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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당명 교환의 허울, '마스크 33억'의 행방을 묻는다

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최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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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당명 교환의 허울, '마스크 33억'의 행방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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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늘 '새로운 시작'과 '쇄신'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다.

신한국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새천년민주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숱한 당명 전환은 수십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묻는다.

그 수십억원의 예산과 요란한 간판 교체가 국민의 삶에 단 한 번이라도 '마스크 한 장'만큼의 온기를 전한 적이 있는가.

쇄신의 진정성은 이름표를 바꿔 다는 '분장'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에 응답하는 '실천'에서 증명된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구·경북을 덮쳤던 암흑 같던 시기, 당시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는 재해구호기금 50억원을 대구·경북에 전했다.


경기도의 다섯 살 아이가 사탕을 사며 낸 지방세까지 모인, 그야말로 경기도민의 심장이 담긴 돈이었다.

그중 35억원은 당시 생명줄과 같았던 마스크 350만 개를 사기 위한 예산이었다.

그러나 참담하게도, 예산 집행 후 70일이 다 되도록 33억원어치의 마스크는 대구·경북 시도민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필자가 청와대 출입 당시 이 기막힌 사실을 취재해 보도했으나, 대구·경북권 지역 언론은 물론 지역에 주재하는 중앙 언론사들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했다.

행정의 무능과 언론의 외면 속에 시민들의 몫은 창고 어딘가에 묶여 있었다.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은 끝까지 답변을 피했고, 그나마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며 "감사하다"는 문자를 필자에게 보낸 것이 유일한 소통의 흔적이었다.


이 비극적인 '마스크 행방불명 사건'은 우리 정치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야가 영수회담의 격식을 따지며 소수 정당을 배제하는 특권의식을 부릴 때, 혹은 수십억원을 들여 당명을 바꾸고 간판을 닦을 때, 현장의 국민은 마스크 한 장, 지역의 숙원 사업 하나 같은 절실한 생존의 문제로 절규하고 있다.

이제는 정책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지역의 발전을 위한 공약과 정책은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행정적 성과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함께 땀 흘린 상대 당 관계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패싱' 정치는 쇄신이 아니라 치졸한 구태일 뿐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를 긍정하며 '더 나은 정책'으로 승부하겠다고 나선다면, 여당인 민주당 또한 상대의 노력을 존중하고 성과를 나누는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정당이 이름을 바꾸는 데 쓰는 50억원은 코로나 시국에 500만 개의 마스크를 사서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귀한 돈이다.

간판을 바꾼다고 정당의 본질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진정한 쇄신은 상대의 공로를 가로채지 않는 정직함, 재난 앞에 여야 없이 머리를 맞대는 겸손함, 그리고 아이들의 세금까지 보태진 예산이 단 한 푼도 헛되이 쓰이지 않게 감시하는 언론과 정치의 책임감에서 나온다.

협치 없는 당명 전환은 국민을 향한 기만이다.

쌀의 품질은 그대로인데 포대만 새것으로 바꿔 유권자를 현혹하는 상업적 꼼수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150년 넘게 당명을 유지하며 정책으로 승부하는 미국과 달리, 인물에 따라 간판을 갈아치우는 한국 정당사의 구태는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수십억 원짜리 새 간판 아래서 민생 성과를 독점하거나 상대를 패싱하는 정치를 반복한다면, 국민은 그 정당을 '이름만 바꾼 낡은 부대'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언론도, 정치도 이름 뒤에 숨겨진 진실과 책임의 무게를 직시해야 할 때다.
최대억 대구경북취재국장

최대억 대구경북취재국장

영남취재본부 최대억 기자 c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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