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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문화 식민지? 거장 최희선의 K-사운드 ‘독립 선언’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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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문화 식민지? 거장 최희선의 K-사운드 ‘독립 선언’ [백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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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8개국 "그린란드와 연대…관세위협, 대서양관계 약화"
기타리스트 최희선·길모어 최종규 대표
미국·일본 주도 커스텀 기타 시장 도전장
‘HS-1’부터 50주년 마스터피스까지 제작
“명검은 칼이 아니라 무사의 손끝이 만든다”

202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출시할 기타를 만들고 있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과 최종규 길모어 대표

최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길모어의 HS-1 모델을 메고 연주하고 있다. [본인 제공]

최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길모어의 HS-1 모델을 메고 연주하고 있다.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5만 명의 관객이 거대한 해일 같은 함성을 뿜어내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CD(콤팩트 디스크)를 집어삼킨 ‘가왕’ 조용필의 곁엔 이 무대의 심장 같은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 최희선이다.

고(故) 안성기 출연의 영화 ‘실미도’를 뮤직비디오로 쓴 록 오페라 ‘태양의 눈’이 시작되면 객석의 온도는 달라진다. 태양처럼 새빨간 기타를 멘 그가 중저음의 기름진 톤으로 쏟아내는 아찔한 멜로디는 가왕의 또 다른 목소리다. 기타 솔로와 함께 클라이맥스로 내달리면 객석의 도파민은 한도 초과로 치솟는다.

공간을 찢을 듯한 디스토션(Distortion) 사운드가 경기장을 휘감으면 소리에 민감한 ‘사운드 환자’들의 시선은 기타의 헤드(Head)로 꽂힌다. 전 세계 음악 산업을 이끄는 ‘F사(Fender)’나 ‘G사(Gibson)’의 이니셜이 장식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겠지만, 천만의 말씀. 한국의 ‘기타 거장’이 매만지는 성역(聖域)엔 낯선 영문 필기체가 선명하다.

‘Gilmour(길모어).’

길모어 기타를 20여년간 정성으로 가꾼 최종규 대표에게 그날은 ‘인생 대역전’의 순간이었다.

“이름도 없는 국산 기타 브랜드가 어떻게 한국에서 가장 큰 공연장, 그것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요.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죠. 지금도 전 그날을 잊지 못해요.”


그날 이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공연 현장 어딘가에선 스태프처럼 서서 무대를 응시하는 최종규 대표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최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공연의 마지막 날도 최 대표는 공연장 입구에 서서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장 23년의 세월이었다. 이름 없는 국산 기타 브랜드가 ‘소리 주권’을 갖기까진 까다로운 기타 거장과 타협하지 않는 장인의 꾸준함이 있었다.

최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기타리스트 최희선(왼쪽)과 가왕 조용필(오른쪽). [본인 제공]

최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기타리스트 최희선(왼쪽)과 가왕 조용필(오른쪽). [본인 제공]



2003년, 잠실벌에서의 사형 선고: “이건 촌놈이다”

“한마디로 ‘촌놈’ 같았어요. 저기 깡촌에서 갓 상경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촌놈.” (최희선)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03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 무명 밴드의 베이시스트 출신으로 ‘내 브랜드’를 꿈꾸며 악기 제작에 뛰어든 청년 최종규(현 길모어 대표)는 잠실 주경기장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으나, 최 대표는 ‘지인’을 통해 기타리스트 최희선을 만날 수 있었다.

최 대표는 그날을 돌아보며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시니, 당연히 평가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 시절 한국은 ‘세계의 악기 공장’으로만 존재했다. 콜트, 삼익, 영창 등은 펜더와 깁슨, 아이바네즈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지로 전 세계 물량의 30% 이상을 소화해 냈다. 손기술은 있었으나, ‘우리 것’이라는 자부심은커녕 ‘장인의 영혼’을 가지진 못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최희선은 세계 최고의 기타 브랜드인 깁슨의 공식 엔도서(Endorser)이자, 한국 최초의 앰배서더였다. ‘사운드’에 있어 까다롭고 예민하기로 정평이 난 최희선에게 그는 첫 기타를 내밀었다. 패기 있는 도전이었으나, 돌아온 평가는 처참했다.

최희선은 당시를 떠올리며 “소리는 2%가 부족하고, 디자인에는 엣지가 없었다”며 “악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 첫눈에 반해야 하고 잡는 순간 전율이 와야 하는데 그런 매력이 전혀 없었다”고 혹평했다.

최희선이 공연에서 쓰는 수많은 기타

최희선이 공연에서 쓰는 수많은 기타



‘2%’라고 하니 첫 기타치고 ‘괜찮은 평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희선이 말한 2%는 깨지지 않는 벽이었다. 그날의 2%는 단순한 마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타 본연의 ‘정체성의 부재’였던 것이다. 서구의 명기를 치수만 베껴 만든 ‘복제품’엔 연주자의 심장을 뛰게 할 철학이 담기지 않았다.

“40%가 부족해도 금방 채울 수 있는 40%가 있을 수도 있는데, 당시의 2%는 평생을 해도 넘지 못할 2%였던 거죠.” (최희선)

최희선은 당연히 그 기타를 들지 않았다. ‘거장의 거절’은 최종규 대표에게 일생의 숙제가 됐다.

5년의 절치부심 그리고…“나의 까다로운 선생님”
그날 이후 최희선 앞에 새 기타를 내놓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최 대표는 최희선의 곁을 맴돌고 유학을 다녀오며 ‘소리의 본질’을 탐구했다. 단순히 나무를 깎고 줄을 엮는 행위를 넘어,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밴드 사운드 속에서 기타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2008년 새 기타가 찾아오자, 최희선은 수십 번의 리허설을 거치며 소리를 테스트했다. 최희선이 요구하는 소리는 까다롭고 난해했다.

“대포를 쏘는 것 같은 소리를 원하면 대포 소리가 나야 하고, 소총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할 땐 소총이 돼야 해요. 깁슨이 묵직한 중저음의 ‘남성’ 같은 소리라면, 펜더는 까랑까랑하고 새침데기 같은 ‘여성’의 소리를 가졌죠. 전 그 중간, 록킹(Rocking)하면서도 빈티지(Vintage)한 소리를 원했어요. 어찌 보면 굉장히 모순적이죠.” (최희선)

파주에 위치한 길모어에서 202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출시할 새 기타를 직접 만들고 있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 [길모어 제공]

파주에 위치한 길모어에서 202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출시할 새 기타를 직접 만들고 있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 [길모어 제공]



그때는 물론 지금도 이 소리를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 난제’에 가깝다. 80년대 메탈 사운드의 강렬한 출력(Gain)을 가지면서도, 60년대 악기의 따뜻하고 낡은 질감(Vintage Tone)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규 대표는 타협하지 않았다. ‘소리의 본질’을 기타의 중심에 두고 있는 최희선의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손끝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다. 대다수 커스텀 업체들이 사용하는 기성품 픽업(Pick-up, 현의 울림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장치)을 사다 쓰는 대신, 직접 구리 코일을 감으며 자체 ‘픽업’을 개발했다. 나무의 종류, 넥의 두께, 도료의 종류까지 수십 번을 바꿨다.

최 대표는 “희선 형님은 소리에 대한 본인만의 명확한 색, 자기만의 언어가 있는 기타리스트이기에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느림보 거북이처럼 차근차근 성실하게 만들어 세상에 나온 것이 최희선의 시그니처 모델 ‘HS-1’이었다. 이 기타의 ‘모태’가 된 길모어의 두 번째 기타가 바로 2008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주경기장 무대에서 울려 퍼졌다. 40년 넘게 외산 브랜드가 지배한 한국 대중음악, 밴드 음악의 정점에서 ‘소리 사대주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9~11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콘서트에서의 최희선 [본인 제공]

지난 9~11일 서울 KSPO돔에서 열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콘서트에서의 최희선 [본인 제공]



물론 최희선은 “그 후로도 10년간은 무지하게 혼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던 최 대표는 “지금도 그렇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2003년부터 23년 내내 최희선은 길모어라는 작은 기타 브랜드의 R&D(연구개발) 센터장이자 가혹한 품질 관리자였다.

“저는 제가 기타를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형님 만나고 깨달았죠.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저를 진짜 제작자로 만들어준 건 최희선이라는 까다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최종규)

나무의 숨결과 도료 , 0.1㎜의 승부…50주년 마스터피스 태동기
길모어가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파주다. 대량 생산 라인이 인건비 싼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떠나버렸고, 나날이 강화되는 규제에 서울에서 점점 더 먼 곳을 찾아 떠나다 보니 황무지에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 그는 이곳에서 국산 기타 브랜드 ‘물론(Moollon)’과 함께 한국 악기 제조업의 최후 보루인 ‘파주 라인’을 만들고 있다.

2008년 최희선에게 새 기타를 들고 찾아가기까지 최 대표의 시간은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는 나무를 깎는 목수가 아니라, 소리를 조각하는 루시어(Luthier, 현악기 제작 장인)로 다시 태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최종규는 ‘기타 거장’의 입을 통해 소리를 배우고 기타의 진화를 만들어갔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1000분의 1㎜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CNC(컴퓨터 수치 제어) 머신으로 기본 설계를 깎아내지만, 넥의 그립감과 프렛(Fret)의 마감은 철저히 손끝 감각에 의존한다. 그 과정에서 최희선은 “나무의 울림을 가두지 말라”고 주문하곤 한다. 도료가 0.1mm 두꺼워질 때마다 고음이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쓰고 있는 최희선의 길모어에서 만든 레스폴 타입 기타 [본인 제공]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쓰고 있는 최희선의 길모어에서 만든 레스폴 타입 기타 [본인 제공]



“사람들은 반짝이는 유광 피니시를 좋아하지만, 도료가 두꺼워질수록 나무는 숨을 쉬지 못해요. 락카를 최대한 얇게 칠해 나무 본연의 소리가 튀어나오게 해야 하죠.” (최종규 대표)

최희선과 최 대표는 새 기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도색 논쟁을 벌인다. 최희선은 늘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생나무 기타를 쳐보고 싶다”며 “이대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제안하지만, 최 대표는 내구성 문제로 최소한의 마감은 해야 한다고 설득하곤 한다.

사실 ‘소리의 본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최희선의 귀와 손을 만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길모어 기타의 성장은 거장의 귀를 끊임없이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최희선은 “하도 퇴짜를 놓고 다시 해오라고 하니 나중엔 너무 안쓰러워 보이더라”며 “그래서 ‘최 대표, 그거 에밀레종 만드는 심정으로 만들어보라’고 했다”며 웃었다. 최 대표는 거장 기타리스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새겼다.

최희선의 시그니처 모델 ‘HS-1’은 블랙, 레드, 화이트 총 세 종류다. 블랙 모델은 단풍(메이플) 나무 지판으로 고음역이 강조된 찰랑거리는 톤을 갖고 있다. 레드 모델은 장미(로즈)나무 지판으로 제작, 중저음이 보강된 따뜻하고 기름진 톤을 살렸다. 지금도 ‘태양의 눈’을 연주할 때 쓴다. 화이트 모델은 세계적인 음향회사인 미국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클레어 브라더스 공연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다. U2, 예스(Yes)와 같은 세계적 밴드에 속한 기타리스트의 기타만 전시하는 이곳에 최희선의 HS-1 화이트 모델이 아시아 연주자 최초로 향했다.

이 기타는 사실 기술적으로 보면 ‘모순의 결합’이다. 겉모습은 텔레캐스터 형태이나, 심장엔 깁슨 레스폴과 펜더의 중간 지점을 찾은 새로운 유전자를 이식했다. 일반적인 펜더 스케일(25.5인치)보다 짧은 24.6인치 스케일을 적용해 손이 작은 동양인도 벤딩(Bending)과 비브라토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미국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클레어 브라더스 공연 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최희선의 HS-1 화이트 모델 [최희선 제공]

미국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클레어 브라더스 공연 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최희선의 HS-1 화이트 모델 [최희선 제공]



“조용필의 음악은 ‘한오백년’의 처절한 국악적 한(恨)부터 ‘모나리자’의 강렬한 록 사운드, 펑키한 리듬까지 스펙트럼이 우주적이에요. 그러니 깁슨의 묵직함과 펜더의 예리함이 동시에 필요했죠. 그래서 마호가니 넥에 두꺼운 메이플 탑(16.9㎜)을 얹어, 록킹하면서도 빈티지(Vintage)한 소리를 요구한 거예요.” (최희선)

기타 제작은 ‘기다림’과 ‘깎아냄’의 미학이다. 원목이 들어오면, 수년에 걸친 자연 건조를 통해 나무의 수분을 뺀다. 뒤틀림을 막기 위한 이 인고의 시간을 거친 나무만이 악기가 될 자격을 얻는다. 최종규는 “고음이 너무 쏜다”, “저음이 벙벙거린다”는 최희선의 피드백이 올 때마다 코일의 횟수(Turn)를 조절했다. 스무 번이 넘는 리와인딩 테스트를 진행한 뒤에야 거장의 귀를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었다. 최희선의 예민함이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10년 이상 앞당긴 순간이었다.

지금 파주에선 오는 2027년 최희선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할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태동 중이다. 이들의 음악 인생에 대한 집대성이자, 한국 악기 제조 기술의 결정체가 될 기타의 탄생이 예고된 것.

50주년 모델은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 중이다. 하나는 조용필의 ‘아시아의 불꽃’을 연주할 때 민첩함을 극대화한 텔레캐스터 타입의 진화형. 다른 하나는 중후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레스폴 타입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는 ‘경량화’다. 2시간 넘는 공연을 버틸 수 있도록, 소리의 밀도는 유지하되 무게는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게다가 최희선은 새벽까지 연습실 불을 끄지 않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기타를 잡은 지 50년이 됐지만,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그는 자신의 연주가 국산 악기를 통해 울려 퍼질 때 비로소 완전한 ‘한국의 소리’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24시간 중 기타를 잡은 시간이 가장 긴 최희선을 위한 ‘맞춤형 기타’를 제작하기 위해 분주하다. 헤드에는 자개로 기념 로고 각인도 남겨둘 계획이다. 최희선이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을 예정이다.

“악기 무게가 10g만 달라져도 2시간 공연 후 연주자의 피로도가 달라요. 소리는 묵직해야 하지만, 악기는 깃털처럼 가벼워야 하죠. 그 모순을 해결하는 게 기술이고, 그게 장인정신이에요.” (최종규 대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쓰는 최희선의 기타들 [본인 제공]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공연에서 쓰는 최희선의 기타들 [본인 제공]



K-사운드의 선구자…“명검은 칼이 아니라 무사의 손끝이 만든다”
‘기타 거장’이 한국산 기타에 마음을 쏟는 데엔 이유가 있다. 최희선은 “K-팝은 세계를 호령하는데, 왜 우리 연주자들의 손에는 죄다 미국, 일본 악기가 들려있냐”고 묻는다. 기타 거장의 질문은 뼈아프다. K-팝이 전 세계를 호령하며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자리한 때에, 악기 산업만큼은 문화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악기 산업은 깊은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말 현재 국내 대표 악기 제조사인 삼익악기 매출은 23.8% 급감했고, 영창은 적자 전환했다.

반면 이 기간 길모어는 역설적으로 생산량의 70~80% 이상을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일본 연주자들은 브랜드 계급장을 떼고 “미국 커스텀 숍의 3분의 1 가격에 대등한 퀄리티를 내는 악기”라며 길모어에 열광한다. 정작 국내에서는 ‘국산=저가’라는 편견에 갇혀 300만 원대 가격표를 달기 힘든 현실과 대조적이다.

최희선은 “외국 유명 브랜드의 히스토리 라인이나 커스텀 숍의 기타는 보통 1000만 원이 넘는다”며 “그런데 만드는 정성, 악기의 품질로 보면 길모어가 해외 커스텀 숍 못지않은데도 국산이라는 이유로 그 악기들의 30% 정도밖에 가격을 매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길모어를 격려했다.

그의 안타까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중음악의 모태를 지켜온 노력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노래가 전 세계 라디오를 타고 흐를 때, 그 저변에는 수많은 연주자와 엔지니어, 악기 제작자들의 땀방울이 빚어낸 장인 정신이 지금의 K-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지 가성비 좋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닌 가치와 철학을 담은 장인의 기타가 태어나고 있던 것이다.

202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출시할 새 기타를 직접 만들고 있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

202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출시할 새 기타를 직접 만들고 있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은 “악기는 음악, 음악가와 함께 발전할 수밖에 없다. 지미 헨드릭스가 ‘와우’ 페달을 밟으면 ‘와우’가 개발되고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며 “하지만 음악 트렌드가 달라진 지금은 세션을 하더라도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하는데 연주자는 소외되고, 주류 음악계에 인부처럼 불려 다니는 경우가 많아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요즘엔 기타 경향도 달라진다. 최희선과 길모어가 내놓은 ‘얼라이브(Alive)’ 라인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기타다. 카키색의 모던한 컬러, 습도에 강한 로스티드 메이플 넥, 반영구적인 스테인리스 프렛으로 구성됐다. 최희선이라는 거장의 노하우를 녹인 이 모델은 한국 악기의 새로운 표준(New Standard)을 제시하고 있다.

“소방호스처럼 소리를 콸콸 쏟아부어야 할 때가 있고, 분무기처럼 살살 뿌려야 할 때가 있어요. 1960년대 빈티지 악기는 훌륭하지만, 현대적인 사운드를 내기엔 힘에 부칠 때가 있어요. 길모어는 내가 원하는 대로 소리를 쏟아부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죠. 다양한 사운드의 디자인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제가 생각하는 소리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더 확장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국산 커스텀 기타의 힘이에요.” (최희선)

거장에게 악기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영감을 쏟아붓는 ‘도구’일 뿐이다. 그는 “장르에 따라 그에 맞는 색깔을 내는 것도 연주자의 몫”이라며 “악기 탓을 하기 전에 곡에 맞는 소리를 내고 있는지는 연주자 스스로가 자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희선은 지난 20여년간 작고 초라했던 한국의 기타 브랜드에 ‘소리 주권’을 갖게 한 수호자이자 든든한 대부였다. 여전히 연주자는 물론 국내 악기 브랜드조차 한국산 기타는 ‘소리의 차이’를 넘지 못한다고 말한다. “길모어가 깁슨이나 펜더 소리를 따라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최희선의 일갈은 단호하다.

“웃기는 소리예요. 명검(名劍)은 칼이 아니라 무사의 손끝이 만드는 겁니다. 깁슨과 길모어의 차이요? 어떤 곡에선 깁슨이 ‘갑(甲)’이고 길모어가 ‘을(乙)’이지만, 내 손과 곡의 해석에 따라 길모어가 ‘갑’이 되고 깁슨이 ‘을’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소리는 악기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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