더라고요. 제가 원래 고집이 없어요. 그분께 스타일링을 다 맡겼죠. 처음엔 좀 어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관객들도 좋아해주시니 저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요.”
음악을 떠났던 시간, 운명처럼 다시 찾아 온 무대
1995년 KBS <이소라의 프로프즈>에 출연한 김광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
1991년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를 작곡하며 음악 인생을 시작한 김광진은 세련되고 섬세한 감성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4년 박용준과 함께 결성한 듀오 ‘더 클래식’은 ‘마법의 성’으로 밀리언셀러(130만 장)를 기록했고, 이승환의 ‘덩크슛’, 이소라의 ‘기억해줘’와 ‘처음 느낌 그대로’,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등 90년대 발라드 전성기를 관통한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김광진은 금융회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며 회사원과 가수의 경계를 오가는 뮤지션으로도 유명했다. 여의도에서 넥타이를 맨 김광진 ‘본부장님’을 봤다는 목격담이 심심찮게 들리곤 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BA까지 취득한 이력에, 생업은 따로, 가수를 취미로 하는 ‘투잡’ 뮤지션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어린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을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던 그가 무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음악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그로 인한 심리적 부담 때문이었다.
“제가 1994년 더 클래식 음반을 낸 이후 거의 매년 음반을 낼 만큼 부지런했어요. 그런데 2002년 4집 ‘동경소녀’ 이후부터는 음악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곡을 만드는 게 힘든 건 아니었는데 홍보나 마케팅 같은 부분에서 벽을 많이 느꼈죠. 대중의 반응이 줄어드는 걸 체감하면서 점점 위축됐던 것 같아요.”
1997년 삼성증권 근무 시절 김광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음악인으로 제대로 살아보자’라는 각오로 2011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2014년 더 클래식 미니앨범
오랜 공백기를 지나왔기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행운같기만 하다. 이 시기가 더 일찍 오지 않은 것이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와준 게 감사하다”며 웃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음악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정을 다해 썼던 곡들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다시 살아나서, 제가 공연을 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팬들도 만나게 해줬으니까요. 그땐 왜 그렇게 의기소침했을까 싶기도 하고, 멈춰 있던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음악은 제 운명 같아요.”
무엇보다 김광진을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린 힘은 팬이다. “예전엔 제게 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는 팬들이 지하철 광고도 하고,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더라고요. 정말 감사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5년 무대에서 공연 중인 가수 김광진. 예음C&C 제공 |
김광진이 최근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
그는 요즘 노래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라이브 실력이 전보다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데뷔 35년 차에 보이스 레슨까지 받고 있다.
“제가 들어도 전보다 발성이 좋아졌어요.(웃음) 예전에는 노래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이제는 힘을 빼고 부르니까 소리가 더 자연스럽게 나가더라고요. 노래는 정말 계속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30년 넘게 음악을 해온 베테랑에게서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같은 설렘이 묻어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젊은 뮤지션들과의 협업도 해보고, 오케스트라 편곡 공연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매진을 기록한 데 이어, 오는 2월 21일 서울 영등포 명화라이브홀에서 <더 트레저> 앵콜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공연이 계속 잘 되면 해외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 소망도 있다.
“AI에게 물어봤어요. ‘LA에서 만 명 앞에서 공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요. 그랬더니 5년 계획, 10년 계획을 짜주더라고요. 그땐 그냥 웃었는데, 지금은 왠지 가능할 것도 같아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앞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어요.”
☞ 김광진 “오래 남는 곡들을 보면 음악의 힘을 느껴요.”
https://lady.khan.co.kr/entertainment/article/12313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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