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수익성·확장성’ 앞세워 상용화 속도…韓 10년째 ‘실증’만 반복
전문가들 “제2의 노키아 사태 올 수도” 경고
피지컬 AI 지원·규제-승인 ‘순환 체계’ 시급
전문가들 “제2의 노키아 사태 올 수도” 경고
피지컬 AI 지원·규제-승인 ‘순환 체계’ 시급
모셔널 로보택시가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주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우버와 웨이모의 가격을 비교하며 로보택시를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가 국내 규제 때문에 미국에서 시험 운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가 자율주행 시대에 낙오하거나 도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을 다녀온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소회다. 구글 웨이모 로보택시를 직접 시승한 뒤, 자율주행 서비스가 ‘가격 비교 대상’이 될 만큼 일상화된 미국의 현실과 대비되는 한국의 제도적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세계 자율주행 시장은 이미 ‘기술 가능성’을 넘어 ‘사업화 경쟁’ 단계로 접어들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안전요원 동승, 운행 구역 제한 등 조건부 실증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증은 되는데 사업은 못 한다…‘허가 공백’의 역설
구글 웨이모가 올해 런던과 도쿄, 마이애미 등에서 무인택시 상용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동안, 한국 도로 위에는 ‘감독형’ 자율주행차만 달리고 있다. 현대차가 2020년부터 약 5조원을 투자한 자회사 모셔널 역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용화를 준비 중이지만, 국내 진출은 여전히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한국은 자율주행 기술을 실도로에서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했지만, 실증 이후 상용 운행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통로가 뚜렷하지 않다. 실증은 허용되지만, 승인 기준과 책임 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단절’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기업들은 국내에서 기술을 검증한 뒤, 정작 매출과 서비스 경험은 해외에서 쌓는 구조에 놓여 있다.
세계는 벌써 ‘돈 버는 단계’…한국만 ‘실증 늪’에
글로벌 로보택시 경쟁은 이미 ‘누가 먼저 도로를 달리느냐’를 넘어 ‘어떻게 돈을 버느냐’의 싸움으로 이동했다. 시장은 웨이모의 ‘확장’과 테슬라의 ‘비용 혁신’으로 압축된다.
웨이모는 도시별 상용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피닉스에서는 상용화까지 3년이 걸렸지만, 애틀랜타에서는 1년으로 단축됐다는 평가다. 올해는 런던·도쿄·마이애미에서 동시 상용화를 추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테슬라는 비용 구조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고가 센서를 줄이고 카메라 중심으로 비용을 낮춰 운임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국내에 도입된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 v14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관심을 받으며 생태계에 파장을 주고 있다.
한국도 기술 수준에서는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현대차·앱티브 합작사 모셔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이오닉5 기반 로보택시를 시험 운행 중이다. 차량은 신호 변화에 즉각 반응하고, 보행자와 주변 차량을 인식하며, 교통이 복잡한 구간에서도 보수적으로 주행했다. 모셔널은 올해 말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레벨4’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은 한국 도로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무인 운행을 전제로 한 허가 기준과 사고 책임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증은 계속되지만, 상용화를 전제로 한 제도 설계는 뒤따르지 않고 있다.
해외도 수익성은 숙제…그래도 제도는 ‘전진’한다
물론 해외 역시 로보택시 사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로보택시는 센서와 운영비 부담이 커 투자금 회수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업계 추정으로 웨이모 차량은 카메라·라이다(LiDAR)·레이더(Radar) 등 고가 장비를 다수 쓰고, 테슬라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카메라 중심 전략으로 비용을 낮추려 한다. 같은 ‘자율주행’이라도 비용 구조가 경쟁의 한복판에 들어간 셈이다.
그럼에도 해외의 차별점은 ‘실증 이후’를 고민한다는 데 있다. 일부 주(州) 정부는 규제 정비를 논의하며 파일럿(시험 서비스) 확대를 추진한다. 기업은 운행 데이터를 쌓고, 안전성과 책임 체계를 보완하면서 단계적으로 확장한다. 수익성은 논쟁이지만, 제도는 ‘정지’가 아니라 ‘전진’에 가깝다.
제2의 노키아 될라…정부 로드맵 당겨야
전문가들은 한국 자율주행 산업이 '제2의 노키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 피처폰의 성공에 안주하다 스마트폰 혁명에 휩쓸린 노키아처럼, 한국도 제조 역량에만 기대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생태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관련 법률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웨이모와 테슬라가 이미 2026년 글로벌 시장 선점을 선언한 상황에서 속도가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제도 공백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황성호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13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에서 “실증이 제도 개선으로 연결되는 순환형 체제가 없다”며 “안전성이 검증됐다면 선제적으로 상용 승인을 해주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증했으면 승인으로 이어져야 기업이 매출을 내고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할 수 있다는 취지다.
기업들의 목소리도 같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기술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이 되느냐’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박동주 한국지능형교통체계(ITS)학회장은 “스타트업들은 기술은 있는데 매출 없이 고사 위기”라며 “정부가 구체적 상용화 시간표를 제시해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