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
벽이나 손목에 붙어 살았다
1초마다 한 번씩 우는 벌레였다
원래 밥을 며칠 굶으면 말을 잘 들었다
지금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탈출하여
스스로 진화하고 복제되어 통제 불능이다
폭증하는 인터넷 휴대폰 공해로 변종들이 늘면서
침실, 가정집 식탁까지 점령하였다
시간을 먹고 사는 독종 불가사리
시퍼렇게 날선 가위로 재깍재깍 잘라먹는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일거리들 속에서
밤새 뒤척이는 밤이면 밤마다
점점 커지는 살점을 뜯는 소리
묵직한 가위 소리에 눌려 혼미해지거나
어쩌다 늦잠 자다 버스를 놓칠라치면
윙윙거리며 달려들어 온몸을 쑤셔댄다
이제는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신칙하며 나를 부리는데
누군 어디서 언제 만나라고 알려주는데
행여 약속 시간에 늦으면
부들부들 떨면서
내 골속까지 하얗게 파먹는다
「n평원의 들소와 하이에나」 시와과학, 2023년.
시간은 절대로 인자하지 않다. 내 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렸을 때 다른 장기로 급속히 암세포가 퍼져 암 판정 4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이 시에서 시간, 특히 초침은 독종이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지금은 초침이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탈출해 스스로 진화하고 복제돼 통제 불능"이라고 한다.
현대인에게는 지각도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한참 뒤에나 온다. 인천공항에 늦게 가면 비행기는 이륙하고 만다. 몇 초만 늦어도 티켓을 살 수 없고, 병원 예약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은 죽는다. 기다리는 자에게는 복이 오지 않고 쓰디쓴 실패만 있을 뿐이다. "시간을 먹고 사는 독종 불가사리"는 시계요, 시계의 초침이다.
[사진 | 시와과학 제공] |
0.01초 차이로 챔피언이 되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 一寸光陰不可輕. 우리는 일에 치여 살고 시간에 쫓기면서 산다. 아아 어디 여행 가서 돌아다니지 않고 푹 쉬었다 오고 싶다. 내가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나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세계에 가서 한참 살다 오고 싶다.
이런 내가 독종인가, 초침이 독종인가. 시간은 결국 우리를 죽게 할 것이다.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인 이시경 시인은 현대과학의 개가에 마냥 기뻐하지 않고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느리게 살 때가 좋지 않았냐고 은근히 말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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