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17일 지진으로 일본 효고현 고베 곳곳에서 불이 나 연기가 치솟는 모습./고베=AP/뉴시스 |
일본의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
1995년 1월 17일 화요일 오전 5시 46분. 일본 효고현 아와지섬 북부를 진원으로 하는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 또는 한신 대지진)'으로 부르는 이 자연재해는 일본 기상청 관측 사상 최초로 진도 7이 기록된 대재앙이었다. 특히 고베 지역은 과거 400년 동안 큰 지진이 없어 '지진 안전지대'로 인식되고 있어 충격이 더 컸다.
일본의 안전 신화에도 심각한 균열을 냈다. 지진 발생 이전까지 일본 사회는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고 있었고, 인프라와 기술력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다. 불과 20초의 지진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됐고, 일본 사회가 믿어왔던 안전 신화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구조적 전환점이 됐다. 사망자는 6400명, 부상자는 4만3000명이 넘었다. 당시 재산 피해 규모는 10조엔(당시 환율 기준 한화 약 80조원) 정도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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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초 만에 무너진 고속도로… '안전 신화'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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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당시 효고현 남부 지역은 주요 경제권인 '간사이 지방'의 핵심 물류 거점이자 주거 밀집 지역이었다. 진원지가 지하 16㎞(킬로미터)로 비교적 얕은 곳에 위치해 도심부를 강타했고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이 충격으로 인해 1964년 개통 이후 안전성을 자부하던 신칸센의 교각과 1969년 건설된 한신 고속도로 고베선이 무너지는 등 주요 시설이 붕괴됐다.
내진 설계 기준이 강화되기 전인 1981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과 인프라가 대거 파괴되면서 피해를 키웠다. 특히 목조 주택들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이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면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한 시각이 평일 새벽시간대라 대응을 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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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당시 효고현 남부 지역은 주요 경제권인 '간사이 지방'의 핵심 물류 거점이자 주거 밀집 지역이었다. 진원지가 지하 16㎞(킬로미터)로 비교적 얕은 곳에 위치해 도심부를 강타했고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이 충격으로 인해 1964년 개통 이후 안전성을 자부하던 신칸센의 교각과 1969년 건설된 한신 고속도로 고베선이 무너지는 등 주요 시설이 붕괴됐다.
내진 설계 기준이 강화되기 전인 1981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과 인프라가 대거 파괴되면서 피해를 키웠다. 특히 목조 주택들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이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면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한 시각이 평일 새벽시간대라 대응을 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 당시 사진. /사진=일본 소방 방재 박물관(消防防災博物館) 홈페이지 캡처 |
지진 발생 초기 일본 정부의 대응도 문제였다. 관료주의적 경직성과 위기 관리 시스템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진 발생 직후 정보 전달 체계의 미비로 인해 중앙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으며, 자위대 파견 요청과 투입이 지연되면서 초기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급격히 하락했다.
반면 위기 관리 체계의 공백을 메운 건 시민 사회였다. 전국 각지에서 10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고베로 집결해 구호 활동을 펼쳤다. 이는 일본에서 1995년을 '자원봉사의 원년'으로 부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시민들이 약탈 없이 질서를 유지하고 서로 돕는 모습은 '메이와쿠(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음)' 문화와 공동체 의식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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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응 시스템 부재가 키운 '인재'…국가 방재 기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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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일본의 경제와 산업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동아시아 해운 물류의 허브였던 고베항의 주요 시설이 파괴돼 기능이 마비됐고, 물동량이 부산항 등으로 이탈하며 국제적 지위를 상실했다. 증권 시장에선 지진으로 닛케이 지수가 급락했다. 보험과 금융 시장에도 엄청난 충격이 발생했다. 엔·달러 환율은 사고 전 해인 1994년 90엔대에서 지진 발생 직후 70엔대 후반까지 급락했다.
내진 설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1981년 개정된 내진 기준을 적용받은 건물들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후 건축물의 내진 보강과 법적 기준 강화가 가속화됐다.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 당시 사진. /사진=일본 소방 방재 박물관(消防防災博物館) 홈페이지 캡처 |
국가 방재 시스템도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졌다. 지진 당시 지역 기상청 간 전용 회선이 끊겨 진도 7을 계측하고도 이를 즉각 속보로 알릴 시스템이 부재했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96년부터 진도 계급을 세분화하고 현지 조사를 하지 않고 계측 진도만으로도 속보를 전달할 수 있는 체제를 도입했다. 지진 관측점은 4200개소로 확충됐다.
고베 대지진은 3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재난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태도를 결정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의 경험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등 후속 재난에 대응하는 매뉴얼의 기초가 됐다. 특히 관(官) 중심의 방재에서 민관 협력과 시민의 자조(自助)·공조(共助)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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