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 임시 의사 찾지만 감감소식
거동 불편한 노인들 “치료받으려 읍내로 가거나 아예 포기”
거동 불편한 노인들 “치료받으려 읍내로 가거나 아예 포기”
지난 1월 1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 입구에 휴진을 알리는 글이 붙어 있다. 이재덕 기자 |
[주간경향] 지난 1월 12일 찾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운월리 ‘우리동네의원’에는 30일까지 휴진한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이훈호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이 지난해 12월 17일 건강 악화로 예정에 없던 큰 수술을 받고 입원하면서 시작된 휴진이다. 병원 측은 이 원장을 대신할 임시 의사를 찾고 있지만, 시골에 오겠다는 의사가 없다. 30일 이후에도 휴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1차 의료기관인 우리동네의원을 이용하는 환자는 하루평균 40명쯤. 대부분 홍동면에 거주하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은 70대 이상 어르신들이다. 이 원장 역시 홍동면 주민으로, 어르신들의 생활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몇 년 전 다수의 마을 주민에게서 고혈압·당뇨 수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 원장은 어르신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사륜 스쿠터’에 주목했다. 사륜 스쿠터를 타고 논과 밭을 다니는 어르신에게 이 원장은 “가능하면 더 걷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은 입원하기 한 달 전에 지역 언론인 홍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며 “그들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는 의료를 지향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휴진이지만 병원 문은 열어둔다. 이날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박희진 사무국장만 나와서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의사의 부재를 알리고, 이들이 처방받았던 약의 목록을 뽑아줬다. “약이 달라지면 환자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읍내에 있는 다른 병원에 가서도 같은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안내하는 거죠.”
전립선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자주 찾는다는 주민 신관호씨(78)는 “우리동네의원은 우리 병원, 이 원장은 우리 의사, 내 주치의”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우리동네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다는 주민 이재자씨(81)도 “세상에 이런 병원, 이런 의사 없다”고 했다. “정형외과에서는 수술을 자꾸 권했거든. 그런데 이 원장은 수술 대신 물리치료를 받고 운동하라고 했어. 그 말대로 하니 지금은 허리가 많이 좋아졌어. 물리치료사도 실력이 좋아서 웬만한 정형외과 물리치료보다 낫더라고….”
우리동네의원의 휴진은 당장 이동의 제약이 있는 홍동면 노인들에게 문제가 된다. 이씨는 “이제는 버스 타고 홍성읍으로 나가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홍동면에서 읍내 가는 시내버스는 한 시간에 한대꼴로 있다.
시장과 공공의 ‘빈틈’
우리동네의원은 홍동면의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홍성의료복지사협)’이 2015년 5월 설립한 병원이다. 홍동면은 1959년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인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소비조합 구판장(풀무생협)’이 탄생한 곳이고, 지금도 40여개 협동조합과 100여개의 주민조직이 활동할 정도로 협동조합 운동이 활발하다. 홍성보건소 산하의 홍동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공보의)로 일했던 이 원장도 공보의 복무를 마친 뒤 마을에 남아 협동조합 방식으로 병원을 만드는 일을 고민했다.
“보통 공보의를 마치면 다들 도회지로 가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마을에 남아서 주민들 대상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법’ 같은 걸 알려주더라고요. 그때 의기투합한 주민들이 이 원장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고 병원을 세운 거죠.” 금창영 홍성의료복지사협 이사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협동조합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자, 협동조합에 의해 고용된 ‘페이닥터’다.
우리동네의원이 설립됐을 때는 지금의 자리에서 2㎞ 떨어진 홍동면 금평리에 있었다. 금평리 병원 개원식에서 마을의 큰 어른인 홍순명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 교장이 ‘건강이란 신체·정신·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身體精神與社會相關完全健康)’라는 붓글씨를 써 이 원장에게 전달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헌장 전문에 나오는 글귀다. 이 원장은 이 뜻을 담아 우리동네의원 소개 글을 이렇게 썼다. “지역 주민들이 의료 소비자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료 전문가와 협동해서 적극적으로 자신과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주체가 돼가도록 돕겠습니다.”
2015년 5월 충남 홍성군 홍동면 금평리에서 열린 우리동네의원 개원식. 왼쪽부터 채승병 초대 이사장, 홍순명 풀무학교 전 교장, 이훈호 우리동네의원 원장.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
우리동네의원은 가정의학과 기본 진료, 금연 진료, 영유아 검진, 성인 예방 접종, 수액·영양치료, 통증치료(물리치료) 등을 제공한다. 걷기 모임과 ‘허리건강실천단’ 같은 주민 모임을 꾸리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건강 교실도 운영한다. 임종을 앞두고 병원 방문을 거부한 채 자택에 머무는 주민에게는 방문 진료로 상태를 살피고, 사망 후에는 사망진단서 작성까지 맡는다.
민간 병원이 많지 않은 농촌 지역에서는 통상 보건소나 보건지소 같은 공공기관이 1차 의료 서비스를 맡는다. 읍에는 보건소, 면에는 보건지소가 설치되고 공보의가 배정된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농촌에서는 이런 공공의료 서비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홍성보건소와 산하의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는 모두 18명인데, 의과는 4명뿐이고, 나머지는 치과(4명)와 한의과(10명)에 속한다. 의과 공보의 1명은 보건소에서 일하고, 나머지 3명은 보건지소를 순회하면서 진료한다. 홍동보건지소에는 화요일에만 의과 진료가 가능하다. 올해 4월에는 의과 공보의 3명이 전역한다. 홍성군청 관계자는 “4월 이후 의과 공보의가 채워질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보건복지부로부터 답을 받지 못했다. 전국의 모든 보건소와 보건지소가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평리에 있던 우리동네의원은 2023년 지금의 자리인 운월리로 이전했다. 금평리 시절에는 하루 환자가 25명 수준이었는데, 면소재지인 운월리로 옮기자 환자가 2배로 늘었다. 홍동면은 약국이 없다. 이에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지정돼 병원에서 직접 약을 짓는다. 공공과 시장이 책임지지 않는 농촌 의료 서비스를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던 것이다.
우리동네의원을 운영하는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금창영 이사장이 지난 1월 12일 우리동네의원 앞에서 ‘병원 휴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덕 기자 |
왕진하는 주치의
이날 우리동네의원 앞에는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적혀 있는 흰색 승합차가 주차돼 있었다. 이 원장과 간호사들이 방문 진료(왕진)를 위해 타고 다니던 차량이다. 송민수 간호사의 말이다. “제가 2019년에 병원에 들어왔는데 원장님이 계속 왕진을 하는 거예요. ‘어떤 어르신이 진료를 보고 가셨는데 신경이 자꾸 쓰인다, 병원에 오셔야 하는데 안 오신다’면서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액의 진료비를 받았죠. 제가 ‘진료비를 더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원장님이 ‘내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돼서 가는 건데, 어떻게 진료비를 더 받아요?’ 하더라고요.” 지금은 보건복지부가 ‘1차 의료 방문 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하고 있어서 왕진에 대한 수가가 정해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왕진은 진료수가 항목이 아니었다.
우리동네의원 이훈호 원장이 방문 진료를 하는 모습.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
우리동네의원은 거동이 불편해 진료를 보러오기 어려운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주민들의 집도 방문한다. 이 원장이 쓰러지기 전까지 이 원장과 송 간호사 그리고 우리동네의원의 사회복지사가 한 팀으로, 정기적으로 환자의 집을 방문해 환자의 몸 상태를 살폈다. 홍성에서 우리동네의원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2차 의료기관인 홍성의료원뿐이다. 송 간호사는 “우리가 돌봤던 장기요양등급 환자가 총 17명이었는데, 우리가 휴진에 들어가면서 이분들을 돌보지 못하게 됐다. 가장 걱정되는 분은 욕창이 있는 환자인데, 홍성의료원에 따로 부탁을 드렸다. 거기도 공보의 부족으로 난처해 하긴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 진료실 의자에 이훈호 원장의 가운이 걸쳐져 있다. 이재덕 기자 |
이 원장의 진료실에 들어가 보니, 진료용 침대에 2026년 달력이 쌓여 있었다. 달력 하단에는 그달에 맞는 건강 팁들이 적혀 있다. ‘농사일 틈틈이 허리 스트레칭(6월)’,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서 쉬어요. 국물음식, 냉국, 미숫가루로 몸을 달래는 것도 좋아요(7월)’, ‘뜨거운 목욕은 안 돼요. 보습제를 충분히 바르는 것이 좋아요. 기관지 마르지 않게 물을 자주 마시세요(11월).’ 올해가 오기 전 주민에게 돌리려 했던 달력인데 휴진 사태로 전달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이 원장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모금 중이다. 이재자씨가 말했다. “수술비, 병원비가 많이 나오겠지. 주변 할머니들한테 (모금하자고) 얘기하고 다녀. 노인네들이 큰일은 못 해도, 그런 작은 일들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거든….” 지난 1월 2일에 시작한 모금은 15일 기준으로 5400만원이 모였다.
더 큰 문제는 이 원장이 돌아오기 전까지 병원을 유지하고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조합은 의사 커뮤니티에 ‘임시 의사 모집’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보니 급여는 하루 40만원(세후), 숙식도 제공한다고 나왔다. 이 원장보다 급여 수준은 높지만, 일반 의사 급여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일주일에 1~3일 만이라도 와준다면 병원을 유지하고 환자들을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선뜻 오겠다는 의사는 없네요.” 금창영 이사장의 말이다. 어르신 환자들은 읍내로 나가기도 하고, 병원 가는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주치의’로서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온 병원인지라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진다. 우리동네의원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을까.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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