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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한·러 관계 회복 기대”… ‘손 내밀기’ 신호 뒤에 숨어있는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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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한·러 관계 회복 기대”… ‘손 내밀기’ 신호 뒤에 숨어있는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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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 연설에서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과도 “필요한 수준으로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가운데, 러시아 측 입장 변화의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타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주러시아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한·러 양국은 실용적인 접근을 유지하며 무역과 비즈니스 분야에서 정말 좋은 결과를 거둔 바 있다”며 “한국과 관계 회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양국 관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우리와 한국의 상호작용에서 긍정적 자본이 많이 고갈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외교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도 이번 연설에서 실용적 접근을 강조한 것도 주목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우호국·비우호국을 포함해 총 34개국 신임 외국 대사가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갈수록 대립각을 세우는 유럽 국가들과도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는 필요한 수준으로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됐다”며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이날 제정식에 참석한 대사의 국가를 언급하며 “러시아와 여러 유럽 국가의 관계는 좋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이런 유화적 제스처가 실제 태도 변화로 해석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러시아발 ‘회색지대 도발’ 의혹이 잇따르고 있어 외교적 수사와 별개로 하이브리드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AFP통신에 따르면 핀란드 경찰은 지난달 3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항한 것으로 알려진 화물선 ‘핏부르그’를 핀란드만 해저 통신 케이블 훼손 혐의로 나포해 수사 중이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트해 일대에서 반복돼 온 해저 인프라 훼손·교란 의혹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25일에도 러시아 항만에서 출항한 유조선 ‘이글 에스’가 닻을 끌어 전력·통신 케이블 여러 가닥을 절단한 사례가 있었다.

러시아의 ‘대화·평화’ 메시지가 서방 내부의 이견을 자극한 전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2024년 6월 러시아는 “즉각 휴전·협상 가능”을 언급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4개 점령지 철수(러시아의 합병 주장 지역)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포기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같은 해 7월 EU 이사회 순회의장국이 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EU의 공식 위임 없이 모스크바를 찾아 푸틴 대통령을 면담하고 이를 ‘평화 미션’이라고 주장했으나, EU 지도부와 다수 회원국은 “헝가리는 EU를 대표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회원국들이 헝가리 주최 회의에 고위급 참석을 제한하는 등 사실상 보이콧 조치에 나서는가 하면, EU 외교수장도 부다페스트 대신 브뤼셀에서 별도 회의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걸면서 ‘접촉 여부’를 둘러싼 공개적 균열이 커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발언도 연례 외교 행사에서 반복되는 ‘레토릭(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로 서방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비우호국으로 분류되는 한국과의 관계 회복 의지를 내비친 것은 주목할 대목이지만, 유사한 메시지는 이전에도 나온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3년 신임장 제정식에서 “한러 협력이 파트너십 궤도로 복귀할지는 한국에 달려 있다”는 취지로 밝힌 데 이어, 2024년 주요 통신사 대표단과의 문답에서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 점”을 언급하며 관계 회복 가능성을 거론했다.

임성균 기자 ims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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