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한 뒤 수억 원을 가로챈 40대 사기 전과자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사기 결혼 이미지. 연합뉴스 |
결혼한 배우자 간에는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규정(친족상도례)이 법정에서 통하지 않았다.
학력과 재력을 꾸며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한 뒤 수억 원을 가로챈 사기 전과자에게 법원이 실형을 유지했다. 돈을 빼앗기 위한 목적의 ‘도구로서 혼인’은 실제 혼인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춘천지법 형사2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ㄱ(41)씨가 낸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17일 밝혔다.
ㄱ씨는 2024년 5월 혼인신고를 한 ㄴ씨로부터 모텔 인테리어 공사비 구실로 약 2억원을 뜯는 등 그해 5월부터 7월까지 26차례에 걸쳐 4억6천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ㄱ씨는 ㄴ씨가 운영하는 주점에 여러 차례 방문해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 “대기업에 재직하다가 현재 게임기기 임대업을 하고 있다”, “모텔을 인수할 계획이다”라며 ‘고학벌 자산가’ 행세를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ㄱ씨는 수차례 사기죄로 처벌받은 전과자였다. 차용증을 요구하는 ㄴ씨에게 ㄱ씨는 “도망가면 아무 의미 없으니 혼인신고를 하면 모텔 준공 뒤 명의를 넘겨주겠다”며 곧장 혼인신고를 했다.
결국 진실을 안 ㄴ씨의 고소로 법정에 선 ㄱ씨는 “일부 거짓말을 한 부분이 있지만 이는 피해자에게 이성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 사기를 칠 목적이 아니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혼인 신고 기간에 저지른 범행이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에 어긋나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친족상도례 규정은 친족간 재산범죄에서 사법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율적인 해결을 도모하려는 목적의 형법상 특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ㄱ씨가 오로지 ㄴ씨를 상대로 사기 범행을 저지르고자 혼인신고를 했을 뿐이고, 부부로서 결합을 실질적으로 할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혼인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정은 숨긴 점과 약 2개월 만에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뜯은 사정,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은 물론이고 주민등록상 한 세대를 이룬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혼인이 무효가 되는 사기 결혼의 경우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ㄱ씨의 사기 혐의를 모두 유죄 판단했다.
이후 ㄱ씨는 판결에 불복한 뒤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 판단에 사정을 변경할 사유 등이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혼인 제도를 범죄의 방패로 삼으려는 시도에 대해 면책할 수 없다는 명확한 기준이 드러난 것이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