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프로젝트 서바이벌 구조로 출발…독자성 기준 논란 속 1차 평가
사업자 간 해석 충돌 발생도…4팀 설계서 3팀만 통과 변수
정부, 추가 공모 카드 꺼냈지만…주요 기업 '불참' 기조 확산
2차 평가 앞 평가기준 ‘정교화’ 요구…경쟁 넘어 K-AI 공동 구축으로
사업자 간 해석 충돌 발생도…4팀 설계서 3팀만 통과 변수
정부, 추가 공모 카드 꺼냈지만…주요 기업 '불참' 기조 확산
2차 평가 앞 평가기준 ‘정교화’ 요구…경쟁 넘어 K-AI 공동 구축으로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 얼마 전 종료된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재야의 숨은 뮤지션들을 한 무대에 올려놓고 과거의 경력이나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지금의 실력’으로 다시 평가받게 한 경연이었습니다. '탈락은 곧 실패'가 아닌 오히려 참가자의 실력과 가능성이 재조명됐습니다. 단계별 패자부활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력이 있음에도 한 번의 무대에서 밀려난 참가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설정은 공감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싱어게인은 시리즈 4까지 이어지는 장기 흥행요인이 됐습니다.
국가대표급 인공지능(AI) 모델을 선발하겠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K-AI)' 프로젝트. 이같은 오디션 방식을 채용한 것도 아마도 같은 취지였을 것입니다.
국가 차원의 독자 AI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도전자들이 컨소시엄을 꾸려 단계별 경쟁과 검증을 거치도록 설계했습니다. 최종 승자를 가려내기보다 여러 팀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독자적인 AI 모델을 개발하고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 자체가 국내 AI 생태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평가를 통해 수행기관을 선정한 뒤 이를 지원하는 기존 정부 연구개발 과제 방식에서 벗어나 '서바이벌 경연' 이라는 이례적인 방식을 통해 정책 홍보와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효과는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초반부터 세간의 이목이 K-AI에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 탓인지 1차 평가 발표를 앞두고 오픈소스 활용 범위를 둘러싼 '독자성' 기준 해석 차이, 일부 컨소시엄 대상 기술 차용 의혹, 경쟁사 비방전까지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각종 논란 속 지난 15일 K-AI 프로젝트 1차 단계 평가 결과는 당초 계획과 달랐습니다. 4개 팀이 2차 진출할 예정이었으나, LG AI연구원·SK텔레콤·업스테이지 컨소시엄 등 3개 팀만 통과했습니다.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 컨소시엄이 동시 탈락한 것입니다.
네이버의 경우 벤치마크·전문가·사용자 평가 등 객관적 성능 평가에서는 상위권에 포함됐지만 독자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정부는 프로젝트 시작부터 '해외 모델 미세조정(파인튜닝) 등으로 개발한 파생형 모델이 아닌 모델의 설계부터 사전학습 과정 등을 수행한 국산 모델'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었습니다.
다만 오픈소스 활용 범위와 가중치 초기화 여부, 학습 과정에서의 독자성 판단 기준 등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됐더라면 참여 기업들의 해석 차이와 이후 혼선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싱어게인' 닮아있는 'K-AI' 프로젝트
이러한 변수 속 과기정통부가 꺼내 든 카드는 '추가 공모', 이른바 패자부활전입니다. 당초 K-AI 프로젝트는 2차 단계를 4개팀이 경쟁하는 구도로 설계했지만 1차 평가에서 2개 컨소시엄이 동시에 탈락하면서 한 자리가 공석이 됐기 때문입니다.
대상은 1차 평가에서 제외된 팀에 한정하지 않고 앞서 5개 정예팀에 들지 못한 10개 컨소시엄은 물론 새롭게 컨소시엄을 구성할 역량이 있는 기업들까지 폭넓게 열어두기로 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탈락 기업에 대한 구제 조치가 아닌, 경쟁 구도를 유지하고 이미 확보한 정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합니다. K-AI 사업은 당초 4개 정예팀을 전제로 그래픽처리장치(GPU), 데이터, 전문 인력 지원 규모와 운영 일정이 함께 설계됐는데, 한 팀이 빠질 경우 정부가 임차해 확보한 GPU 자원과 준비된 지원 체계가 일부 활용되지 못한 채 남을 수 있어 이를 고려한 조치입니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한 자리가 공석이 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정부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많은 기업에게 제공, AI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게 하자는 취지로 특정 기업을 배려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패자부활전' 불참 선언 네카오…정책 흥행 비상등?
원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패자부활전은 탈락하기 아까운 후보를 다시 무대로 불러들이며 긴장감과 흥행을 끌어올리는 기폭제 같은 장치가 됐습니다. 정책 당국도 이를 감안했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K-AI 경연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기대와는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재도전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네이버클라우드, NC AI는 재도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습니다. 여기에 잠재적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던 카카오 역시 추가 공모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입니다.
업계에서는 후발 주자로 다시 경쟁에 뛰어드는 데 따른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꼽습니다. 재도전 과정에서 다시 탈락할 경우 기술력과는 무관하게 '패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고, 이는 기업 이미지와 시장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가수 오디션처럼 탈락이 곧 재조명으로 이어지는 구조와 달리, 기업 경연에서는 선발전 결과가 곧바로 주가와 투자 심리, 경영 책임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현실적 제약이 깔려 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추가 공모를 통해 합류하는 후발 주자에게도 2차 단계 수행 기간과 지원 조건을 최대한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합류 시점이 늦더라도 동일한 기간 동안 2차 단계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GPU·데이터·전문 인력 지원 수준에서도 차이를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유력 주자들이 패자부활전 불참을 선언하면서 정부 입장이 난감해졌습니다. 정책 흥행에도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가수 후보자들이 모두 패자부활전 경연을 포기했다면 시청률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겠죠.
실제 추가 공모에 참여하는 기업이 없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경우 현재 확보된 자원을 기존 3개 사업자에게 추가 공급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예정입니다.
성공 기준은 '승자' 아닌 'K-AI 생태계 축적'
그럼에도 K-AI 프로젝트가 지닌 정책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정부가 이 사업을 통해 만들고자 한 것은 특정 승자를 가려내는 선발전이 아니라, 소버린 AI·독자 AI를 실제로 구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AI 기술력이 곧 국가의 미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한치 양보없는 기술 패권 경쟁이 한창이고, AI 기술력은 극소수 글로벌 빅테크에 쏠려 있습니다.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빅테크들의 가격 횡포에라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예산과 인프라를 마중물로 역량 있는 사업자들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AI를 발전시키고, 그 결과물이 국내 AI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습니다.
K-AI 프로젝트의 진짜 성패는 이제 누가 살아남았느냐가 아니라, 이 경쟁을 어떻게 ‘완주 구조’로 재정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 기준을 보다 구체화하고, 과도한 비방과 소모전을 차단하며, 지원을 받는 기업과 받지 않는 기업 모두가 국내 AI 생태계 안에서 성과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필요해 보입니다. 흥행을 위한 경연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국가 AI 전략의 결말은 얼마나 많은 기술과 경험이 국내에 남았는지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생존하든 탈락하든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참여사들끼리 승패를 가르는 데 매몰되기보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경쟁할 수 있는 체급을 함께 키워가는 데 뜻을 모아야 합니다.
이번 경연에서 네이버와 NC AI 역시 그 실력이 글로벌 벤치마크 평가 등에서 입증된 바 있습니다. 각자의 AI모델 중 공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오픈소스 형태로 제공한다면 국내 AI 생태계 전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비록 오디션 경연 과정에서 탈락했지만 최종 우승자보다도 더 활발히 공연무대에서 활약하는 뮤지션 고수들처럼 말이죠..
K-AI 프로젝트가 ‘누가 이겼는가’를 남기는 사업이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가’를 증명하는 사업으로 완주할 수 있을지, 이제 그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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