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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나의 삶을 가둘 때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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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나의 삶을 가둘 때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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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선생님, 저 화병인 것 같아요.”



30대 중반의 회사원 ㄱ씨는 자신을 ‘화병’ 환자라 진단하며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회사에서 성실히 일했을 뿐인데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참다 못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담을 이어가며 그의 이야기 속 모순이 점차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실수나 거친 반응을 언급할 때마다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반면 타인의 행동에는 단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래” “책임감이 없어” “이기적이야”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상담실에서 자주 관찰되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한 예외를 두면서도 타인의 실수에는 유난히 엄격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행위자–관찰자 귀인 편향’이라 부릅니다. 자신의 행동은 상황 탓으로, 타인의 행동은 성격이나 태도 탓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반복될수록 삶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왜곡된다는 점입니다. 자기 행동을 늘 상황 탓으로만 돌리면 삶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선택의 여지는 사라지고 억울함만 남습니다. “나는 항상 피해자였다”는 서사가 인생의 중심이 되면 삶은 불공평한 사건들의 연속처럼 느껴지고 세상은 유독 나에게만 가혹한 공간이 됩니다.



ㄱ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하나씩 짚어보니 상사의 지시를 공개석상에서 비꼬듯 반박했던 일, 동료의 실수를 여러 사람 앞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했던 경험, 회의나 회식 자리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불만을 쏟아냈던 순간들이 드러났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ㄱ씨 역시 직장 내 괴롭힘과 유사한 행동을 적지 않게 해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이기보다 상황에 떠밀린 불가피한 반응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이가 “왜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드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성찰은 자책이 아닙니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순간의 고통을 덜어주지만 반복될수록 삶을 가두는 말이 됩니다. 변화는 불편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 시선이야말로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용인정신병원 스마트낮병원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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