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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한 대에 400만원?”…월급 빼고 다 올랐다지만 너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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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한 대에 400만원?”…월급 빼고 다 올랐다지만 너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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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RAM)값이 금값…글로벌 반도체 공룡들이 불붙인 ‘가격 도미노’
“노트북 하나 바꾸려다 손이 멈췄어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 전자상가. 신학기를 앞두고 노트북 매장을 찾은 직장인 김모(34) 씨는 가격표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성능이 좋아진 건 알겠는데, 예전 기억으로는 200만원대였던 모델이 300만원을 훌쩍 넘으니 선뜻 결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메모리 가격 급등이 소비자용 노트북 출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메모리 가격 급등이 소비자용 노트북 출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AI 반도체 열풍이 이제 데이터센터를 넘어 소비자의 장바구니까지 흔들고 있다.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반도체 가격이 뛰었고, 그 여파가 노트북과 스마트폰 같은 일상 전자제품 가격으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노트북 가격, 1년 새 체감 가능한 수준으로 상승

18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출시된 ‘갤럭시 북6 프로’는 341만원부터, 상위 모델인 ‘갤럭시 북6 프로 울트라’는 463만원부터 책정됐다.

불과 한 세대 전 대표 모델이 200만원대 중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상 폭은 적지 않다. 매장 관계자는 “사양이 한 단계씩 올라간 것은 맞지만, 가격 점프가 워낙 커서 구매를 미루는 고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LG전자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이달 초 공개된 2026년형 ‘LG 그램’ 주요 모델은 전작보다 출고가가 약 50만원 높아졌다. 용산의 한 대리점 직원은 “그램은 ‘가볍고 합리적인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했는데, 최근엔 가격 문의 뒤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원인은 ‘메모리’…AI가 끌어올린 가격

업계는 이번 가격 인상의 핵심 요인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지목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범용 D램 가격이 지난해 말부터 분기 연속 큰 폭으로 오르고 있으며, 올해 초까지 상승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조사기관 옴디아는 PC용 D램과 SSD의 평균 판매 가격이 1년 새 수십 퍼센트 이상 뛰었다고 분석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이 우선되면서, 상대적으로 저가인 범용 메모리 공급이 빠듯해진 것도 가격을 밀어 올린 요인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같은 생산라인에서 더 비싼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수익성이 낮은 물량을 늘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폰도 ‘안전지대’ 아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노트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마트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보다 눈에 띄게 커졌다. 업계에선 전체 제조 원가의 20%를 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경우, 주요 스마트폰 브랜드들이 신제품 가격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데이터센터용 AI 메모리 수요가 늘면서 스마트폰·노트북 등 생활 전자제품의 원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데이터센터용 AI 메모리 수요가 늘면서 스마트폰·노트북 등 생활 전자제품의 원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서울 강남의 한 이동통신 대리점 직원은 “고객들이 ‘이번엔 좀 싸지겠지’ 기대하지만, 원가 구조를 보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제조사도 출고가를 억제하려다 보니 옵션을 줄이거나 용량을 나누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체감 물가로 번진 ‘AI 효과’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IT업계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이제 생활필수품에 가깝다. 가격 상승은 곧 체감 물가로 이어진다. 소비자들은 교체 주기를 늘리거나 중고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성능 요구치가 높아지는 현실에서 대안은 제한적이다.

AI가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와 달리, 일상에선 “비싸졌다”는 체감이 먼저 다가온다.

전자제품 매장 한편에 붙은 ‘무이자 할부’ 안내문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AI 반도체가 만든 파도가 이제 소비자의 지갑 앞까지 밀려오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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